'의료사고처리법', 의료배상공제조합 존립 위협‥"의료인 지킬 것"

[인터뷰]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 박명하 이사장, 양동호 대의원회 의장
의료사고처리법 논의, 의료인 진료권과 환자 신뢰의 충돌점으로
의료사고심의위·보상심의위 신설에 '조정 기능 무력화' 지적
1억원 규모 용역으로 법리 적용 기준·배상제도 개선안 도출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5-07 06:00

의료배상공제조합 박명하 이사장과 양동호 대의원회 의장. 사진 = 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 어떻게, 얼마나 책임져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의는 단순한 절차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료인의 진료권, 그리고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신뢰 체계의 근간과 맞닿아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사고처리법'은 이러한 체계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중대한 갈림길로 떠오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 박명하 이사장과 양동호 대의원회 의장은 최근 출입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입법 논의는 단순한 제도 개편을 넘어 조합의 존립 문제와 직결된다"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의료배상공제조합은 2013년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등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라 보건복지부의 설립허가를 받은 단체다. 현재까지도 전문과 심사위원 100명, 변호사 위원 27명으로 구성된 '의료배상공제심사위원회'를 운영 중이며, 전담직원이 의료분쟁을 직접 상담·처리하는 국내 유일의 전문 공제기구다.

두 사람은 조합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의료사고처리법 제정에 대응하는 동시에, 의료인의 권익 보호와 조합의 기능 강화를 위해 본격적인 제도 정비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험 이상의 역할, 조합의 사명은 의료인을 지키는 것"

의료배상공제조합은 단순한 보상 기구를 넘어 의료인을 지키는 보호막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의료배상공제조합을 대표하게 된 박명하 이사장은 4대 중점 과제로 ▲조합원 대상 서비스 강화 ▲정부 정책에 대한 체계적 대응 ▲조합 운영의 안정화 ▲공제상품 성장 확대를 꼽았다.

우선 조합원 서비스 강화를 위해 '의료분쟁 예방'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 의료기관 내 낙상 사고가 급증하면서 조합 접수 건수가 늘고 있어, 주요 낙상사례와 예방수칙을 담은 뉴스레터를 5월 중 발송할 예정이다. 이 뉴스레터는 대한의사협회의 협조를 통해 조합원뿐 아니라 전체 의사 회원에게도 전달돼, 의료분쟁의 사전 예방에 기여하도록 할 방침이다.

더불어 대한의사협회와 공동 주최하는 의료분쟁 예방 연수교육도 매년 2회 정례화됐다. 이 교육에서는 의료사고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실질적 대응 전략이 공유되며, 참가자에게는 필수 연수평점도 제공된다.

조합은 의료사고처리법 제정 움직임에 대해 '조합원 피해 최소화'에 방점을 두고 대응하고 있다. 정부는 사과법, 환자대변인제, 의료배상책임공제 의무가입, 공적보상기구 설립 등 다양한 제도를 추진 중이다.

박 이사장은 "이러한 법안들이 신속한 분쟁 해결이라는 명분 아래 오히려 방어 진료를 유도하고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조합 운영이 위협받더라도 설립 목적에 따라 역량을 집중하고 조합원 보호에 최우선을 두겠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조합의 운영 안정성을 위한 내부 시스템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정부 입법 방향에 따라 조합의 존립이 흔들릴 수 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집행부 임원과 대의원이 함께하는 의료사법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했고, 민·형사 소송 조사·분석을 위한 연구용역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금융 리스크 관리도 강화한다. 이상 징후를 사전에 탐지하고 대응하기 위한 '금융사고 예방 TF'를 구성함과 동시에 전산시스템 고도화를 위해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제전산시스템 고도화추진위원회'가 조만간 가동된다.

실제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기존 조합의 수시입출금 통장은 금리가 0.1% 수준에 그쳤으나, 이를 고금리 MMDA(파킹통장)로 전환함으로써 연간 이자수익이 2170% 증가하는 재무적 개선도 이뤘다.

마지막으로 조합의 외형적 성장도 주목할 만하다. 경제 불황 속에서도 배상공제, 화재공제, 상호공제 모두에서 가입 건수가 꾸준히 늘고 있고, 공제료 수입 역시 상승세다.

박 이사장은 "급변하는 의료 환경에 적적으로 대응해 조합이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의료사고처리법, 조합의 기능과 설립 목적 훼손 우려" 
박명하 이사장과 양동호 의장은 의료사고처리법 제정안이 조합의 본질적 역할과 기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5월부터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원회에서 논의가 진행 중인 해당 법안은 의료사고 분쟁 해결의 구조적 문제로 ▲불충분한 소통·조정 ▲공적 배상체계 미흡 ▲소모적 수사 절차 ▲사법리스크 네 가지를 규정하고 문제점 개선 및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의료사고처리법 관련 정책 추진의 주요 골자는 크게 ▲의료사고 예방 및 소통 활성화(사과법 제정) ▲분쟁조정제도 개선(컨퍼런스 감정체계 강화, 환자대변인제 신설, 복수감정, 국민 옴부즈만 설치 등) ▲의료사고책임보험 의무화 및 공적 배상체계 도입(의료사고보상심의위원회 역할 확대) ▲의료사고 사전심의체계 구축(의료사고심의위원회 신설)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의료사고심의위원회와 의료사고보상심의위원회 설치는 기존 조합이 수행해온 의료감정 및 조정 기능과 중복되며, 조합의 역할을 사실상 무력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기존 의료분쟁조정법과 의료법 체계 내에서 충분히 개선이 가능한데도 정부가 별도의 위원회를 통해 의료감정 결과에 따라 수사 및 기소 여부를 결정하려는 것은 형평성 문제뿐 아니라 의료인의 방어 진료를 조장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분쟁조정 절차의 참여를 의무화하면 고소·고발 사건 조사 시 의료인 소환이 과도해지고, 환자 진료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박 이사장은 두 위원회의 역할과 조합의 업무가 중복되지 않도록 위원회에 정식 참여하거나, 조합에서 이미 심사·종결한 사건의 결과를 존중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합은 위원회 확대 개편 시 전문 위탁기관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정부에 요구할 계획이다.

또한 정부가 제시한 소액사건 신속배상 기준금액 1000만원은 현행 소액사건심판규칙의 기준인 3000만원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고 꼬집으며, 기준금액의 상향 조정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기로 했다.

조합은 현재 국내 주요 손해보험사들과 20년 이상 재공제 사업을 이어오며 전문 위탁기관으로서 충분한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보험 의무가입 시 조합이 수혜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 박 이사장은 "조합원 수 증가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현재 논의되는 방식은 의료인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어 의무가입제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민·형사 사법리스크, 이제는 구조적으로 대응할 때" 
조합은 2013년 11월 설립 당시 7000여명이던 가입자가 2025년 현재 3만명을 넘어섰으며, 고액 배상 판결에 대비해 5억원 보장 상품을 2020년부터 도입해 운영 중이다. 보험사 인수 거절 사례조차 조합은 수용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보장과 보호 기능을 갖춘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동일한 의료사고라도 조합을 통해 처리하면 훨씬 신속하고 합리적인 결과가 나온다. 모든 의사회원이 조합원이 되는 것이 조합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조합이 의료분쟁 예방과 해결의 중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의료사법제도개선위원회를 발족한 것도 같은 이유다.

박 이사장은 "의료분쟁 발생 시 급격히 증가하는 민사 소송의 배상액과 과도한 형사처벌 사례 등으로 바이탈과를 중심으로 소위 필수의료 몰락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오히려 의료진에게 민사 배상을 전가함과 동시에 형사처벌 감면을 마치 의료진에 대한 특례처럼 제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조합은 선제적으로 대한민국 의료 소송 및 배상 관련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있으며, 민·형사 사법리스크의 효과적인 해결방안 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양 의장은 "의료사고 관련 민·형사 소송 등 조사 분석을 위한 연구용역에 대의원회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연구용역 결과가 도출되면 공청회 개최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조합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에서는 의료분쟁 형사소송 판례, 민사소송 판례, 해외와 국내 사례를 비교 분석해 의료분쟁 발생 시 바람직한 법리 적용 기준을 제안할 예정이다. 더불어 민사배상방안(의료배상 상한액 설정, 국가배상기금, 이중배상금지)을 제시할 수 있으며, 필수의료 보호 및 의료교육과의 연계 활용 방안도 고려된다.

이처럼 조합은 공제회까지 포함하면 40년이 넘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의료사고 처리 기관으로, 다른 어떤 기관도 갖추지 못한 조합 고유의 해결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단언컨대 동일 유형의 분쟁이라도 조합을 통해서는 더욱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모든 의사 회원들이 조합원이 돼야만 조합의 위상과 역할이 더욱 높아질 것이므로 가입 홍보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료분쟁의 최일선에서 조합이 든든한 지원자가 되겠다"며 "불가항력적 합병증마저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조합은 단순한 배상기구를 넘어 의료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핵심 축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양 의장 역시 "5월 25일 조합 정기총회를 통해 정관 개정 및 제도 미비점 보완, 연구용역 중간보고회 등 실질적인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라며 "제5대 대의원회 의장 취임 후 의료계 내부 사정으로 이사장 교체 등 안팎으로 힘든 일이 많았지만, 조합원의 권익을 최우선으로 삼아 조합의 근간인 의료분쟁 사고처리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직접 챙겨왔다. 향후 외부적 요인에도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 구축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보기

의료사고 감정, 醫-患 입장차 여전…政 "공신력 확보가 답"

의료사고 감정, 醫-患 입장차 여전…政 "공신력 확보가 답"

[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을 통해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발표한 가운데, 의료사고 소송환경 개선을 위한 입증책임 전환이 쟁점으로 떠오른다. 환자와 소비자 단체는 입증책임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고, 의료계는 의료진 설명으로 환자를 설득할 수 있는가에 우려를 표했다. 이에 정부는 공신력 있는 감정체계 구축을 통해 의료사고 원인규명의 신뢰성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20일 서울의대 양윤선홀에서 열린 '더 나은 의료체계를 위해-세션5 의료서비스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를 위한 소송환경 개

'의료사고안전망 강화방안'에 입장 제각각…실현가능성 불투명

'의료사고안전망 강화방안'에 입장 제각각…실현가능성 불투명

[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정부에서 내놓은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방안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실행을 위한 인력 및 재원 확보 등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정책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나온다. 환자단체는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형사체계 개선에 동의할 수 없으며, 의료사고 심의위원회가 중대한 과실 유무를 판단하는 기구로 도입되면 불기소 처분이 난발될 것을 우려했다. 의료계에서는 의료진의 사과나 설명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과잉 입법이라는 의견과 함께 의료사고에 있어서는 의료진도 피해자로 봐야 한다는 시

의료사고 안전망, 엇갈리는 시선…"입법 결단 필요한 사항"

의료사고 안전망, 엇갈리는 시선…"입법 결단 필요한 사항"

[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정부가 의료 사법리스크 대책 초안 공개를 앞둔 가운데 당사자인 의료계와 시민단체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의료계에선 부족한 점이 지적되는 반면 시민단체는 특례라고 반발하면서다. 법조계 일각에선 소모적 논의보단 입법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란 시각이 제기된다. 5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를 위한 시민사회 입장 발표 기자간담회를 통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6일(오늘) 정부가 국회 정책토론회 자리에서 의료 사법리스크 대책 초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선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

필수의료 살리려 만든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변호사가 본 문제점

필수의료 살리려 만든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변호사가 본 문제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필수의료의 붕괴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의대생들의 휴학, 필수의료 기피 현상까지. 의료계는 1년 넘게 거센 반발을 이어오며 거대한 의료 공백을 만들어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정부가 꺼낸 카드가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대책'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의료계와 시민·환자단체 간의 갈등은 더욱 격화되는 양상이다. 대책에는 ▲ 형사처벌 특례 ▲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신설 ▲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 확대 ▲ 책임보험 확대 등이 포함됐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

이런 기사
어때요?

실시간
빠른뉴스

당신이
읽은분야
주요기사

독자의견

작성자 비밀번호

0/200

메디파나 클릭 기사

독자들이 남긴 뉴스 댓글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