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심장질환 중 사망률이 가장 높은 '심부전'이 전문질환군에서 제외돼 상급종합병원에서조차 환자가 최적의 치료를 받지 못하는 제도적 모순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심부전학회는 심부전을 전문질환군으로 지정해 환자 생존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말부터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상급종합병원을 본래 역할에 맞게 중증·난도 높은 환자 치료에 집중하는 '중환자 중심 병원'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증 환자는 지역 병·의원과 협력해 효율적으로 진료하고,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환자 위주로 진료하도록 의료 전달 체계를 재편하는 것이다.
핵심은 '적합 질환군' 비율이다. 적합 질환군은 상급종합병원이 중점적으로 다뤄야 하는 질환군을 뜻하며, DRG A(전문진료질병군) 환자, 권역외상센터 입원 환자, 희귀질환자 등이 포함된다. 상급종합병원은 전체 환자 중 적합 질환군 비율을 70% 이상 유지해야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비적합 질환군은 점차 축소되고, 입원보다는 외래 중심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행 질환군 분류 체계는 임상적 중증도가 아니라 청구 건수에 좌우된다. 청구 건수가 일반의원에서 많으면 일반질환군, 상급병원에서 많으면 전문질환군으로 분류되는 구조적 한계 탓이다. 그 결과 당뇨병은 일반질환으로 묶이는 반면, 임상적으로 덜 중증인 대사증후군은 전문질환군으로 분류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심부전 역시 이러한 불합리의 대표적 사례다.
12일 대한심부전학회 기자간담회에서 이해영 정책이사(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는 "심부전은 모든 심장질환의 마지막 합병증이자,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질환이다. 하지만 전문질환군에서 빠져 있어 환자를 입원시켜 치료할수록 병원 평가는 떨어진다. 주 치료가 수술이나 시술이 아닌 약제치료라는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심부전 입원 환자의 병원 내 사망률은 약 6%이며, 80세 이상 노인은 80세 미만보다 사망 위험이 2배 높다. 환산하면 입원한 심부전 환자가 퇴원하지 못하고 사망할 확률은 15% 이상이다.
치료 효과를 위해서는 다약제 병용, 환자 특성별 맞춤 전략, 신기능 및 혈압 관리 등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국내 상급병원조차 권고된 표준 치료 이행률은 50% 내외에 머물고 있다. 이 때문에 환자와 가족은 심부전의 중대성을 인식하면서도, 지역 일차기관에서 상급의료기관을 전전하며 치료 연속성이 끊기는 악순환을 겪는다.
국제적으로는 중증 심부전 환자의 2년 사망률이 10% 미만으로까지 개선됐지만, 국내는 여전히 심각하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국내 심부전 환자의 6개월 내 사망·재입원률은 36%로, 국제적 치료 성과와 뚜렷한 격차를 보인다.
이해영 정책이사는 "3명 중 1명이 사망하는 병인데, 상급종합병원에서조차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체 심부전 환자 중 입원 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87%로 건강보험 재정 부담도 크지 않다. 그는 "입원 환자가 퇴원 후 외래 진료만으로 조절된다면 환자당 진료비의 96%가 절감되고, 중증 심부전도 치료 수준에 따라 사망률을 60% 줄일 수 있다. 결국 심부전이 전문질환군으로 지정돼야 전문가에 의한 지속적인 외래 진료가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 서울대 간호대학 연구에서는 다학제 팀이 입원 환자 교육과 외래 관리를 담당했을 때 사망률이 24%에서 11%로 감소했고, 다직역 합동 진료 시에는 12%까지 낮아졌다.
그렇지만 현실은 행정 편의적 기준에 얽매여 있다. 심부전 진료가 전문질환군으로 인정받으려면 우심도자술, 관상동맥 조영술 등 고위험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이해영 정책이사는 "나는 검사를 행정 요건 충족을 위해 시행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검사는 어디까지나 의료적 필요에 따라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전문질환군 인정을 위해 불필요한 검사를 강요하는 현 제도 구조를 비판한 것으로, 환자에게 필요하지 않은 검사가 행정적 이유로 시행된다면 위험과 비용이 뒤따를 수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심부전학회는 이러한 불합리를 바로잡기 위해 지속적으로 전문질환군 지정을 요구해왔지만, 제도 개선은 번번이 막혔다.
이해영 정책이사는 "복지부에 이의제기를 해도 기각되고 있다. 심부전을 포함하면 다른 과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였고, 코드 신설 요구도 거부됐다"며 "정말 중증 환자가 떳떳하게 입원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심부전을 전문질환군으로 지정해야 한다.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에서 심부전이 빠져 있는 현실은 환자 진료에 심각한 위협이다. 환자 치료는 의사의 도리다. 제발 의학적 근거에 기반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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