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개원의협의회 경문배 총무이사, 박근태 회장, 은수훈 공보이사, 대한일반과개원의사회 좌훈정 회장.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국회와 정부가 접근성과 편의성을 앞세운 의료제도 개편을 밀어붙이자 의료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 공적 전자처방전 도입, 대체조제 사후통보 간소화, 성분명 처방 의무화까지 의료 현장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법안들이 잇따라 추진되면서 대한개원의협의회는 "환자 안전과 의료의 전문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전방위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의료계는 산업화 논리와 행정 편의가 강조될수록 환자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을 떠안고, 책임은 고스란히 의사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대면 진료 및 전자처방전
비대면 진료는 팬데믹을 계기로 확산됐지만, 제도화 과정에서 안전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대개협은 ▲대면 진료 원칙 ▲재진 환자 중심 ▲의원급 중심 ▲전담기관 금지라는 네 가지 원칙을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제시해왔다.
그러나 최근 논의에서는 초진 환자 허용, 전담기관 신설, 공적 전자처방전 도입 등이 거론되며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의료계는 이러한 움직임이 오진 위험과 책임소재 불분명 문제를 키우고, 일차의료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28일 대한개원의협의회 제36차 추계연수교육 학술세미나 기자간담회에서 경문배 총무이사는 무분별한 비대면 진료의 피해가 결국 환자에게 돌아가고, 그 부담은 정부가 아닌 의사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의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 일반 상품은 잘못 사면 환불이나 반품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진료는 다르다. 비대면 진료에서 잘못된 진단이나 치료가 이뤄지면 돌이킬 수 없다"고 말했다.
대개협은 법안이 통과될 경우 무분별한 진료를 막기 위해 의료계 내부의 자율적 관리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핵심은 가칭 '표준지침위원회'를 설치해, 의원급 중심 운영 원칙과 의사 수 기준 적용, 내부 행정 제재까지 포함한 지침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자율 규제 장치로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박 회장은 "비대면 진료를 완전히 반대할 수는 없다. 이미 논의가 많이 진행된 만큼 재진 원칙은 지켜야 하되, 초진은 제한적으로만 허용해야 한다. 병원을 방문한 이력이 있는 환자에 한정하고, 처방약의 종류와 처방 일수에도 제한을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법안이 통과되면 곧바로 표준지침위원회를 구성해 무분별한 진료를 막을 지침을 만들겠다. 의원급 중심 운영과 의사 수 기준 적용, 내부 행정 제재까지 포함해 자율적인 관리체계를 마련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전자처방전 도입 논의에 대해서도 대개협은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 환자 확인 과정의 혼선, 약국 현장의 비효율성 등 문제점이 뚜렷하다는 이유다. 단순한 편의성을 이유로 민감한 의료정보를 대규모 서버에 축적하는 것은 환자 안전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박 회장은 "전자처방전은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크고, 환자 확인 과정에서도 혼선이 발생한다. 환자가 과연 전자처방전을 원하는지도 의문"이라며 "편의보다 안전이 우선이므로, 전체 진료로 확대하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대체조제·성분명 처방
대체조제 통보법 개정의 핵심은 통보 방식의 변화다. 지금까지는 약사가 대체조제를 하면 원칙적으로 즉시 또는 1일 이내, 부득이한 경우에만 3일 이내에 전화나 팩스로 처방 의사에게 직접 알리도록 돼 있었다. 이에 반해 개정안은 심평원의 정보시스템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새로 허용했다.
의료계는 이는 단순한 행정 간소화가 아니라, 통보 지연과 정보 단절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결과라고 봤다. 동일 성분 의약품이라도 첨가제나 제형 차이에 따라 효과와 부작용이 달라질 수 있는데, 통보가 며칠씩 늦어지면 의사가 환자 상태 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은수훈 공보이사는 "현행은 약사가 대체조제 후 24시간 안에 전화나 팩스로 의사에게 직접 통보하도록 돼 있다. 반면 개정안은 심평원 시스템을 통한 간접·지연 통보를 허용하는데, 이는 환자 안전 위협, 의사 처방권 침해, 책임 소재 불분명, 의약분업 원칙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단순히 기존 제도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 개선책도 제시했다. 통보기한을 대폭 줄이고, 의사가 즉시 환자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라는 주장이다.
박근태 회장은 "원래 통보는 즉시, 부득이하면 1일, 최대 3일 이내로 규정돼 있었지만 심평원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3일 이내' 규정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반드시 24시간 이내로 단축하고, 의사가 DUR 시스템 등을 통해 즉시 인지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환자에게는 전자나 서면 동의서를 받아야 하고, 약 봉투에도 '대체조제' 사실을 표시해야 한다. 사전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대체조제로 인한 약화사고의 최종 책임은 약사가 져야 하며, 대체조제를 과도하게 하는 약국은 상시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분명 처방 의무화 법안도 의료계의 거센 반발을 부르고 있다. 국회는 수급 불안정 의약품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의료계는 근본 원인을 잘못 짚은 처방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의약품 수급 불안은 원료 수급 차질이나 지나치게 낮은 약가 구조, 공급망 왜곡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법안은 이를 외면한 채 성분명을 적도록 강제하면서,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법안은 수급 불안정 의약품을 '환자 진료·치료에 어려움이 발생하거나 우려되는 경우'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정의하고, 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만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의료 현장의 상황과 동떨어진 판단을 제도화할 위험이 크다. 또한 의료계는 동일 성분 의약품이라도 제형·부형제·안정성 차이에 따라 환자 맞춤 처방이 필요하지만, 성분명 처방 강제는 이러한 임상적 판단을 무력화시켜 치료 효과와 환자 안전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풀이했다.
특히 개정안에는 성분명 처방을 따르지 않았을 경우 1년 이하 징역형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 조항까지 포함됐다. 대개협은 이를 두고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과도한 규제"라며, 의약분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박 회장은 "성분명 처방 법안 통과는 의약품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수급 불안정 의약품은 지금까지 대체조제로 대응해왔다"며 "성분명 처방을 하지 않으면 징역이나 벌금으로 처벌하는 건 과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은수훈 공보이사도 "명분은 수급 불안정 해소지만, 실제 원인은 정부의 일방적 약가 결정 구조와 공급망 문제에 있다. 이를 외면한 채 성분명 처방을 강제하는 것은 의약분업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동의했다.
대한일반과개원의사회 좌훈정 회장은 대안으로 '선택분업'을 요구했다.
그는 "수급 불안정 의약품은 원료 문제와 약가가 지나치게 낮아서 발생한다. 성분명 처방을 한다고 약이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다"라며 "차라리 국민들이 원하면 해당 의약품에 대해 '선택분업'을 허용해 환자 불편을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제언했다.
이어 그는 "개원 25년 동안 약국의 대체조제를 거부한 적도 없고, '대체 불가' 도장을 찍은 적도 없다. 현장의 의사와 약사들은 충분히 협조적으로 대응해왔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제도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독자의견
작성자 비밀번호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