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이후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대선 정국. 정권 교체를 기다리기보다, 1년 넘게 지속된 의정 갈등을 조속히 해소하고 의료의 흐름을 다시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 같은 목소리는 의학계 전반에서 제기되고 있다.
10일 열린 '의정 갈등 1년, 의료의 현주소와 미래를 위한 교훈' 미디어포럼에서도 진료·교육·연구 전반에 위기가 닥쳤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전공의 사직으로 대학병원 진료에 차질이 빚어졌고, 의학 연구는 위축됐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은 교육 중단 사태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방침을 철회하지 않는 한,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측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전환점을 계기로, 의료 정상화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다만 차기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부가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한의철 부원장은 7500명에 달하는 의대생의 교육이 더는 멈춰서는 안 된다며, 2026년 정원 문제에 대한 신속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부원장은 "탄핵으로 인해 정부의 의료개혁 및 의대 정원 정책의 동력이 약화됐다고 본다"며 "정부는 의대생 복귀를 전제로 2026년 정원을 3058명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이 지켜져야 이번 사태를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 정상화에 있어 핵심 당사자인 대한의사협회 역시 "의료 정상화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의협은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현 정부가 상황을 수습하고,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를 위해 정부·국회·의료계가 참여하는 공식 논의 테이블 구성을 요청한 상태다.
의협 김성근 대변인은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가 의료현안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할 수 있는 협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며 "그동안 제기한 요구와 제안을 논의할 테이블만 만들어진다면, 빠른 시일 내 의료 정상화는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의학계는 공통적으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 잘못 끼워진 첫 단추였다고 평가한다.
의협은 충분한 근거 없이 추진된 정책이 전체 의료개혁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비판했고, 의학한림원 또한 정원 확대는 정치가 아닌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결국 정부가 2026년 정원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만,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게 의학계의 요구다.
이날 미디어포럼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정통령 공공보건정책관도 일정 부분 의학계 의견에 공감했다.
정 정책관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는가, 논의를 더 안정적으로 이끌 수는 없었는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계 내 합의된 목표가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정부와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반면 그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가 외부 변수에 대한 '완충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정 정책관은 "2000명 증원이라는 이벤트가 이 상황을 촉발했지만, 만약 이런 계기가 없었다면 우리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지 회의적일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민 건강보험이 도입된 이후 오래도록 의료 시스템은 정체돼 있었으며,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각계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보조 가설을 충분히 마련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돌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의정 갈등 기간 동안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환자 중심으로 진료한 결과, 응급실 대기 시간, 전문의 첫 진료 시간 등 응급실 평가 지표에서 일부 개선된 면도 있었다고 피력했다.
정 정책관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하루빨리 복귀하길 바라며, 이 사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도 과거를 되짚고 미래를 향한 합리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1년 넘는 의정 갈등 속에서 약간이라도 긍정적으로 바뀐 부분들이 있다면 인정하고 앞으로 더 강화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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