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리처방, 환자 편의와 안전성의 균형

법무법인(유한) 대륜 의료제약그룹 김진주 변호사

이정수 기자 (leejs@medipana.com)2025-09-29 05:50

치매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가 환자를 대신해 병원을 찾았다가 '환자 본인이 직접 오셔야 한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리는 사례는 낯설지 않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 만성질환으로 의약품의 장기 복용이 필요한 환자에게 대리처방, 정확히는 '처방전의 대리수령'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치료 연속성의 핵심 요소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에게 직접 진찰을 받은 환자만이 처방전을 수령할 수 있다고 정하면서도, 예외적으로 환자의 의식이 없는 경우 또는 거동이 현저히 곤란하고 동일한 상병(傷病)에 대해 장기간 같은 처방이 이뤄지는 경우와 같이 매우 제한적 상황에서만 처방전을 대리 수령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환자의 직계존·비속, 배우자 및 배우자의 직계존속, 형제자매 등만이 대리수령자가 될 수 있다. 약사법 또한 원칙적으로 환자 본인의 직접 수령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규정은 환자와 가족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장거리 이동이 어려운 농어촌 고령 환자, 돌봄과 생업을 병행해야 하는 보호자에게는 더 큰 문제다.

'처방전의 대리수령'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2024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20%를 넘어서며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치매나 암, 만성질환의 유병률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의료취약지 문제와 맞물리면서 단순 재진이나 약 처방을 위해 환자가 직접 내원해야 하는 현 제도는 환자 중심의 의료 흐름과 괴리를 보인다.

그렇다고 무분별한 허용이 결코 능사는 아니다. 우선적으로 의사의 환자에 대한 대면 진료가 전제돼야 한다. 환자가 직접 진료를 받지 않으면 의사가 정확한 임상적 증상과 변화를 확인하기 어렵고, 약물 부작용이나 오남용의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약이 제3자에게 잘못 전달되거나 환자의 동의 없이 수령되는 경우 개인정보 보호 문제는 물론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특히 요즘은 마약류인 향정신성의약품에 대한 처방과 대리수령으로 인해 마약 유통과 약물 오남용 등 사회적 문제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편의성과 안전성의 균형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따라서 제도적인 보완이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환자 동의 기반의 엄격한 보호자 등록제를 도입해 가족들이 합법적으로 대리수령하는 방안을 제도화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러한 방안들이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들을 면밀히 검토해 병원 진료·처방·약국 단계에서의 종합적인 제도적 해법을 마련한다면, 환전과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균형의 문제와 관련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리처방, 즉 처방전의 대리수령 문제는 환자 편의와 안전성, 의료인의 책임과 환자의 권리가 복합적으로 얽힌 영역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이 환자의 삶의 질, 나아가 사회 전체의 돌봄 체계와 직결된 문제라는 점이다. 환자의 안전을 담보하면서도 가족의 부담을 완화하는 제도적 해법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초고령 사회로 향하는 우리 의료계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기고| 법무법인(유한) 대륜 의료제약그룹 김진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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