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지연·편향 논란 불식‥의료감정원, '신뢰 회복' 승부수

의료분쟁 늘며 불신 커진 감정 제도, 변화 요구 거세져
의료감정원, 공정성과 전문성 회복 위해 교육·위원 구성 다각화 추진
법원행정처와 교류 정례화·온라인 시스템 구축 나서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9-24 05:56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 이우용 원장, 한동우 운영위원장.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료분쟁이 급증하는 현실에서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은 여러 오해와 논란에 둘러싸여 왔다. 감정 지연과 질적 저하, 대학병원 교수 중심의 위원 구성, 의사 편향 의혹은 의료감정원을 향한 대표적 비판이었다. 이런 문제제기는 곧 감정원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그러나 의료감정원은 지난 5년 동안 공정성과 전문성, 신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도적 보완과 교육 강화, 위원 구성의 다양화를 추진해왔다. 단순히 행정 절차를 손보는 데 그치지 않고, 감정 결과에 대한 불신을 줄이고 제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체계적 변화를 이어온 것이다.

23일 의협 전문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이우용 원장은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은 공정하고 신속한 감정으로 국민과 의료계 모두에게 신뢰받는 기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미 1991년부터 법원과 검찰의 요청에 따라 감정 업무를 맡아왔다. 하지만 의료분쟁이 폭증하면서 감정에 참여할 의사가 턱없이 부족해졌고, 그 결과 회신 지연과 질적 저하가 뒤따랐다. 결국 사법기관은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감정 기구'의 필요성을 거듭 요구했고, 이에 따라 2019년 9월 의사단체 산하의 독립적 의료감정 전문기구로 의료감정원이 출범했다.

감정원의 설립 목적은 명확하다. 의사단체 의료감정기구로서의 위상 정립, 공정성·전문성·신속성 확보, 증가하는 수요에 맞는 효율적 운영 체계 확립, 전문학회와의 연계 강화, 감정 경쟁력 제고다.

운영 절차도 엄격하다. 법원·검찰·경찰 등이 의료감정원에 사건을 의뢰하면, 심의위원회가 대한의학회 산하 50여 개 학회 중 적합한 학회를 지정한다. 해당 학회는 내부 의사결정을 거쳐 단수 혹은 복수의 감정위원을 선정하고, 이들이 작성한 감정서는 학회 차원의 검토와 리뷰를 거쳐 의료감정원으로 송부된다. 이후 감정원은 심의위원회 결재를 거쳐 의료감정원장 명의로 결과를 회신한다. 추가 질의가 발생하면 다시 학회로 보내 보완 감정을 진행하는데, 이 역시 의료감정원장 명의로 회신한다.

특히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는 판결 결과가 곧바로 진료 기피나 소극적 방어진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복수감정이나 이중검증을 통해 한층 신중히 다뤄진다.

이우용 원장은 "필수의료 분야는 소송 결과가 현장에 미치는 파장이 큰 만큼, 감정 과정에서 더욱 엄정함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흔들린 신뢰의 과제

감정 지연 문제는 오래된 난제였다. 감정이 늦어지면 재판 자체가 지연되고,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불신이 쌓였다. 이 불만은 결국 "감정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번져 나갔다. 의료감정원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개선에 착수했다.

올해 1월 대법원 예규 개정으로 감정료가 기존 대비 2배 인상됐고, 사무처 인력은 3~4명에서 5명으로 증원됐다. 매주 1회에 그쳤던 학회 배정 심의는 2개조 운영으로 확대돼 감정 대기 시간을 단축했고, 장기 미회신 건은 모니터링을 통해 학회에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

한동우 운영위원장은 "감정료 인상은 올해 1월 1일부터 대법원 예규 개정으로 확정됐다. 현실화된 감정료가 양질의 신속한 감정을 유도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지연의 원인으로 법원의 우편 중심 절차도 지적됐다. 이우용 원장은 "법원과의 간담회에서 감정 자료의 전자화와 전자전송시스템 구축을 협의하고 있다. 제도가 개선되면 지연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정성 강화를 향한 노력

교육 강화는 신뢰 회복의 핵심 과제로 꼽혔다. 의료감정은 단순한 의학 지식 전달이 아니라 판결의 향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임상 경험이 풍부한 의사라 하더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으면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동우 위원장은 "임상 경험이 뛰어나도 감정을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정한 감정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이 필수"라고 짚었다.

이우용 원장은 자신의 경험을 돌아봤다. 그는 "조교수 시절 처음 감정을 맡았을 때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교과서대로만 회신했다. 하지만 법원의 언어와 의료의 언어는 다르다. 의사는 '아쉽다'고 표현해도 법원은 '잘못됐다'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같은 내용을 다르게 이해하지 않도록 용어부터 교육해야 한다. 감정위원 교육은 의도의 정확한 전달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감정위원들이 같은 용어와 잣대를 공유해야 신뢰할 수 있는 감정이 가능하다"며 "A라는 의도로 감정했는데 판결은 B로 나온 사례처럼 괴리가 생기지 않도록 토론하는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감정원은 매년 2회 기본 인증교육과 학회별 사례 중심 심화교육을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앞으로는 인증교육을 3시간에서 더 체계화하고, 교육 이수 의무화를 대법원 예규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한 감정회신서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동료심사(Peer Review)' 제도도 확대할 예정이다.

현행 제도상 대학병원 교수 중심으로 감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어 위원 구성의 한계도 꾸준히 제기됐다. 일부 학회는 개원의 참여가 전혀 없고, 일부는 소수만 참여하는 등 학회별 편차도 크다.

한동우 위원장은 "개원가에서도 감정위원으로 참여하는 분들이 있지만 실제 감정은 주로 대학병원 교수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짚었다.

이우용 원장은 "대법원 예규상 자격 요건이 대학 교수이거나 퇴직 후 10년 이내 전문의로 제한돼 있다"며 "개원의 참여를 학회에 요청하고 있고, 자격과 교육을 충족하면 참여가 가능하다"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대학 교수는 '교과서 위주', 개원가는 '현실 위주'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결국 두 시각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감정과 판결의 관계에 대해서도 시각이 이어졌다. 감정은 판결의 중요한 근거이지만, 법원의 판단 방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반영되기도 한다.

이우용 원장은 "우리는 판결을 내리는 기관이 아니다. 판사가 판단할 때 도움이 되도록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역할이며, 편향되지 않고 공정성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라고 분명히 했다.

이어 "99% 문제없다고 써도 판사가 1% 아쉬운 점을 근거로 삼을 수 있는데, 이는 판사의 재량"이라고 덧붙였다.

향후 발전 방안으로는 법원행정처와의 교류 정례화를 통해 법조계의 이해를 높이고, 감정 자료의 전산화와 온라인 시스템 구축으로 감정 기간을 단축하는 한편, 기능과 규모 역시 확대한다는 구상도 내놨다.

이우용 원장은 "감정원의 존재 이유를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성과 전문성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근거 중심으로 판사가 올바른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의견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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