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메아리"‥신경과 의사들이 보는 '난치성 뇌전증' 심각성

꾸준히 뇌전증 수술에 대한 국가적 책임 강조‥그러나 국가 지원은 미흡
뇌전증 치료 인력 부족 심각, 수술도 곧 사라질 위기‥"환자들 생존의 문제"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4-01-08 11:40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소리 없는 메아리에 지칠 법도 하지만, '난치성 뇌전증'의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해 신경과 교수들은 올해도 목소리를 내기로 결정했다.

그 중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홍승봉 교수(대한뇌전증센터학회 회장)는 주먹구구식의 난치성 뇌전증 치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신속히 마련하고, 신경외과 교수의 타 병원 수술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뇌전증 환자의 수는 약 36만 명으로 보고된다. 뇌전증 환자의 나이 분포는 소아청소년 환자가 14%, 성인 환자가 86%이다. 

이 중 70%는 약물 치료로 발작이 완전히 조절되지만, 나머지 30%(약 10만 명)는 여러 가지 약물을 투여해도 경련 발작이 재발하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으로 분류된다.

젊은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의 돌연사율은 일반인의 20~30배로 높고, 14년 장기 생존율은 50%로 매우 낮다.

그런데 '뇌전증 수술'을 받으면 뇌전증 돌연사는 1/3로 줄고, 14년 장기 생존율이 90%까지 높아진다.

하지만 국내에는 뇌전증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의 수가 매우 적다. 이에 약 90%에 이르는 대부분 병원 의사들은 뇌전증 치료에 수술을 포함하지 않거나, 극소수의 수술 병원에 가더라도 담당 의사에 따라 수술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홍승봉 교수는 "국내 뇌전증 수술 병원은 극히 소수인데, 같은 병원을 방문해도 담당 의사에 따라 그 환자의 운명이 달라진다. 참으로 한탄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뇌전증 수술을 시행하는 4대 병원들의 뇌전증 환자 수는 약 4만 명에 이르지만, 총 수술 건수는 1년에 60-70건에 불과했다.

미국의 경우 Level-4 뇌전증센터(최상위 뇌전증수술센터)를 만족하는 병원은 230개가 존재한다. 일본은 2015년 Level-4 뇌전증지원거점병원 제도의 도입으로 전국에 골고루 28개가 지정됐고, 앞으로 49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반면 한국에는 정부 사업을 하고 있는 단 한 개 병원 뿐이다.

홍 교수는 "뇌전증 수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의료이다. 1년에 2000명 이상의 뇌전증 환자를 치료하는 전국 약 20개 병원들은 뇌전증 수술 환경을 제공해야 할 사회적, 공공의료적 책임이 있다. 한국에서 1년에 수백 명의 젊은 뇌전증 환자들이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하고 있지만 한국의 뇌전증 수술은 개별 의사의 사명감과 희생정신에만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난치성 뇌전증이 암이나 심뇌혈관질환 대비 크게 차별받고 있다고 바라봤다.

정부의 체계적인 관리와 지원으로 암과 심뇌혈관질환은 치료율이 매년 상승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공의를 수련하는 대형 병원들 중 90%가 뇌전증 수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극소수의 뇌전증 수술 병원을 방문해도 수술 의뢰 건수는 터무니없이 낮다.

홍 교수는 "이제 국가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의 치료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뇌전증 수술을 암환자, 뇌졸중과 같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뇌전증 수술에 꼭 필요한 수술 로봇은 보건복지부의 2023년 1대 지원에 이어 2024년에도 2대 지원 예산이 통과됐다.

다만 홍 교수는 뇌전증 수술과 환자 관리에 꼭 필요한 인력 지원 예산은 전혀 승인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뇌전증 수술팀은 신경과, 소아신경과, 신경외과, 전문간호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등이 필수인력이지만, 현재 인력 부족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그는 "심뇌혈관센터와 같이 거점 뇌전증전문병원을 지정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뇌전증 수술을 활성화할 수 없고,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의 생명을 지킬 수가 없다"고 경고했다.

더불어 국내에서 뇌전증 수술을 하는 신경외과 전문의 수가 너무 적다는 문제도 있다. 극소수 수술 병원에도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인 1명 수준이기에 해당 교수가 해외 연수를 가거나 퇴직을 하면 수술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홍 교수는 뇌전증 수술 교수의 확충과, 다른 병원에 가서도 수술을 할 수 있는 수술 병원들 사이의 협력 시스템이 빨리 도입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 교수는 "정부의 적극적인 관리와 중재가 없으면 한국에서 뇌전증 수술은 사라지고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은 생존할 수가 없다. 난치성 뇌전증의 치료를 위해 장비 뿐만 아니라 인력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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