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AI, '의사 대체' 아닌 역량 확장‥법·제도 공백 메워야

생산성·효율성 높여도 책임·데이터 권리 과제 산적
가이드라인·특별법·교육 개편까지 대응 전략 필요
의료정책연구원 "정부 지원 병행돼야 안전하게 안착"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10-02 10:57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료 인공지능이 단순한 실험 단계를 넘어 임상 현장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환자 진료 기록을 실시간으로 문서화하고, 영상 판독을 도와주며, 행정 절차를 뒷받침하는 인공지능 기기는 의사의 부담을 덜고 진료의 속도와 정밀도를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혁신의 그늘도 뚜렷하다. 법적 책임의 공백, 알고리즘 편향, 데이터 권리와 보상 부재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구조적 한계로 남아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인공지능 시대 의료계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의료 인공지능을 의사를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라 역량을 확장하는 도구로 규정했다. 연구진은 활용 현황과 기대 효과, 제도적 약점, 대응 전략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며, 의료계가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구진은 현재 의료 인공지능이 진료 절차 지원, 임상의사 결정 보조, 영상 판독, 신약 개발 등 다양한 영역에 도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활용은 문서화 시간과 행정적 부담을 줄여 동일 인력으로 더 많은 환자를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보고서는 이 같은 현실을 근거로 "향후 의사 인력 정책은 물리적 확충 중심에서 벗어나, 인공지능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편향성과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정확성 부족은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특히 현행 법체계에서는 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가 모호하다는 점이 제도적 허점으로 꼽혔다.

연구진은 "현재의 법체계에서는 의료 인공지능 사용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법적 책임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며 "미국의 인공지능 행정명령, EU의 인공지능법처럼 개발자·배포자·의료인·의료기관이 공동으로 책임을 지도록 규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또 의료 인공지능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데이터 확보, 산업계 기술 발전, 현장 도입과 활용, 사후 모니터링 및 성능 업데이트가 맞물리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의료기관이 데이터를 자율적으로 거래할 권리가 보장돼야 하며, 공공 플랫폼에 데이터를 제공할 경우 합당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자의무기록(EMR) 상호운용성을 높이고 실제 사용 실적과 연계율을 반영하는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연구진은 "데이터 권리 보장과 새로운 수가 신설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의료기관이 제공하는 데이터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데이터의 양과 질, 활용 가치를 반영해 수가를 마련하고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하고 책임 있는 활용을 위해 의료기관 내부의 자체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FUTURE-AI가 제시한 6대 원칙(공정성·보편성·추적성·사용성·견고성·설명가능성)에 '책임과 법적 대응'을 추가해,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운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문직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법적 분쟁에 대비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될 수 있다.

의료 인공지능 특별법 제정과 같은 법적 기반 정비는 핵심 과제로 언급됐다. 인공지능의 오진이나 편향, 설명 불가능성으로 분쟁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단순한 하위 규정이 아니라 개별 입법을 통해 책임 구조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연구진은 "의료 인공지능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기존 법률과의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법이 필요하며, 이 법에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데이터 권리, 개발자·배포자·사용자의 책임 분담, 인공지능의 법적 지위가 명확히 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의 변화도 요구됐다. 미래의사들이 인공지능을 제대로 다루려면 임상 책임, 데이터 관리, 윤리적 감독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동시에 창의적 사고와 공감 능력 같은 인간 고유의 역량을 키워 '인간 중심의 진료자'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의견이다. 알고리즘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환자 중심의 진료를 이어갈 수 있는 비판적 성찰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정부가 의료 인공지능의 안전 확보를 전제로 규제를 완화하고 재정 지원을 함께 추진해 의료계가 인공지능 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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