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과잉인가, 환자 보호인가…'독감 치료제' 판결이 남긴 파장

서울남부지법 페라미플루 사건, 설명 부족을 사고 원인으로 인정
부산지법 타미플루 사건, 인과관계 불명확…위자료 한정
의료계 "불확실성을 법적 책임으로 전환하면 필수의료 붕괴 가속"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9-23 11:55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독감 치료제 투약 후 발생한 청소년 추락 사고와 관련해, 사실관계가 유사한 두 사건에서 법원이 서로 다른 결론을 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주사제 '페라미플루'를 맞은 당일 7층에서 추락해 영구장애를 입은 16세 사건에서 의료진의 '지도·설명의무 위반'과 추락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법원은 의약품 설명서의 "페라미플루 투약 후 적어도 2일간은 환자를 혼자 두지 않도록 하고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경고를 핵심 근거로 삼았고, 전체 손해액의 40%에 해당하는 약 5억 8200만원 배상을 명했다.

반면 부산지방법원은 '타미플루' 복용 후 추락사한 13세 사건에서 의사·약사의 설명 부족은 인정하되, 사망과의 '상당인과관계'는 부정해 '자기결정권 침해'에 대한 위자료 2700만원만 인정했다.

대한의사협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이러한 판결의 괴리는 의료 현장에 심각한 불안정성을 야기한다"고 말했다.

서울남부지법 판단을 둘러싼 의료계의 핵심 비판은 과학적 합의와 법적 확실성 사이의 괴리다. 뉴라미니다아제 억제제와 정신신경계 이상반응의 연관성은 일본·미국의 대규모 연구에서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결론이 이어졌고, 일본 후생성은 이를 근거로 2018년 10대 투약 보류를 해제했다.

국내 연구에선 자살·시도 발생률이 타미플루 처방군 10만 명당 4명, 비처방군 10만 명당 7명으로 더 높게 나타난 바 있다. 그럼에도 서울남부지법은 경고 미전달을 사고의 법적 원인으로 연결했다.

김 법제이사는 "결론적으로 서울남부지법의 판결은 설명의무의 본래 취지를 왜곡시켰다"며 "설명의무가 환자 권리 신장의 도구가 아닌, 의사를 옥죄는 처벌의 도구로 사용될 때, 그 피해는 결국 의료 시스템 전체와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이번 판결이 결국 방어 진료를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의사들이 위험을 피하려다 보니 불필요한 검사를 늘리고 환자를 서둘러 상급병원으로 보내면서, 의료비 부담은 커지고 전달체계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흉부외과 등 고위험 필수의료는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한 건의 판결이 진입 기피를 낳고, 악화된 업무 환경이 또 다른 사건과 소송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사법 리스크가 증폭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재연 법제이사는 "어떠한 수가 인상도 이러한 파산의 위험을 상쇄할 수는 없다. 의사들은 사법부가 자신들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의료 행위의 내재적 불확실성을 이해해줄 것이라는 신뢰를 회복하기 전까지는 고위험 진료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해법으로 법리 정비와 시스템 보완을 제시하고 있다.

김재연 법제이사는 "향후 유사 사건에서 상급심은 '설명의무 위반'과 '의료 과실'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법원은 의학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서 독자적으로 법적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데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법·정책적 보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법제이사는 "국회는 의사의 설명의무 범위와 그 위반의 효과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고, 필요한 경우 의료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해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의사의 중과실이 없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면제하고, '불가항력 의료사고 국가 보상제도'를 소아청소년과 중증질환 등 다른 필수의료 분야로 확대해야 한다. 소송까지 가기 전 단계에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기능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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