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신용 흔드는 외상 행정‥소청과醫, 예방접종비 미지급 비판

예산 부족 이유로 접종비 미지급‥법적 근거 없이 '외상 행정' 반복
소청과의사회 "정부가 먼저 신뢰를 져버리고 있다" 강력 비판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10-14 15:01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정부가 국가예방접종(NIP)을 위탁한 의료기관에 접종비 지급을 제때 이행하지 않아, 소아청소년과 현장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아예 예산 배정 전까지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하면서, 필수의료의 한 축인 예방접종 체계가 '외상 행정'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14일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의료기관을 상대로 '신용불량자'가 돼가고 있다"며 "예방접종비 지급을 수개월씩 미루는 행정편의적 관행은 법적 근거가 없는 불법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경기도 양주시는 지난 9월 시행된 국가예방접종 건부터 내년 예산이 배정될 때까지 접종비 지급이 어렵다고 의료기관에 통보했다. 이는 민간이라면 명백한 '채무불이행'에 해당하지만, 공공행정에서는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특히 9월부터 시작된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이 10월부터 본격화되면 전국 다수의 보건소가 동일한 이유로 지급을 지연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의료기관들은 1년 중 3~4개월, 전체 접종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국가를 대신해 '외상 접종'을 떠안고 있다. 보건소는 "예산이 소진돼 부득이하게 내년 예산이 배정될 때까지 지급이 어렵다"며 매년 같은 답변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이는 법적으로 어떤 근거도 없는 행정편의적 관행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과 질병관리청 고시 '예방접종업무의 위탁에 관한 규정' 제10조는 '예방접종비용은 인정 통보 후 15일 이내 지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어디에도 '예산 부족 시 지급 유예'라는 예외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관리청은 매년 국가예방접종사업 관리지침에 '예산의 부족 등 부득이한 사유로 해당 기한까지 지급이 어려운 경우 제외'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이는 상위 고시의 강행 규정과 충돌하며, 법적 위임 범위를 넘어선 조치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2021년 성남시 중원구에서는 접종비 지급 지연으로 소송이 제기된 직후에야 비용을 지급하는 사례가 벌어졌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이를 "행정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늑장 대응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민간계약에서는 지연이자 부과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지만, 정부 위탁의료기관만 이 원칙에서 제외되고 있다. '국가계약법' 제15조와 시행령 제59조는 '기한 내 대가를 지급하지 못할 경우, 지연일수에 따른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예방접종 위탁의료기관은 이 기본 원칙조차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 주요국은 이 같은 행정 지연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EU는 'Late Payment Directive'를 통해 모든 공공기관이 30일 내 대금 지급을 의무화하고, 초과 시 기준금리에 8%를 더한 법정이자와 회수비용을 지급하도록 규정한다. 미국 역시 'Medicaid Prompt Pay Rule'을 통해 의료기관 청구의 90% 이상을 30일 내 지급하고, 지연 시 이자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즉 선진국에서는 '지연 지급' 자체가 위법이다. 소청과의사회는 한국만이 필수의료 영역에서 이를 행정절차로 포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아청소년과는 2009년 이후 정부 위탁으로 국가예방접종(NIP)을 수행하며 '감염병 예방을 통한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공공보건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필수예방접종이 국가예방접종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손실률이 늘어나고 시행비는 낮게 책정돼 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접종비마저 3~4개월씩 밀리면서 일선 현장에서는 "국가예방접종 위탁을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의사회는 "정부는 필수의료 체계를 살리겠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일선에서는 그 약속이 정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의료기관은 정부의 하청이 아니라 국민 건강을 함께 지키는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이어 의사회는 "정부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의료기관에 접종비 지급 기한을 어길 권리가 없다"며 "지급 지연 시 법정이자 부과, 자동정산시스템 도입, 미지급 현황 공개제도 등 실질적인 보호 장치를 즉시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지방재정법 제43조에 따른 예비비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짚었다. 국가예방접종은 지자체 재량이 아닌 감염병예방법상 국가위임사무이며, 예비비는 바로 이러한 '예산 부족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법적 장치라는 것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국가예방접종비 지급 지연은 단순한 회계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라며 "정부가 먼저 신뢰를 지켜야 국민이 따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의사회는 "지금 필요한 것은 '예산 핑계'가 아니라 책임 있는 행정"이라며 "예산 소진을 이유로 한 외상 행정을 즉시 중단하고,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정시 지급'과 '지연이자 부과제도'를 즉각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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