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이오'‥거버넌스 바꾸지 않으면 경쟁력 뒤쳐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현장 의견 수렴할 수 있는 구조의 쇄신 필요
국생위, 독립 상설 기구 역할 해야‥비밀주의 타파, 모든 회의록 상세히 공개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2-06-23 11:24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바이오' 분야는 난치병·불치병·희귀질환의 치료 등 인류의 보건 분야 발전에 기여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 중 한국은 바이오 분야에서 많은 연구 경험과 인력을 보유한 '역량 선도 국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 영국을 포함한 EU, 일본 등 경쟁국에 비해 바이오 분야 기술 발전 수준이 뒤떨어진다고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바이오 규제 정책 거버넌스'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의 '바이오 규제 정책 거버넌스: 한국과 영국의 비교 분석과 시사'에 따르면, 이러한 이유가 상세히 기술돼 있다.

한국과 영국은 모두 바이오 규제와 관련해 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조직을 거버넌스의 정점에 위치시키고 있다.

한국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이하 국생위)', 영국은 '인간배아생식관리국(Human Fertilisation and Embryology Authority, HFEA)'가 의사 결정 기구다.

주요 근거법은 한국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법)'이며, 영국은 '인간배아생식법(The Human Fertilisation and Embryology Act)'이다.

한국의 국생위는 대통령 소속 위원회로 비상설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영국은 내각 국무장관(Secretary of States)에게만 보고하는 상설조직이다.

영국의 HFEA은 65명 내외의 직원을 갖추고 있으며, 다른 어떠한 정부 조직에도 귀속돼 있지 않다.

하지만 한국은 상설 독립사무국을 설치하지 않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생명윤리전문기관 중 하나를 지정해 사무국 기능을 자원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지정 기관은 보건복지부 소속 기타 공공기관인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다. (2015년 지정)

생명윤리법 제8조에 따라 국가위원회 국생위 구성은 대통령이 임명/위촉한다. 우리나라 국생위는 대통령 소속 위원회라는 점, 정부 6명, 과학계 7명, 윤리계 7명의 산술적 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종교계와 시민단체 또는 여성계 대표의 위촉을 법에 명시하고 있는 점이 영국과 차이점이다.

영국의 경우, 위원(Authority Member)은 현재 의장, 부의장 포함 14명으로 구성돼 있다. 국무장관이 임명하며 바이오 분야 연구와 관련된 전문가, 즉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다만 의장과 부의장은 인간배아 생식세포 관련 연구와 무관한 사람을 임명해야 한다. 즉,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의장과 부의장은 객관성을, 위원의 경우는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한국은 국생위 위원 명단만을 공개할 뿐, 간단한 이력사항 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반대로 영국은 위원들의 이력사항을 제공함으로써 연구계나 일반국민이 위원들의 자격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위원 소개 페이지에는 이력사항 외에도 '이해관계증명(Declarations of interest)'을 상술하고 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 강영철 교수는 "영국은 위원들이 위원회 활동 및 어떤 이해 관계에 노출돼 있다면 이를 공개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력사항은 물론 이해관계증명도 공시하지 않는다. 국민들과 관련 연구자들의 입장에서는 깜깜이 인선이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 국생위는 기관 홈페이지에서 생명윤리위원회 회의록을 확인할 수 없다. 한국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연례보고서'에서 한 해 동안의 회의록을 약술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통한 실시간 업데이트는 없으며, 위원 개개인의 발언 내용은 의사결정과 관계없는 위원 워크숍이나 세미나의 경우에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영국 HFEA 홈페이지는 위원회(Member Committee) 회의 내용이 거의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HFEA는 회의 내용의 녹음 파일도 공개한다.

강영철 교수는 "한 마디로 평가하면 영국은 공개주의가 원칙이나 한국은 비공개주의를 고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도 비밀주의를 타파하고 모든 회의록를 상세히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회의록 및 녹음 기록의 공개는 관련 연구자 및 환자 등 이해관계자, 바이오 기업, 일반 국민들에게 바이오 정책의 흐름과 미래 방향을 예측하는 '이정표'를 제공하는 것이다. 관련 분야 종사자들에게 불확실성을 제거해주기보다는 이를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회의록 공개는 위원들의 전문성과 신의성실의무 이행을 검증하는 중요한 수단이다"라고 조언했다.

강 교수는 한국 국생위를 바이오 분야 이해관계자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국생위 구성을 숫자적 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국은 생명윤리 연구 및 산업, 생명윤리기술 수혜자(불임시술환자 등) 등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가 아닌가에 따라 범주적으로 인적 구성을 제한하고 있다.

영국은 3분의 1 이상의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킴으로써, 연구 윤리 판단에 실제 현실을 반영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영국은 불임시술경험자를 포함시킴으로써 '환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 그에 반해 한국에서는 '환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

강 교수는 "한국은 특정 전문가 집단들에 의해 관련 분야의 발전이 좌지우지되만, 영국은 현장의 수요를 추적하면서 일정한 선을 넘지 않도록 관리 감독하는 거버넌스 구조를 만들었다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국의 바이오 의사결정 거버넌스의 핵심은 이해당사자와 비(非)이해당사자간의 균형점을 찾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한국은 이에 대한 고려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과 영국의 의사결정기관을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정부 측 위원들의 참여 여부였다.

한국의 국생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교육부, 법무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장관 등 6명의 장관을 당연직 위원으로 하고 있다.

강 교수는 "이러한 정부 부처 장관급 위원의 참여는 그 목적도 불분명하다. 각 부처가 가지고 있는 바이오 관련 규제의 관점에서 사안을 심사하라는 것인지, 바이오 분야 발전을 위해 각 부처의 권능을 제공하고 필요하면 각 부처의 규제를 개선하라는 것인지 방향성이 없다"고 말했다.

영국은 인간배아생식관리국(HFEA)의 수장인 최고 책임자(Chief Executive)만이 위원회(Member Meetings)에 참여한다. Chief Executive는 국무부 장관에만 보고할 뿐 보건복지나 산업분야 정부부처에 보고 의무가 없다.

이를 볼 때 HFEA는 국무부 소속 독립기관으로써 부처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가능한 구조다.

강 교수는 "영국은 시장과 현실의 수요를 반영해 필요할 경우 관련 부처 규제의 개선 방향까지 논의할 수 있는 구조이다. 한국은 기존 규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개별 사안에 대해 심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 과연 독자적으로 위원회에 '비동결난자',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규제의 개선을 심의 부의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국생위에게 독립 상설기구의 위상을 부여하고, 대통령이 아니라 내각 통할권을 갖는 국무총리에게만 보고하는 기관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국가생명윤리정책원도 국생위 산하 조직으로 전환시켜 국생위 사무국 역할에만 충실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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