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일차의료는 필요 없다"‥의사회, 현장 기반 정책 촉구

"보고서 말고 진료실을 봐야"…예방·조기개입 앞장선 개원의들
제안은 넘치고 변화는 멈췄다…"진짜 문제는 정책의 체감도"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5-21 05:56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일차의료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확산, 의료자원의 수도권 집중, 상급병원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환자를 가장 먼저 만나는 일차의료기관은 필수의료의 첫 관문이자, 마지막 안전망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일차의료 기능 강화를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이를 수행할 당사자인 개원의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진료과별 학회와 의사회는 "말뿐인 선언만으로는 실효성 없는 정책이 반복된다"며, 일차의료를 진짜로 살리고자 한다면 현장 의료인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최근 진료과별 의사회가 일제히 예방 중심 진료, 조기 개입, 환자 중심 관리의 필요성을 꺼내들고 있다. 기존처럼 정책을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대한내과의사회는 최근 '대선기획위원회'를 발족하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일차의료 활성화 방안을 담은 의견서를 각 정당에 전달하기도 했다. 진료실의 경험이 정책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절박감이 담긴 행보다.

개원의사회의 이러한 등판은 단순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현실을 진짜 아는 쪽에서 말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라는 자조적 인식도 깔려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정부가 추진 중인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은 개원의들과 환자들 모두에게 외면받고 있다. 과도한 행정업무와 낮은 수가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의사회는 정부가 일차의료를 강화하려는 취지는 긍정적이지만, 개원의들이 실제로 참여하고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보다 현실적인 지원책 마련을 요구했다.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유승호 공보이사는 "사업이 성공하려면 단순한 운영이 아니라 개원의들이 실질적인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짚었다.

대한투석협회는 최근 개원의들과의 협력을 통해 만성 콩팥병의 예방과 조기 진단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성남 이사장은 "협회는 이제 신대체요법 중심의 기존 역할을 넘어 일차의료 현장에서 예방적 진료에 보다 적극 참여하겠다"며 "개원가에서도 고위험군 환자의 조기 진료를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는 것이 협회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대한임상순환기학회는 단순한 질환 치료를 넘어 통합적 환자 관리로의 전환을 통해 일차의료의 실질적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재춘 회장은 "우리는 일차의료 중심 학회로서 당장 환자에게 이득이 되는 관리의 개념에 집중하고 있다"며 "현장 의사들이 겪는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 가이드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대한의사협회가 최근 공개한 정책제안서에도 담겼다.

의협은 "의료기관의 종별 기능과 역할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상급의료기관 쏠림이 심화되고,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인 일차의료가 붕괴 위기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일차의료 중심의 의료·돌봄 활성화를 위해 ▲의료기관 종별 기능에 따른 수가 개편 ▲의뢰·회송체계 정상화 ▲지역 내 의원 간 협진 활성화 ▲경증·중증 분류체계 정비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처럼 의료계 내부에서도 제도 개선의 방향성은 공유되고 있음에도, 진료과별 의사회가 각자 나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정책은 말하지만 현장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구조가 없다면 아무리 정교한 제안도 허공에 그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개원의사회들은 공통적으로 "일차의료는 단순히 진료의 시작점이 아니라 환자 건강을 장기적으로 책임지는 기반"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인프라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정책 설계는 반복되지만 진료실 안에서는 여전히 현실과의 괴리가 크다는 것이 이들이 말하는 '위기'다.

결국 의료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개원의들이 더는 정책 수용자에 머물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이러한 행동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선언은 충분했고 이제는 실천이 필요하다. 정책 보고서나 시범사업만으로 일차의료의 정답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진짜 일차의료는 진료실 안에서 시작되며 현장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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