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못해도 일단 받아라? 응급의료진 "올해 안에 탈출"

"중증환자 강제이송, 응급실 뺑뺑이 가리는 착시효과 불과"
사법리스크 확대 불 보듯…"응급실 현장 불만 과중"

조후현 기자 (joecho@medipana.com)2024-01-30 06:07


[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응급실에서 중증환자 이송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지침이 나올 것으로 알려지며 응급의료 현장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사법리스크 부담을 호소하던 응급의료 현장에선 최종치료가 불가능해도 환자 이송을 거부할 수 없다는 내용에 현장을 떠나겠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29일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최근 응급실 수용곤란고지 관리 표준지침안 최종안 내용이 알려진 뒤 의사회 커뮤니티에 이 같은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계에 따르면 표준지침 최종안은 응급의료기관은 응급환자 이송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한다. 특히 소아 등 전문응급의료센터와 권역센터는 최종치료 유무와 상관없이 환자 이송을 거부할 수 없고 모든 결정책임은 책임전문의가 지도록 하고 있다. 병원 전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체계(Pre-KTAS) 1~2등급인 중증환자의 경우 119가 사전통보 후 이송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모든 병원이 환자를 받지 못할 경우 구급상황관리센터가 이송병원을 선정하며, 이는 거절할 수 없다.

반면 치료불가 상태로 환자를 받았을 경우 결과가 좋지 않아도 법적 책임감면은 없는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2주 전 대한응급의학회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최종안 검토를 요청해 왔고, 논의체에 포함되지 않은 응급의학의사회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 지침이 확정될 경우 사법리스크 확대가 불 보듯 뻔하다는 것.

지방의 경우 Pre-KTAS 1~2등급 중증환자 최종치료가 가능한 병원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몇 군데 되지 않는 대형병원은 수술할 의사나 수술실 등 최종치료 인프라가 포화상태를 겪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강제이송 병원으로 지정된다면 환자 상태가 나빠질 경우 응급실 의사가 법적 책임을 '뒤집어 쓸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은 "이번 지침은 최종치료가 되든 안되든 일단 받으라는 게 핵심"이라며 "연락 없이 환자를 데려오던 과거로 회귀하는 셈인데, 그 때와 달라진 점은 응급실 사법리스크가 훨씬 커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우려에도 이 같은 지침이 강행되는 배경으로는 '응급실 뺑뺑이' 현상을 표면적으로라도 사라지게 하기 위한 착시 효과를 지목했다. 최종치료인 수술이나 시술은 불가능하더라도 환자를 받은 응급실 사법리스크는 커지겠지만, 강제 이송으로 응급실을 전전하는 구급차는 사라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

이 회장은 "응급치료가 최종치료인 것처럼 정책을 짜면 거짓말"이라며 "최종치료, 즉 필수의료를 당장 살릴 방법이 없다 보니 결국 응급실 뺑뺑이라는 현상을 착시로 없애는 방식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지침 최종안 내용이 공개되자 응급의학의사회 온라인 커뮤니티엔 응급실을 떠나겠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커뮤니티엔 '다 뒤집어쓰게 생겼다'거나 '올해 안에 탈출하겠다. 남은 분들 구속됐다는 뉴스 봐도 그러려니 하겠다', '답이 정해져 있으니 사직할 수밖에 없는 상황' 등 회의적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이 회장은 "지금까지 응급실 의사들은 법을 만들어버리면 주는대로 받았다"면서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에 불만이 너무 많이 누적된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지침 마련에 참여하고 있는 응급의학회는 논의 중인 사안으로, 지침에 일방적으로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학회 역시 이 같은 현장 우려를 지속 전달하고 있다는 것.

특히 형사 책임을 면책해달라는 점을 강력하게 전달하고는 있지만 쉽지 않다는 점도 부연했다. 최종치료가 불가능해도 누군가 우선 받는다면 환자 안전에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면책이 필요하지만, 정부 의지에도 법조계나 국회 등 넘어야 할 단계가 많아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응급의학회 관계자는 "의료계 우려도 있지만 국민들 불만도 사실이다. 해결하기 위해 논의하는 과정인데, 환자 안전에 위해되는 방향이라면 당연히 반대할 것"이라며 "논의 단계에서 우려는 충분히 이해한다. 학회도 현장 우려를 지속 전달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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