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와 학회의 시너지‥'고혈압' 진료 지침, 새 전환점 맞을까

고혈압학회 30주년 기념, 반지형 혈압계 활용한 장기 연구 돌입
일차의료 중심 데이터 확보 위해 임상순환기학회와 협력
치료 기준을 '진료실 밖 혈압'으로…한국형 진료지침 변화 기대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5-14 11:56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진료실 안에서 재는 혈압 수치 하나로 수년간 치료를 이어가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고혈압은 하루에도 수차례 오르내리는 생체 신호지만, 그간 의료현장은 그 복잡성을 외면해왔다.

환자가 병원에만 오면 긴장으로 혈압이 치솟는 '백의고혈압', 외래에선 정상이어도 실제론 고혈압인 '가면고혈압' 등은 오래전부터 알려졌지만 이를 치료에 반영하기 위한 장치는 부족했다. 

그런데 최근 손가락에 반지처럼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 하나가 등장하면서, '진료실 밖 혈압'이라는 벽을 허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진료실 밖 혈압의 중요성은 의료계에서도 오래전부터 인식돼왔으나, 이를 진료에 적극 반영하기에는 여러 제약이 따랐다.

특히 24시간 혈압을 안정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이 현실적으로 부족했다. 기존 활동혈압 측정기(APBM)는 팔에 커프를 감고 수시로 공기를 주입해야 해 착용감이 불편하고 수면을 방해하는 등 일상에서의 활용이 어려웠다.

그러나 손가락에 착용하는 반지형 웨어러블 혈압계 '카트비피 프로(CART BP Pro)'가 상용화되면서 환자가 장시간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24시간 혈압 측정이 가능해졌다.

카트비피는 환자가 병·의원에서 기기를 수령해 착용하면 측정된 혈압 데이터가 자동으로 의료진에게 전송된다. 운동이나 수면 중에도 측정이 가능하고, 지난해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돼 본인 부담금도 1만원 미만으로 낮아졌다. 일선 병·의원에서도 활용 가능성과 접근성 면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대한고혈압학회는 창립 30주년 기념 과제로 '반지형 무커프 혈압계 기반의 한국인 혈압 코호트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 책임은 서울대 의대 이해영 교수가 맡았다.

연구는 '진료실 밖 혈압'을 얼마나 잘 조절하느냐에 따라 환자 예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가설을 검증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실제로 국내 자료에 따르면 고혈압 환자의 15~20%는 백의고혈압, 진료실 혈압이 조절된 환자의 약 13~35%는 가면고혈압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고혈압학회를 비롯한 주요 글로벌 학회들은 이미 진료지침에 24시간 혈압 측정을 권고하고 있다. 반면 국내는 여전히 진료실 혈압 위주로 진단과 치료가 이뤄지고 있으며, 한국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독자적 기준도 부재한 상황이다. 이번 연구는 그 공백을 메우고, 한국형 지침 수립을 위한 근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당 연구는 일차의료 현장에서의 적용성과도 함께 고려됐다. 고혈압은 대표적인 일차의료 중심 질환이기 때문에, 고혈압학회는 대한임상순환기학회에 협력을 요청했다. 

연구의 취지에 공감한 임상순환기학회는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로 했다.

임상순환기학회 류재춘 회장은 "그동안은 진료실 혈압을 기준으로 치료해왔는데, 이는 진료실에서 한두 번 재는 정적인 혈압이다. 하지만 사람은 계속 움직이므로 24시간 혈압은 장소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대한고혈압학회의 30주년 기념 연구는 진료실 혈압으로 잘 조절하는 환자 그룹과 진료실 밖 혈압 조절 그룹의 예후를 비교하는 것이다. 우리는 진료실 밖 혈압을 잘 조절하는 것이 좋다는 가설로 시작하는데, 이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가이드라인 변화도 예상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임상순환기학회는 이번 연구가 단순한 기술 실험에 그치지 않고, 의료 현장에서의 혈압 관리 패러다임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이상 학술부회장(총괄)은 "대학병원 중심 학회가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데 주력한다면, 우리는 일차의료 중심의 학회로서 당장 환자에게 이득이 되는 관리의 개념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에는 단순히 혈압 수치만으로 치료했지만 이제는 비만, 콜레스테롤 수치 등 환자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접근해야 한다. 이를 가장 먼저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일차의료"라고 강조했다.

임상순환기학회는 이번 연구 결과가 국제 가이드라인에 반영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한국형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진료 기준이 정립된다면, 한국 의료기술의 위상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류 회장은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질병이 발생하기 전 단계부터 개입해 관리하는 예방중심의 전략이 필요하다"면서 "일차의료에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면 병원 방문 횟수와 합병증 발생을 줄이고, 환자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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