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최인환 기자] "신약개발에 활용 가능한 고품질 의료데이터를 이미 보유한 나라가 한국이다. 문제는 이 자산을 산업적으로 활용하기엔 플랫폼도, 규제도, 구조도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1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의료데이터 활용도 제고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산업계와 정부, 공공기관이 한자리에 모여 의료데이터 통합 플랫폼의 방향성과 활용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주영 개혁신당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와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이 공동주관했으며,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후원한 이번 토론회는 별도의 발표 없이 모든 참석자가 패널토론 형식으로 의견을 나눴다.
(왼쪽부터)엄보영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단 사무국장, 전종수 마이크로소프트 공공사업부문 헬스케어 이사, 이희봉 LG화학 생명과학본부 연구개발본부장. 사진=최인환 기자
이날 가장 큰 목소리는 데이터 통합과 규제 개선에 대한 산업계의 요구였다. 이희봉 LG화학 생명과학본부 연구개발본부장(전무)은 "지난 20년간 축적된 건강검진과 보험 청구 데이터는 세계적으로 드문 수준의 고품질 자산"이라며 "이 자산을 국가 차원에서 표준화·통합해 민간이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국형 신약개발 생태계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병원마다 데이터 구조가 달라 기업이 연계해 사용하기 어렵고, 해외 기술이전 시 개인정보보호법상 익명화 한계 때문에 데이터 제공 자체가 막히는 사례도 있다"며 "산업 발전과 개인정보 보호 사이 균형을 고려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종수 마이크로소프트 공공사업부문 헬스케어팀 이사 역시 "데이터는 산업이 돌리는 것이 아니라 공공이 만들어놓고 규제 안에 방치하고 있다"며 "한국처럼 디지털헬스, AI, 제약, 병원이 촘촘하게 연결된 나라는 드물기 때문에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실행력 있는 전략과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엄보영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단 사무국장은 "현재까지 58개 병원과 5대 중증질환 중심으로 데이터 수집이 진행되고 있으며, 올해는 산업계와 연계한 실증사업도 병행하고 있다"며 "다만 환자 동의 기반의 데이터 수집이기에 구축 속도에 한계가 있고, 구축된 데이터를 어떻게 산업계와 연결할지에 대한 지속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처럼 민간에서 고품질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기반 마련과 규제 정비를 거듭 촉구하는 가운데, 정부와 국회 측은 이러한 요구에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단계적 추진 방안과 현실적인 제약을 병행 설명했다.
이하늘 보건복지부 보건의료데이터진흥과 사무관은 "2028년까지 의료데이터 통합 플랫폼 1단계를 구축하고 이후 질환 범위를 확대하며 중장기 전략도 마련할 계획"이라며 "산업계가 우려하는 익명화 데이터 활용 등 제도 개선은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의료데이터 관리·활용은 복지부, 질병청, 과기정통부, 통계청 등 부처별로 역할이 나뉘어 있어 통합된 정책 추진 체계의 부재도 언급됐다.
김은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행법상 의료데이터는 공공재로만 간주되고 있으나 산업적으로 활용하려면 법체계 전환 논의가 필요하다"며 "데이터 기반 생태계는 플랫폼·기술·제도 세 축이 균형 있게 갖춰져야 하고, 이를 위해 민간이 제안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료데이터 활용도 제고를 위한 정책토론회. (왼쪽부터)제갈한철 카카오헬스케어 부사장, 전진옥 비트컴퓨터 대표, 정태건 평화IS 상무. 사진=최인환 기자
이 외에도 주요 기업 관계자들도 다양한 현장 목소리를 전달했다. 전진옥 비트컴퓨터 대표는 "플랫폼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병원과 산업계 간 연결 구조를 공공이 적극 매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갈한철 카카오헬스케어 부사장은 "실제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어야 산업에서 쓸 수 있다"며 품질 관리 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정태건 평화IS 상무는 "환자 중심의 데이터 수집·활용 구조가 마련돼야 플랫폼이 실제 의료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플랫폼 고도화', '규제 개선', '환자 중심 접근'을 공통 키워드로 꼽으며,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을 위해 '국가 주도의 협의체 구축'과 '민간 참여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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