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80%, HIV 인식 개선 필요"…HIV 편견 종식될까

의료·환자·산업계 뜻 모아 'RED 마침표 협의체' 출범
병원 내 차별 여전…우울·자살 위험 높게 나타나

조해진 기자 (jhj@medipana.com)2025-09-11 05:55

RED 마침표 협의체. 사진=길리어드 사이언스
[메디파나뉴스 = 조해진 기자]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낙인 및 편견으로 인한 차별이 사회 곳곳에 여전히 남아있지만, 국민 80%가 HIV 감염에 대한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면서 향후 HIV 인식 개선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의료진, 환자단체, 학계, 산업계(대한에이즈학회, 한국감염인연합회KNP+, 러브포원, 함께서봄, 공공소통연구소,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가 함께 뜻을 모아 출범한 RED 마침표 협의체가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협의체는 이날 HIV 감염인의 실태 확인 및 HIV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 등의 데이터를 공개하고, RED 마침표 캠페인을 통해 보다 실질적인 인식 개선 및 정책 지원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태조사, HIV 감염인 절반 이상 의료 현장에서 차별 경험

이번 간담회에서는 HIV 감염과 관련한 여러 데이터들이 공개돼 RED 마침표 협의체 출범 및 캠페인 시행에 대한 당위성을 뒷받침했다. 

KNP+, 러브포원 등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HIV 감염인 799명의 응답자 중 47%가 병원을 우호적이지 않은 공간으로 인식했고, 타 진료과와 협진 중 하나 이상 불편함을 경험한 비율은 응답자 중 63%를 차지했다. 

또한 지난 5년간 병원에서 ▲별도의 기기나 공간 사용 ▲병원 직원의 수군거림 ▲채혈실 직원의 부정적 태도 ▲협진 시 의료진의 부정적 태도 ▲수술 또는 시술 거부 등의 문제 상황을 하나 이상 경험한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51.9%를 기록했다. 절반 이상의 HIV 감염인들이 편견으로 인해 겪는 차별로 삶의 질 저하 및 건강권 침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러브포원이 주관한 감염인 대상 조사에서는 10명 중 4명의 HIV 감염인이 우울 증상을 겪고 있거나,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비감염인 대비 4~10배 높은 수준이다. 

또한, 국내에서 2017년 HIV 양성 진단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5년간 사망률을 분석한 결과, 감염인은 비감염인에 비해 자살 사망 위험이 1.84배 높았다. 
(왼쪽부터) 김태형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 진범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내과 교수, 손문수 KNP+ 대표,
김승환 신나는센터 상임이사,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사진=조해진 기자
패널 토론 좌장을 맡은 김태형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는 본 적이 없는데, 간혹 삶을 포기하는 분들이 있다"며 "과학이 많은 예방과 치료의 혜택을 환자들에게 줄 수 있음에도, 사회의 시선과 차별은 삶을 포기할 정도의 어려움을 주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손문수 KNP+ 대표는 "HIV 감염인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확진이 아니라 주위에서 내 병을 알게 되는 것"이라며 "부모나 친구, 가족들한테도 이야기를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응급상황에서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에서도 진료를 거부 당하는 것이 절반에 가깝고, 직장 검진에서 HIV 양성이 뜨자 강제로 퇴직을 당하기도 한다. RED 마침표 캠페인을 통해서 이러한 차별이 빠르게 뿌리 뽑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 인식 변화 가능성…"80%가 개선 필요성 공감"

이처럼 실태 조사 내용들은 무거운 결과를 보여줬지만, 인식 개선에 대한 희망은 남아있었다.  

비영리법인 '신나는센터'는 지난 5월 14일부터 같은달 27일까지 한국리서치와 함께 전국의 전 연령층(만 20~69세) 일반 국민 3000명을 대상으로 'HIV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를 실시해 ▲HIV 질환 인지도와 이해도 ▲사회적 오해와 편견에 대한 정량적 수치 ▲공중보건 관점에서 HIV 정책과 지원에 대한 국민 인식 등을 확인했다.

조사 결과, HIV 질환에 대한 인지도는 전체 응답자 중 82%가 인지하고 있으나, HIV와 AIDS를 구분해서 이해할 정도의 높은 수준의 인지도를 보이는 응답자는 25% 수준에 그쳤다. 

전체 응답자 중 '사회가 HIV에 대해 개방적/포용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인식한 답변은 13%정도였다. 

이어 '현재보다 HIV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매우 그렇다'가 21%, '그렇다'가 59%로 국민의 80%가 인식 개선에 동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HIV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 주요 결과 일부. 사진=조해진 기자
또한 정부 차원의 정책 지원 등을 통해 HIV 감염 위험을 줄일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78%가 그렇다고 답변했으며, HIV 감염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서는 81%가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김승환 신나는센터 상임이사는 "동성 결혼의 제도화를 할 때마다 가장 많이 부딪히는 것이 '아직 사회가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것인데, 가장 큰 명분이 바로 HIV 이슈였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이라며 "2013년도 전 국민의 40% 정도만이 동성 결혼을 지지한다는 조사가 나왔었는데, HIV에 대해서는 전 국민 80%가 인식 개선과 정부 지원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데이터가 나온 것은 2배의 긍정적인 수치"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데이터는 RED 마침표 캠페인 협의체를 중심으로 해서 꾸준히 캠페인을 해간다면 어느 캠페인보다 훨씬 더 빠르게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진범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내과 교수는 "의료인들도 아직 막연하게 알고 있고, 과거 강한 부정적 인식만 기억에 남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감염인들이 병원에서 느끼는 좌절 등을 최소화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부분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HIV와 AIDS가 다르다는 사실,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으면 전파가 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상식 홍보를 넘어 AIDS 용어 변경, 데이터를 기반으로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책정하는 것도 인식 개선에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IV 감염 편견 종식 위한 'RED 마침표 협의체' 출범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사진=조해진 기자
이날 이종혁 공공소통연구소장(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은 RED 마침표 협의체를 출범하게 된 계기에 대해 "해외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사각지대들에 대한 캠페인을 단기적인 이벤트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며 "한국 역시 우리의 메시지를 가진, 지속가능한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데 생각이 모아졌고, 우리의 언어로, 국민들을 대상으로 HIV 관련 캠페인이 진행돼야 커뮤니케이션의 사각지대를 메워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RED 마침표 캠페인은 2030년까지 우리 사회의 HIV에 대한 포용성, 지속가능한 인식 변화 구조를 구축하고, 협의체와 함께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그룹을 확산, HIV에 대한 국내 사회적 인식 지표 50% 이상 개선을 목표로 한다. 

이 소장은 "궁극적으로 정부와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협력하고 방법을 모색할 때, HIV 질환을 예방할 수 있고, 감염인들이 차별로 인해 겪는 문제들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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