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또다시 수가협상 시즌이 돌아왔다. 매년 반복되는 이 협상은 '수가 인상률'을 둘러싼 보험자와 공급자 간의 첨예한 줄다리기지만, 올해는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특히 정권 공백기에 접어든 올해 협상은 정치적 동력이 약화된 가운데 철저히 재정 논리에 기반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2002년 시작된 수가협상은 2008년부터 유형별 환산지수 계약으로 전환되며 지금과 같은 치열한 구조로 자리잡았다. 공급자 단체는 매년 공단과의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높은 인상률을 확보하기 위해 밤샘 협상도 불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재정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한 밴드(추가 소요재정) 안에서의 분배만 이뤄지는 '형식적 협상'이라는 지적이 반복돼왔다.
이 중 의원급은 수년째 협상 결렬이 반복되면서, 올해만큼은 반드시 협상 타결이라는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한 입장이다. 이를 위해 대한개원의협의회를 중심으로 박근태 회장, 강창원 보험정책단장, 안영진 부단장, 조정호 의무이사 등으로 협상단을 꾸려 사전 준비에 돌입했다.
공급자 단체들이 협상 구조에 대해 느끼는 근본적인 불신은 여전하다. 매년 반복되는 '깜깜이 협상' 즉, 협상 직전까지 밴드 규모와 결정 근거가 공유되지 않는 관행에 대한 피로감이 크다. 공급자들은 계약 당사자가 재정위에 직접 참여해 합리적인 기준 마련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에 대한 개선 의지를 보이며, 2024년 협상 당시 공급자 요청에 따라 가입자·공급자 간 사전 소통의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 그러나 단순 입장 확인 수준에 그쳤고 실질적인 협상 진전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2025년 협상에서는 병원과 의원 유형 간 환산지수를 차등 적용하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됐다. 수가 인상분을 환산지수와 진찰료 등에 분산 적용하겠다는 구상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병원과 의원 유형 모두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이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공단 제시안이 강제 적용되는 구조가 반복됐다.
공단은 해당 방식이 저평가된 분야의 수가를 보완하고 수가 불균형 해소에 기여했다고 평가했지만, 의료계는 추가 재원이 상급병원 구조개편이나 재정 보전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고 일차의료기관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반발했다.
강창원 단장은 "공단은 형평성을 주장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일차의료기관이 점점 더 소외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올해 협상에서도 공단은 정해진 밴드 내에서 환산지수를 유형별로 차등 적용하고, 상대가치점수를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공급자 측은 실질적인 중재 기전이 부재한 상황에서 또다시 협상이 '기계적 절차'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를 강하게 표명하고 있다.
또한 수가협상의 근거 모델로 작동해온 SGR(지속가능성장률) 모형의 유효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지속되고 있다. 공단은 SGR 개선 모형, GDP 및 MEI 증가율 연계 모형 등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지만, 현재도 SGR 모형은 수가협상의 참고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의료계는 해당 모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진료비 총량 관리를 위한 거시적 기능도 제한적이라고 비판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낮은 수가 인상률은 의료기관이 행위량 증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고착화한다"며 "의료현실을 반영하는 새로운 수가 모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올해 협상의 주요 변수 중 하나는 전년도 진료비 증가율이다. 의원 유형은 의료대란 상황에서도 진료비가 상승한 반면, 병원은 환자 급감으로 인해 진료비 손실이 컸다. 공단은 이러한 실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형별 차등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협상 난이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26년 수가협상은 오는 5월 9일 공급자와 가입자 간 상견례를 시작으로 본격 개시된다. 1차 협상은 5월 15~16일, 2차 협상은 5월 22~23일, 최종 협상은 5월 30일로 예정돼 있다. 공교롭게도 대선 본투표일이 6월 3일로 예정돼 있어, 정치적 영향력이 거의 배제된 '기술적 협상'의 성격이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해에는 1조2708억원의 추가 재정이 투입되며 평균 1.96%의 인상률이 확정됐다. 올해도 약 1조3000억원 수준의 밴드가 형성될 것으로 관측되지만, 보험료 인상과 직결되는 수가 인상률을 두고 공단이 보수적 접근을 취할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협상의 결말은 결국 '타결'보다는 '관리'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의료계는 이번 2026년 수가협상을 통해 정부가 문제 해결 의지를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번 수가협상은 단순한 숫자 싸움이 아니다. 재정의 한계, 의료현장의 현실, 그리고 국민 수용성까지 고려한 균형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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