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최성훈 기자]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해지고 있는 의약품이 있다. 급증하고 있는 국내 난임 환자들의 '종착지'로 떠오르면서다. 특히 '원인 불명의 난임'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3번 이상의 반복 착상 실패를 경험한 환자들이 이 약을 통해 임신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약은 국내에서 제조·판매되는 유일한 에녹사파린 제제로, 2021년 5월 국가퇴장방지의약품으로까지 지정됐다. 유영제약 '크녹산(Cnoxane)'의 이야기다.
크녹산은 에녹사파린 나트륨을 주성분으로 하는 저분자량 헤파린(LMWH) 제제다. 항응고 작용을 통해 정맥혈전 색전증(VTE) 치료제로 쓰인다. 시험관 시술 시에는 피를 묽게 해 산모 자궁의 혈류를 증가시켜 착상이 잘 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반복 유산이나 착상 실패 예방을 돕는 보조적 항응고요법으로 쓰이는 셈이다.
이 제제는 주로 순환기내과와 정형외과에서 혈전 예방을 위한 주사요법으로 사용돼왔다. 그러다 난임 치료에서 활발히 활용되기까진 유영제약 마케팅부 이구 팀장(부장)의 노력과 헌신이 숨어 있었다. 2012년 출시 직후부터 난임 치료 시장을 적극 공략한 덕분이다.
이러한 명맥은 유영제약 마케팅부 오지현 주임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는 2023년부터 현재까지 크녹산 PM을 맡아 오며, 활용 가치를 지속 확장시키고 있는 인물이다. 그 결과 최근 유영제약으로선 큰 결실을 맺었다. 한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결과에 따르면, 에녹사파린 제제 시장에서 오리지널 의약품을 누르고 점유율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크녹산이 난임 환자의 '희망'이 되기까지. 메디파나뉴스는 최근 유영제약 이구 팀장과 오지현 PM을 만나 크녹산 성장 비결과 향후 계획 등을 들어 봤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Q.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 오지현 PM: 유영제약에 2023년 9월에 입사해 2년째 크녹산을 담당하고 있는 오지현이다.
- 이구 팀장: 이구 팀장이다. 유영제약에 영업부로 입사를 했다가 마케팅부로 발령받고 나서 처음으로 담당하게 된 품목이 크녹산이다. 그 때가 2012년이었는데, 원래 크녹산은 기대치가 덜한 품목이었다.
Q. 왜 회사 기대치가 덜했나.
- 이 팀장: 원가가 굉장히 높은 품목이기 때문이다. 사실 크녹산은 원가율이 높아 발매가 불가능한 제품이었다. 당시 유영제약이 고지혈증 치료 신제품을 발매하면서 순환기내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던 시기였다. 아무래도 대학병원에서 유영제약 인지도가 낮다 보니 포트폴리오 확장 차원에서 탄생한 약이 크녹산이었다.
크녹산 발매가 결정되고 나서부터는 전략이 수정됐다. 회사가 해당 품목을 키우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오리지널이 장악하고 있는 항응고제 치료 시장이 아닌 다른 '블루오션'을 찾았다. 그때 찾아낸 게 난임 치료 시장이다. 난임 치료에서 에녹사파린이 비급여로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유영제약은 현재까지도 난임 치료에서 크녹산 브랜딩을 지속하고 있다.
Q. 난임 치료 시장도 쉽지 않았을 듯한데.
- 이 팀장: 항응고제다 보니 "임상 데이터가 없으면 제품을 신뢰하지 못한다"라는 의사들 시각이 팽배했다. 혈액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부분 대학병원에서 처방되고 있지만, 처음엔 대학병원 랜딩조차 쉽지 않았다.
신규 시장인 난임 클리닉에선 더더욱 어려웠다. 임신을 어려워하는 예비산모가 아이를 갖기 위해 쓰는 약이다 보니 의사들도 덜컥 쓰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비급여인데다 처방 사례도 많지 않다는 점 역시 약점이었다.
하지만 나같이 경험이 없는 마케터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정공법'이었다. 일단은 많이 쓰고 있는 의사를 찾아냈다. 난임 치료로 유명한 제일병원과 함춘의원 선생님들이었다. 이들 모두 에녹사파린 투약을 통해 난임을 치료한 해외 임상 데이터를 토대로, 국내 임상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에녹사파린을) 활용하던 분들이었다. 그래서 그 분들께 부탁을 했다. 난임 치료를 공부하는 다른 후배들에게도 임상 경험을 물려줄 수 없겠냐고.
유영제약 마케팅부 이구 팀장. 사진=최성훈 기자.
Q. 그러면서 처방을 늘리게 됐나.
- 그렇다. 우리 제품 자체가 '원인 불명의 난임'인 상황에서 쓰이는 약제다. "이런 검사 저런 검사를 다 해봤는데도 도저히 이 산모가 아이가 안 생기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할 때, 쓰는 약이다. 예비산모들이 모든 방법을 써 봐도 아이가 안 생겼을 경우다. 그런데 이 분들이 크녹산을 쓰고서 아이가 생기는 사례가 너무 많이 발생을 하는 거다.
이러한 예비산모들의 절실한 환경과 임상근거(Evidence), 두 가지가 받쳐지면서 처방이 확대됐다. 게다가 '키 오피니언 리더(Key Opinion Reader)'들도 동료 임상의들에게 "에녹사파린이 이러한 원리로 써볼만 하다"며 많이 추천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우리 마케팅팀에서 절대 의도한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비산모들이 크녹산 사용기를 블로그를 통해 많이 이야기해줬다. 네이버에 크녹산 사용기만 해도 1만건이 넘을 정도였다. 이 산모들이 난임 치료 블로그를 통해 안 아프게 맞는 노하우 등을 서로 공유하더라. 그 덕에 지금은 에녹사파린 제제 시장에서 크녹산의 인지도가 오리지널 약보다 훨씬 높다.
Q. 그만큼 소회도 남다를 것 같다.
- 이 팀장: PM으로서 상당히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제네릭만갖고 계속 영업·마케팅 활동을 하게 되면 항상 한계가 있다. 반면 크녹산은 제네릭이 아닌 오리지널 약처럼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의사들을 만날 때 성분과 임상 데이터 등을 설명하면서 난임 치료에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전체 시장이 크지 않아 어마어마하게 성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최근 경사가 하나 있다. 의약품 처방 데이터 기준상으로는 (크녹산이) 오리지널 약 점유율을 넘어섰다. 또 시장 파이를 넓혔다는 점에선 마케터로서 너무 기분이 좋다.
Q. 인터뷰 사전 질의에서 "크녹산을 난임 치료 최종 종착지로 포지셔닝 할 것"이란 포부를 밝혔다. 어떤 의미인가.
- 오 PM: (크녹산은) 여러 난임 치료를 다 해보고 나서 정말 선택사항이 없을 때 선택하는 제품이다 보니 종착지라는 표현을 썼다. 이를 위해 의사들이 원하는 자가 주사 리플렛 또는 환자들이 느끼는 불편 사항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는 툴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는 의사들이 예비산모들에게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끔 가이드를 제작 중에 있다.
- 이 팀장: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우리는 오리지널 약과는 다르게 직접 의사들을 만나서 피드백을 받고 있다. 오리지널 약은 도매상을 통해 공급만 하는데, 우리는 직접 활동하면서 효과 또는 불편사항 등을 수집해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오리지널 약과 다른 우리만의 경쟁력이다.
(왼쪽부터) 유영제약 마케팅부 이구 팀장·오지현 크녹산 PM. 사진=최성훈 기자.
Q. 크녹산 마케팅을 하면서 뿌듯했거나 인상 깊었던 경험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
- 오 PM: 내가 입사하고 나서 얼마 안 됐을 때, 팀장님이 커피를 사준다고 해 같이 스타벅스를 갔다. 그때 알게 됐는데 팀장님 스타벅스 닉네임이 크녹산이더라.(웃음)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나고 팀장님에게 물어봤다. 혹시 이 닉네임을 나한테 언제쯤 주실 거냐고. 그런데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웃음)
- 이 팀장: 크녹산 PM이 된 2012년, 때 마침 스타벅스에서 닉네임으로 오더를 받더라. 그때 지었다. '내가 담당하는 품목과 한 몸이 되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나 아니면 누가 이 제품 이름을 불러주겠나. 누군가가 자꾸 크녹산을 불러줬으면 하는 나름의 소원 같은 게 있었다.(웃음)
Q. 크녹산은 국가퇴장방지의약품으로도 지정돼 있다.
- 이 팀장: 앞서 말했던 것처럼 원가가 높은 약임에도 불구하고, 급여 품목으로 돼 있다 보니 국내선 놀랄 정도로 싸다. 외국에서는 국내 비급여 가격보다 2배~4배까지 받는다. 만약 여기서 약가가 더 무너지게 되면 우리로서도 판매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판매를 중단했을 때 우리도 손해지만,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약가가 무너지면 오리지널 약까지 손을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몽골이나 러시아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크녹산을 타가는 것처럼, 똑같이 우리나라 산모들이 미국으로 가서 에녹사파린 제제를 타오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에 약가가 고정이 됨에도 불구하고, 퇴장방지의약품을 신청해 받았다. 안정적인 공급과 사회공헌 차원이다. 또 치료의 연속성이 핵심인 만큼, 약제 공급을 넘어 내부 품질 시스템을 철저히 점검해 의료 현장에서의 신뢰 확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향후 목표는.
- 오 PM: 난임 치료 시장이 큰 시장은 아니다. 하지만 크녹산이 가진 장점 중 하나는 난임 외에도 정형외과나 신장내과에서도 다양하게 쓰인다. 허가된 적응증 중에는 외과 수술 후 발생하는 혈전색전증 예방이나 혈액투석 시 체외 회로의 혈액 응고 방지 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호흡기내과에서도 쓰이는 만큼, 난임을 넘어 다양한 과로 크녹산을 확산시키는 것이 목표다. 튼튼한 시장을 구축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로 정형외과를 타겟한 다음 향후에는 혈액투석 쪽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 이 팀장: 수술 후 혈전 예방 목적으로 사용하는 부분에 대해서 가이드라인을 제작, 다시 한 번 알리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또한 투석을 오래 했던 환자들이나 헤파린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환자들의 경우 항응고제를 쓸 수 없어 대개 생리식염수를 사용하고 있다.
이때 저분자량 헤파린은 표준 헤파린에 비해 혈액 응고를 효과적으로 방지하면서도 출혈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이런 임상 데이터들을 모아 관련 임상의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고, 최근엔 조금씩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부분도 체감하고 있다.
난임이 2012년 말부터 시작해 조금씩 성장했던 것처럼 투석도 인식이 변화할 거라 생각한다. 크녹산은 우리 회사 대표 품목이다. 또 지속 판매를 해나갈 품목이기 때문에 의사들에게 유효성 및 안전성을 계속 알려나간다면 충분히 연매출 100억원까지도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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