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엔 설계도, 지역의료엔 현실 필요"‥의학회, 해법 제시

"수련교육원은 일종의 설계도"…의학회, 질 중심 교육체계 제안
설립보다 중요한 건 유지…"공공의대, 예산 대비 효과 의문"
"지역 정착 유도 없인 반복"…의무복무 이탈·편법 우려 재조명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6-10 05:57

대한의학회 학술대회 기자간담회.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료계의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의대생·전공의 공백 사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필수의료 붕괴와 지역의료 공백은 점차 심화되고 있다.

현장에선 더 늦기 전에 정책적 브레이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한의학회는 학술대회를 통해 구조적 해법을 제시하고 나섰다. 오는 13일 열리는 '2025년 대한의학회 학술대회'는 '소통과 공감,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묻다'를 주제로 진행된다.

9일 사전 기자간담회에서 대한의학회 이진우 회장은 "학술대회를 통해 지속 가능한 우리나라 미래 의료의 청사진을 발견하고, 선진국 수준의 우리나라 의료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전공의 수련교육원, "더는 미룰 수 없다"
 
왼쪽부터 대한의학회 이진우 회장, 박용범 수련교육이사. 사진=박으뜸 기자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전공의 수련과 지역의료 인력 양성을 핵심 주제로 한 세션들이 마련됐다. 그중에서도 전공의 수련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련교육원' 설립 논의가 주목된다.

박용범 수련교육이사는 "작년 의정사태로 사회 전반에서 수련환경과 교육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전공의는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이며, 국민 건강권을 지켜나갈 다음 세대"고 말했다.

대한의학회는 그간 26개 전문과목 학회들과 함께 훌륭한 전문의를 양성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졸업 후 의학교육(GME) 체계를 정립하는 데도 기틀을 마련해왔다. 이제는 이를 한층 더 체계화할 상설 조직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학회가 제안한 '전공의 수련교육원'은 교육과정 연구 및 개발, 수련 평가, 지도전문의 역량 강화, 수련기관 평가 및 인증, 교육 연수 등 다섯 가지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이는 관리 기능에 중점을 둔 수련평가위원회와 달리, 수련의 질 향상을 목표로 설계된 독립형 조직이다.

교육과정 개발 부문에는 26개 전문과목과 인턴 과정을 포괄하는 현장 적용형 역량 중심 교과과정, e-러닝 콘텐츠, 공통 및 전문 역량 교육과정 기획, 웹 기반 통합 플랫폼 구축 등이 포함된다.

수련 평가 영역은 전공의의 역량을 정량화하고 피드백할 수 있는 체계 마련에 초점을 둔다. 이를 위해 다양한 평가 방식 개선, 수련 성과의 모니터링 체계 구축, 전공의의 이력을 추적 관리하는 e-포트폴리오 시스템 개발이 병행된다.

박 이사는 "수련 중 평가체계 및 지표 개발은 역량 중심 수련의 기초가 되며, 전공의 교육의 질 향상과 환자 안전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도전문의 역량 개발 항목에는 역할과 책임의 명확화, 평가·보상 체계 구축, 표준 가이드라인 제정, 온라인 콘텐츠 및 전문 교육프로그램 개발 등이 포함된다. 수련기관 평가·인증은 병원 현장의 실태 조사를 토대로, 전문과목별 평가와 지도전문의 사업의 모니터링 체계를 갖춘다.

교육 연수는 지도전문의 워크숍 기획·운영,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 개발, 전문 술기교육 강화를 위한 술기센터 운영 등으로 구성된다.

이 회장은 "예산과 인력이 들어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26개 학회와 의학회가 단독으로 수행할 수는 없다. 대한수련병원협의회와 함께 보건복지부에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수련교육원은 의학회 산하에서 출발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독립적인 교육기관으로 성장시킬 방침"이라며 "전공의 수련 전반에 대한 설계도를 그리고, 그 설계를 토대로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지역의료 대책, 공공의대보다 '실용성'에 무게

지역의사 확보를 위한 정부 정책으로는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전형 제도 도입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공공의대는 국가 재정으로 설립·운영되며, 졸업생은 복지부 장관 등이 지정하는 지역 의료기관에서 약 10년간 의무복무를 이행해야 한다.

하지만 의료계는 공공의대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김유일 정책이사는 "취약지 지역 의사 확보에 일부 효과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의무복무 기간을 채우지 않고 이탈하는 문제, 복무를 마친 후 대부분 대도시로 떠나는 문제, 지역 정주 여건과 재정 부담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2022년 의대신설법에 대한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공공의대 한 곳 설립하는 데에는 평균 약 2000억원, 최대 3600억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된다. 이는 당시 국립대 의대의 연간 등록금이 약 800만 원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동일한 규모의 예산으로 약 2만5000명의 지역의사전형 의대생에게 지원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공공의대는 설립비용 외에도 운영비와 교수 인력 확보 등 지속적인 재정 부담이 뒤따른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기존 의대를 활용하는 지역의사전형 제도가 상대적으로 실용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다만 지역의사전형 역시 의무복무 기간의 이행과 장기 정착 유도라는 측면에서 제도 설계가 중요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군위탁생 제도다. 의대를 졸업한 군의관의 경우, 의무복무 이후 장기복무를 선택하지 않고 전역하는 비율이 70% 이상에 달한다. 필수의료 분야인 외과나 응급의학과를 선택하는 비율도 낮아 제도의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일부는 복무를 이행하지 않고 지원금을 반납한 뒤 전역하는 편법 사례도 존재한다.

1977년부터 운영된 공중보건장학의 제도도 지원자가 거의 없어 실패한 전례로 남아 있다.

아울러 의무복무제도의 위헌 논란, 공공의대 교육의 질 확보, 수련과목 구성, 의사 배치계획, 지역 정주 여건 개선, 지역환자 이송체계 등도 모두 함께 고려돼야 할 요소로 꼽힌다.

김 이사는 "공공의대든 지역의사전형이든 언급된 문제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보완이 필요하다"며 "성공적인 지역의료 인력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공론과 다각적인 검토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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