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외상센터, 숫자보다 '살릴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외상센터 숫자는 늘었지만 이송·조율·책임은 공백‥"인구 기반 재설계 필요"
정치 논리로 설계된 외상센터…"환자 살리려면 숫자 아닌 방향이 필요"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5-19 05:56

아주대병원 정경원 권역외상센터장.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권역외상센터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단순히 센터 수를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외상환자 수요와 이송 가능성을 반영한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현장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2012년부터 권역외상센터 설치를 추진했지만, 약 10년이 지난 지금도 외상환자 흐름을 조정할 리더십 구조는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외상센터의 위치와 규모를 인구 밀도와 외상 발생률에 맞춰 재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7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2025 젊은의사포럼'에서 아주대병원 정경원 권역외상센터장은 국내 권역외상체계의 허점을 고스란히 짚어냈다.

정 센터장은 "외상외과는 단순히 수술만 하는 진료과가 아니다. 전신 상태를 살피고 여러 진료과와 협력해 환자의 생존률을 높이는 '조정자'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예방가능 외상사망률(Preventable Trauma Death Rate)은 국내에서 2000년대 초반 30%를 넘었으나, 2021년 기준 13.9%까지 감소했다. 하지만 선진국의 5% 미만 수준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미국과 같은 외상체계 선진국은 중증도에 따라 환자를 구분해 처리하고 '레벨 1 외상센터'가 중심에서 의료자원과 이송 체계를 조율하는 구조다. 반면 한국은 병원급 구분만 있을 뿐 외상환자 이송과 진료를 조율하는 체계가 부재하다.

정부는 전국 17개 권역에 외상센터를 설치해 80%의 외상환자를 커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실질적 배치 기준은 외상 발생률이나 접근성이 아닌 '행정구역'이었다.

정 센터장은 "외상센터는 원래 외상 환자 발생 수를 기준으로 배치돼야 하지만, 정부는 행정구역 단위를 기준으로 삼았다"며 "그 결과 인구 1000만 명의 경기남부와 67만 명의 제주도가 같은 규모의 외상센터를 갖는 불균형이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2013년 경기남부 센터로 선정돼 2016년 정식 개소했다. 현재 정형외과·신경외과·마취과 전문의를 포함해, 300명이 넘는 전담 의료진이 상주하고 있다.

정 센터장은 "전 세계적으로도 이 정도 규모의 외상센터는 찾기 어렵다"며, 미국 UC 샌디에이고 외상센터(UCSD)를 벤치마킹한 사례를 소개했다.

샌디에이고 카운티는 경기도와 유사한 규모로 인구에 따라 5개 권역으로 나뉘고 각 권역에 외상센터가 존재한다. 이 중 UCSD는 리더센터로서 전체 외상환자 흐름을 실시간 조정하며, 간호사가 24시간 전화로 외상센터 가용 병상·수술 가능 여부를 파악하고 공유한다.

정 센터장은 "UCSD는 환자당 8~9명의 의료진이 대기하고 '핫라인' 시스템과 월간 질 향상 회의를 통해 합병증, 환자 증가 추이 등을 대시보드 기반으로 분석해 즉시 개선한다"고 말했다.

아주대병원은 이와 같은 체계를 도입해 닥터헬기를 병원 앞마당에 직접 배치했고, 외상 소생실에는 X-ray 장비와 혈액을 상시 준비했다. 이로 인해 이송 시간과 처치 시간이 줄었고 생존율도 크게 높아졌다.

다만 외상 소생실에 혈액을 상시 비치하기까지는 관련 부서 간 협의와 조율이 만만치 않았고, 엑스레이 장비 역시 병원 수익 구조와의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일반 병원 엑스레이실은 24시간 가동되지만 외상센터 장비는 하루 10시간 정도만 사용되고 나머지는 비워져 있어 고가 장비의 '비효율적 운용'으로 인식되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헬기 소음에 대한 민원까지 겹치며, 중증외상환자를 위한 필수 인프라 구축이 병원 내에서도 마찰을 빚는 현실이다.

정 센터장은 "외상환자는 처치 결정이 5~10분만 늦어져도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일반 병원처럼 효율성을 기준으로 운영할 수 없는 외상센터 특성을 행정이 이해하고 구조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기준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의 진료 실적은 37.2%로, 2015년 대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은 2.6%로 미국 UCSD의 2000~2014년 수치(2.4%)와 유사한 수준이다. 아주대병원은 올해 목표도 5% 미만 유지를 설정했다.

또한 아주대병원은 경기도 외상체계 확립에도 참여하고 있다. 30분 내 육로 이송이 가능한 지역의 병원을 '지역외상협력병원'으로 지정하고 긴급 처치를 맡기며, 권역외상센터는 헬기 등을 통해 신속한 본원 이송과 치료를 담당한다. 이 구조는 실제로 중증환자 수용률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성과와는 별개로 외상센터는 지금도 위기 속에 놓여 있다.

정 센터장은 "의정 갈등 이후 응급실 뺑뺑이 사례가 늘었고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과들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며 "올해 1~4월 타 권역에서 아주대병원에 수용 문의가 온 건수는 143건이었지만, 실제 수용은 47건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인구 기반으로 6개 권역외상센터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확대하자는 안이 있었지만, 정부는 정치 논리로 17개를 일괄 지정한 뒤 평가나 조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정 갈등 이후 외상센터의 인력난과 이송 지연 문제는 더욱 심화됐고, 현장 의료진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중론이다.

정 센터장은 "이 구조적 문제는 젊은 의사나 일선 의료진의 잘못이 아니라 행정과 정치적 무관심의 결과"라며 "지금이라도 의료계가 하나된 목소리로 대응하지 않으면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환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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