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소송 아닌 안전망으로…의료계·정부 '공감과 우려'

소송 중심 대응은 필수의료 위협…공동행동, 독립적 조사기구·선보상 체계 제안
복지부 "공감…형벌 중심 체계 재검토 필요"
의료계 "소송부담에 수술 회피…책임 떠안는 구조 바꿔야"
환자단체 "의료행위의 '선한의지'도 고려해야"
법조계 "기금제 실효성 의문…공적 보험 필요"

김원정 기자 (wjkim@medipana.com)2025-07-31 05:56

(왼쪽부터) 강희경 공동행동 공동대표겸 서울의대 소아과학교실 교수, 강준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총괄과장,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겸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 한국중증질환연합회 김성주 대표. 사진=김원정 기자

[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의료사고 발생시 소송 중심 대응은 의료현장을 위축시키고 필수의료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환자안전조사기구 설립과 건보 재정을 활용한 선(先)보상 체계 도입 등의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됐다.

반면, 보상을 위한 기금제도의 실효성과 의료사고 조사기구의 공정성 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며, 제도의 구체적인 설계와 법제화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30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의료사고안전망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 보건의료특별위원회, 더나은 의료시스템을 함께 만들어가는 의료소비자-공급자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가 공동 주최했다.

강희경 공동행동 공동대표겸 서울의대 소아과학교실 교수는 '모두를 위한 의료사고 안전망은 환자 안전 강화로부터'를 발제로 "소송 중심의 대응은 의료진의 실수 은폐를 조장해 비슷한 문제의 재발 방지 기회, 환자 안전을 강화할 기회를 잃게 만든다. 또 잦은 민·형사 소송과 높은 민사 배상액은 의료진으로 하여금 민·형사 소송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진료를 기피하게 만들어 소위 필수·지역의료를 붕괴시킨다"고 지적했다.

이에 크게 5가지를 제안했다. 의료사고 발생시 ▲독립적인 공적 조사 기구(가칭 '환자안전조사기구') 설치 ▲환자안전조사기구의 공정한 조사 결과 의료인의 과실이 밝혀지는 경우, 민형사 소송 중심의 응징체계 대신 '의사면허윤리기구' 설치 및 운영 ▲의료사고 관련 형사 기소 및 구속, 민·형사 소송 판결의 기준 정립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형사처벌이 필요한 중과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기준 설정 ▲건강보험료를 바탕으로 한 의료사고 안전망 기금 조성 등을 통해 책임소재와 무관하게 의료사고 피해 환자에 대한 신속하고 충분한 보상체계 구축을 촉구했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 강희경 교수는 "국민 모두는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는 제도인 보험의 취지를 살려, 의료사고를 겪는 환자와 가족을 건보재정 등으로 우선 도울 수 있다. 앞서 제안한 '환자안전조사기구'의 조사로 의료기관의 귀책사유가 발견되면, 의료사고 안전망 기금은 추후 의료기관에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동행동의 이 같은 제안에 대해 강준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총괄과장도 공감을 나타내면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부족했기 때문에 민·형사상 소송으로 끌고 가는 경우가 계속돼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동행동에서 제안해 준 내용과 관련해 저희가 의료사고를 접근할 때 의료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되는 부분도 있고 의료사고를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로 보는 일반적인 형사법 체계의 문제로 볼 사안인가도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어 "결국 의료사고를 최대한 줄여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고 의료진에 있어서도 적정한 사법적 보호가 주어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그동안에 가장 부족했던 부분이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건수는 많지만 민형사상 소송으로 이어지는 건수 등에 대한 통계를 가지고 실제 환자안전사고가 얼마나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실체에 접근하기 굉장히 어려웠다. 이러한 데이터를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들부터 먼저 시작돼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료사고에 대한 감정체계를 국가 차원에서 대폭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또 의료사고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를 형벌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며 "의료개혁특위에서 논의됐던 '의료사고 심의위원회' 같은 곳에서 수사나 기소로 가기 전에 사법적 처벌을 해야 될 것과 민사로 풀어야 될 것들을 필터링해주는 체계를 만드는 것을 앞으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상과 관련해서는 전체 상대 가치 점수의 약 1.2% 정도가 위험도 수가로 반영돼 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지, 아니면 공적 재원이나 공적 관리체계를 통해 이러한 배상이 신속하고 충분하게 이뤄질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검토가 필요하다고 봤다. 아울러, 이러한 부분은 향후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 등을 통해 입법화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의사면허윤리기구' 설치를 통한 면허 관리에 대한 부분은 조금 더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봤다.

의료계는 의료사고에 대한 과도한 법적 책임이 의료진의 적극적인 진료를 위축시키고 있으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와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겸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는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를 수술할지 말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내가 수술할 경우 소송을 걸릴지 아니면 민사적으로 책임을 크게 져야 될지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고 달려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분위기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며 "소송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달려들어서 의료행위를 하고 수술을 하고 시술을 해서 환자를 살리겠다는 노력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와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전공의와 전임의, 의사들이 의료시스템에서 겪는 막대한 업무량과 발생 가능성이 있는 합병증 등 의료사고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바탕으로 국가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하은진 서울대병원 중환자의학/신경외과 교수는 "지난 1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환자들이나 국민들이 느꼈을 여러 가지 혼란 등에 먼저 사과를 드리고 시작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사과를 드린다"고 말문을 열였다.

그러면서 "저는 전공의 시절 주 120~150시간, 쉼 없는 당직과 과로,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당시 수련 받으며, 잠결에 실수할까 두려웠고 지금 사고가 나지 않는 건 순전히 운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도 필수 중증의료 현장에서는 전공의, 전임의, 젊은 교수들이 80시간이 넘는 근무와 연속 당직을 감당하고 있다"며 이런 환경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모든 책임을 '개인의 실수'로만 돌릴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과실이 아닌, 회피가 힘든 결과까지 반복적으로 형사 책임을 묻는다면, 앞으로 누가 이런 중증 환자 치료를 맡으려 할까, 결국 의료인은 위험 회피가 최선이 되고, 고위험 환자일수록 적절한 치료 기회를 잃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하 교수는 "합병증률이 0%인 의료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중증 핵심의료는 국가가 의료진에게 위탁한 공공의 책무다. 따라서 그 보상의 1차적 책임은 국가에 있어야 하며, 의료진의 명백한 과실이나 병원의 구조적 문제가 확인된 경우에만 국가가 구상권을 행사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양문술 대한병원협회 미래헬스케어위원장은 "공동행동에서 제안한 내용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의료사고 안전망 기금 규모를 설정할 때 실제 의료사고 발생 가능성과 평균 보상 수준, 보상 대상 범위와 한도, 제도의 지속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 재정적 안정성과 실효성을 모두 갖출 수 있도록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의료사고에 대한 귀책사유 확인에 따른 구상권 청구 시 귀책사유가 의료기관에 있는 경우에는 의료기관 대상으로 비용 환수를 해야 할 것이나 귀책사유가 의료인에게 있는 경우에는 해당 의료인의 소속 의료기관이 아닌 의료인 개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의료진과 병원, 정부 입장에 이어 환자단체는 의료사고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 김성주 대표는 "의료인으로 바라보는 의료사고에 대한 문제와 환자가 바라보는 의료사고 문제는 많이 다를 것 같다"며 환자사례를 소개했다.

김 대표는 "식도암 말기에 가까워진 환자가 여러 병원을 다녀도 더 이상 치료할 수 없고 호스피스나 완화의료를 권했다고 한다. 좌절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대학병원 교수가 와보라고 해서 그 교수의 진료에 따라 체력 및 식단 관리 후 수술을 했고 7개월이 지난 현재도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선택은 결국 의사가 한 것이다. 이러한 결정을 한 의사는 의료현장에서 오랫동안 환자들을 만나서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며 "반대로 이 의사가 수술을 했다가 결과가 나빠졌다고 해도 저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할 게 아니라 그 행위에 대한 선한 의식이나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짚었다.

김 대표는 "최근에 전공의 사태나 의대사태 등을 보면 과연 전공의들이나 젊은 의사들이 이러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시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법적 관점에서는 공동행동에서 제안한 '의료사고안전망 기금'이 실효성 있게 집행이 가능할지 의구심을 제기했다.

권두섭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토론회 발제자인 강희경 교수의 제안 중 하나인 ‘의료사고 안전망 기금’에 대해 "통상 중상해, 사망 등으로 청구금액이 큰 사건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해결되지 않고 민사소송으로 가게 된다"며 이 기금에서 민사소송으로 갔을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배상이 이뤄질 수 있을지 물음표를 던졌다.

또 "민사소송 위자료가 있고 최근에는 민사소송을 먼저 한 후 형사고소를 하는 이유도 형사합의금(형사 위자료) 문제가 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며 "기금절차를 선택해 선 배상을 받으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부여되는데 환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기금을 받는 절차에서 충분한 배상이 어렵다고 생각되면, 조정제도와 달리 중간에 이탈할 수도 없으므로 민사소송을 선택하게 된다"고 짚었다.

아울러 "기금에서 선 보(배)상을 하더라도, 의료과실이 인정되는 사건은 의료기관과 의료인을 대상으로 구상권을 행사하게 되는데, 의료기관과 의료인 입장에서는 여전히 민사책임 개인 부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는 공적 보험제도의 도입은 별도로 필요할 것"으로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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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을 다했는데
    환자가 죽으면
    어떻게 의사에게
    벌금을 물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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