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의료정책연구원 김진숙 전문연구원, 서울성모병원 김헌성 교수, 의협 김충기 정책이사, 내과의사회 조승철 총무이사, 복지부 성창현 의료정책과장.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정부와 국회를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 확대를 위한 제도화 논의가 이어지자, 의료계는 "진료의 주체가 환자와 의사가 아닌 플랫폼과 제도 그 자체가 됐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의료의 공공성과 안전을 최우선에 둬야 할 제도 설계가, 기술 기반의 편의성에만 집중되면서 본질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7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개최한 '비대면 진료 제도화의 문제점' 정책포럼에서는 정부의 법제화 추진에 앞서 의료의 본질, 진료 책임 구조, 임상적 기준 등 보다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의료계는 초진 허용 여부를 중심으로 한 이분법적 논쟁을 넘어, 실효성과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구조적 기준을 우선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의 본질이 사라진 비대면 진료, 퇴색된 목적
의료정책연구원 김진숙 전문연구원은 비대면 진료가 의료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면 없이 이뤄지는 초진의 경우 진단 정확도가 낮고 오진 가능성이 높다"며 의학적 신뢰를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짚었다.
아울러 시진, 청진, 촉진이 생략된 상태에서는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기 힘들고, 환자가 제공한 정보의 신뢰도 역시 확보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더해 정보통신기술 기반 진료에서는 기기 오작동, 환자 식별 오류, 개인정보 유출 위험도 상존한다.
김 연구원은 "기기나 네트워크 문제로 오진이 발생하더라도 법적 책임은 의사에게 전가된다"며, 현행 구조는 의료인의 방어진료를 초래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시범사업의 평가 방식도 문제로 제기됐다. 김 연구원은 "2020년부터 한시적 비대면 진료와 시범사업이 시행됐지만 5년간의 평가 결과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라며 임상적 유효성 검토 없이 만족도 중심의 평가만으로는 제도 추진의 근거로 삼기 어렵다고 바라봤다.
서울성모병원 김헌성 내분비내과 교수는 비대면 진료의 방향이 처음의 공공적 목적에서 점차 기술 중심의 민간 플랫폼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코로나19 시기에는 감염병 예방을 위해 병원 내 감염을 피하는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의료기관보다 플랫폼 편의성이 더 강조되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수행 실적 평가'를 분석한 결과, 서울 소재 의료기관에서 비대면 진료를 받은 환자의 약 37%가 타지역 거주자로 나타났다. 거주지 인근 의료기관 이용을 유도한 지침과는 달리, 환자들이 플랫폼을 통해 진료를 '선택'하는 구조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탈모 및 미용 목적의 이용 비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플랫폼의 기술적 발전은 긍정적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의료 기준과 환자 관리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의료계가 주도하는 질환별 임상 가이드라인과 병원 간 환자관리 프로토콜 공유체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제도화 논의 이전에 점검해야 할 기준들
대한의사협회 김충기 정책이사는 현재 비대면 진료 제도화 논의가 '의료 접근성 개선'이라는 피상적 논리에 갇혀 있다고 비판했다.
김 이사는 "우리나라는 이미 일차 진료 접근성이 높은 국가"라며 "비대면 진료가 도입돼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편의성이 아니라 의료 질 향상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초진·재진 구분만으로 제도 설계를 나눌 것이 아니라 어떤 질환, 어떤 환자에게 비대면 진료가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는지를 중심으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내과의사회 조승철 총무이사는 반복적 비대면 진료 구조에 내재된 위험을 경고했다.
조 이사는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를 대체하는 게 아닌 단지 보조 수단이다. 초진 이후에도 대면 진료 없이 계속 비대면 진료가 이어질 경우 질병 관리의 효과를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내과 진료에서는 복통·발열 등 증상이 다양한 경우 대면 진찰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초진 비대면 진료에 명확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재차 확인했다.
조 이사는 "진료 연속성과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플랫폼이 책임지지 않는 구조 아래에서는 의료계의 자율적 통제 장치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비대면 진료가 보완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는 있지만 시범사업 자료조차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화를 밀어붙이는 것은 책임 있는 접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성창현 의료정책과장은 이번 포럼이 초·재진 논쟁을 넘어, 비대면 진료의 본질적 가치와 실질적 기준을 논의하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비대면 진료가 의료 질을 높이는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임상 판단을 존중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성 과장은 "우리나라 의료법상 비대면 진료는 금지돼 있는 상태로 법적인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코로나19와 시범사업을 거친 만큼 일정 수준에서 제도화를 논의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성 과장은 질환별 임상 가이드라인 제안에 대해서도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고혈압, 당뇨병, 피부질환, 비뇨기질환과 같이 학회나 의사협회가 기준을 제시하면 좋겠다"며 "비대면 진료와 관련해 의료 전문가들과 정부가 도모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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