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최성훈 기자] 트럼프발 미국 의약품 가격 인하 정책 여파가 국내 신약 접근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이 의약품 가격을 전세계 최저가 수준으로 인하한다면, 약가 정책상 국내 들어오는 신약들이 설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국내 신약 대부분이 글로벌 제약사 제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최혜국 규정(Most Favored Nation Policy)' 도입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약값을 지불하는 국가와 동일한 가격을 내도록 하는 최혜국 규정을 제정하는 행정명령에 사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혜국 규정이 도입에 따라 미국 내 처방 약과 의약품 가격을 최대 59%까지 내린다고 했다.
의약품 가격 인하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약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꼽았다. 동일한 회사가 동일한 공장과 연구소에서 제조한 동일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5배에서 최대 10배까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급작스런 미국 의약품 인하 추진에 국내 다국적제약사 업계도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인상을 유보한 것처럼 당장 의약품 인하에 나서진 않겠지만, 만약 현실화된다면 국내 미치는 파장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다국적 제약사 A임원은 메디파나뉴스와 통화에서 "우선 미국 내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1기 때도 약가 인하 행정명령에 서명했지만, 미국 제약업계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바로 59%까지 약가를 인하하기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약가 인하가 실제로 단행된다면, 국내 신약 도입 속도는 늦춰질 수밖에 없다"며 "글로벌 제약사에게 있어 한국은 주요 마켓이 아닌데다, 자칫 다른 나라들에게 약가 문제에 있어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우리나라 정부가 다국적 제약사에 요구하는 신약 가격은 이미 OECD(세계경제개발기구) 최저가 수준까지 내려 왔다는 점을 들었다.
그럼에도 건강보험 급여 등재가 절실한 다국적 제약사들 입장에선 정부 제시안을 일정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어 이러한 최저가 유지 전략은 쭉 이어져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작년 보험 급여가 적용된 항체약물접합체(ADC) 항암제 '엔허투'도 세계 최저가(보험 상한금액)로 등재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기존 급여가 된 약조차 미국발 약가 이슈로 인해 국내 시장 철수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블록버스터 당뇨약 '포시가'는 국내 약가 인하 이슈로 지난해 국내 철수한 전력이 있다. 깎인 국내 약가가 외국 약가에 참조가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궤양성 대장염 치료 신약인 '옴보'도 최근 급여 진입 직전까지 갔지만, 국내 들어오지는 못했다. 포시가와 마찬가지로 외국 약가에 참조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임원은 "국내 낮은 가격 때문에 지금도 신약 출시가 늦어지고 있는데, 미국 약가 인하가 현실화된다면 낮은 상한금액을 받은 의약품의 철수를 고려하거나 급여 협상을 더 이상 진행하지 말라는 본사 압력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서 다국적 제약사들의 매출 감소가 이뤄지는 만큼, 국내 지사들은 더욱 실적 압박에 놓일 것으로도 내다봤다.
다국적 제약사 B임원은 "미국 내 약가가 내려가면 글로벌 제약사들 미국 내 손실을 타 국가에서 보전해야 할 것"이라며 "미국을 제외한 각 글로벌 지사들이 운용 부담을 느끼게 될 확률이 높다. 신약 도입이 늦어지는 것은 물론 대규모 인력 조정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미국 약가 인하 추진을 계기로 국내 신약 접근성 문제를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다국적 제약사 C관계자는 "약가 인하가 당장 국내 문제로까지 연결되는 건 OECD 최저가 정책을 유지하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면서 "(상한금액을) 보다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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