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R 접속기록 보관' 추진에 의료계 반발‥"현장 모르는 발상"

이미 시행규칙으로 열람·수정 기록 관리 중, 실효성 의문 제기
개원의 부담만 가중…"기술·비용 모두 현장에 전가될 것"
의료계 "감시받는 진료 될 우려…자율성과 전문성 침해"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10-11 05:56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임상 현장의 실제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법안이 또 등장했다는 지적이 의료계에서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전자의무기록(EMR) 무단열람을 막기 위해 '접속기록을 별도로 보관'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전자의무기록을 열람할 경우, 그 접속기록을 별도로 저장·보관하도록 의무화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입법 취지는 명확하다. 환자 개인정보 보호와 무단열람 방지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미 현행 제도만으로도 충분히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며 "현장을 모르는 탁상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의료계는 전자의무기록 열람이 진료 과정에서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환자 상태를 파악하거나 치료 경과를 점검하고, 수술과 처치 방법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반복적 열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모두 접속기록으로 관리한다면 불필요한 행정 절차가 늘고, 현장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의료법 제23조 제3항은 이미 '정당한 사유 없이 개인정보를 탐지·누출·변조·훼손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16조 제2항에는 '전자의무기록에 추가기재나 수정이 있을 경우, 접속기록을 별도로 보관'하도록 명시돼 있다. 의료계는 이 같은 규정만으로도 개인정보 보호의 법적 장치는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개정안이 실효성과 기술적 현실성 모두에서 한계를 가진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현행법은 이미 전자의무기록의 무단 탐지를 제한하고, 추가기재나 수정 시 접속기록을 보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단순 열람까지 의무 보관 대상으로 확대하는 것은 불필요한 규제"라고 밝혔다.

이어 "무분별한 탐지 등이 실제 문제라면 전자의무기록 시스템 내부의 로그(log)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비용과 기술 부담이 의료기관에 전가된다는 점이다. 접속기록 보관을 의무화하려면 시스템 개발과 서버 확충이 뒤따라야 하지만, 개원의가 이를 직접 수행하기는 어렵다. 결국 전자차트(EMR)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며, 의료기관은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한 보안관리 비용과 시스템 이용료를 떠안게 된다.

의협은 "현재 대부분의 병원 EMR 시스템은 열람기록 로그를 남길 수 있지만, 이를 법적 의무 수준으로 운영하면 불필요한 로그가 대량으로 축적돼 관리 효율이 떨어진다"며 "서버 용량 관리, 표준화 유지비, 데이터 저장 비용까지 급증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의료계는 더 큰 문제로 '감시받는 진료 문화'를 우려했다. 실제 진료 과정에서는 환자 경과 파악, 검사 결과 비교, 처치 순서 결정 등을 위해 환자의 전자의무기록을 반복 확인한다. 그런데 이 모든 열람 행위가 기록되고 보관된다면 의료인들은 자신이 '감시 대상'이 됐다는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러한 불신 구조는 의료행위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의료계는 "진료의 자유와 전문적 판단은 자율성을 전제로 작동한다"며 "이 법안은 그 기본 전제를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협은 "결과적으로 동 개정안은 의료행위의 위축을 초래하고, 의료 현장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의료계의 의견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보건복지부에 공식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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