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 사라질라"‥가격만 보는 급여정책에 의사들 '한숨'

"가격 낮아도 또 깎으라고?"…필수 치료제마저 떠나는 한국 시장
리피오돌·고어 인공혈관·리소드렌·옴보…실제 철수·출시 포기
치료 연속성과 환자 접근성 보장할 정책 설계 필요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6-20 11:59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약품의 급여 등재 과정에서 반복되는 약가 인하 요구가 실제로 치료제 철수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의료 현장에서는 "지나친 가격 중심 급여정책이 오히려 환자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학회 현장에서 기자와 만난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종양내과 A교수는 "다국적사가 들여오는 치료제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가격인 경우도 많은데, 한국은 그마저도 또 깎아야 급여를 해준다고 한다"며 "환자들이 꾸준히 쓰고 있는 치료제조차 철수 가능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런 구조가 과연 지속 가능하냐고, 솔직히 묻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사례는 간암 색전술에 쓰이는 조영제 '리피오돌'이다. 이 약을 독점 공급했던 게르베코리아는 2018년 세계적 물량 부족과 국내 약가의 낮음을 이유로 공급 중단을 결정했다. 당시 리피오돌은 간암 환자의 시술에 필수적인 약제였지만, 대체제가 사실상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퇴장방지 의약품 보호조치의 일환으로 예외적으로 약가를 인상해 공급 중단을 막았다.

미국 고어(Gore)사의 인공혈관 제품도 2017년 10월 국내에서 철수했다. 낮은 건강보험 수가와 식약처와의 GMP(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인증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 인공혈관은 선천성 심장병 수술에 반드시 필요한 치료재료로, 재고가 바닥나기 시작하자 일부 의료진과 환자가 직접 수입에 나서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 사건은 이후 정부가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 공급 제도'를 신설하는 계기가 됐다. 해당 제도는 희귀·난치질환자에게 필수적이지만 대체품이 없거나, 국내 공급이 불안정한 의료기기를 긴급히 수입·공급해 환자의 치료 기회를 보장하는 방식이다.

부신암 치료에 사용되는 항암제 '리소드렌(미토테인)'도 2021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사에서 비용효과성을 이유로 비급여 판정을 받았다. 이후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비급여로라도 약을 처방받아 왔지만, 지난해 공급사 측 사정으로 공급이 중단됐다.

리소드렌은 부신암 환자의 치료에 꼭 필요한 항암제로 현재 국내외를 통틀어 대체 의약품이 없는 상황이다.

절박한 환자들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자비로 수입을 신청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운송비와 통관비 등 부대비용이 추가로 발생했고 실제 약이 도착하는 데 6~8주가량 소요됐다. 암 치료에 집중해야 할 환자가 치료제 수급까지 떠맡아야 하는 현실에 놓인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로 주목받았던 한국릴리의 '옴보(미리키주맙)'가 국내 출시를 포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11월,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는 옴보에 대해 '평가금액 이하 수용 시 급여 적정성 인정'이라는 조건부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한국릴리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 협상에 나서지 않았고, 결국 국내 출시를 포기했다.

의학계는 이 사례를 두고 "지나치게 낮은 약가 제시가 글로벌 제약사의 한국 시장 철수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A교수는 "비싼 약은 그 약 나름의 가치로 평가하고 꼭 필요한 약은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하는데, 지금은 모든 약을 동일하게 '더 깎아야 한다'는 프레임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건강보험 재정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치료 연속성과 환자 접근성이라는 핵심 가치를 고려한 균형 잡힌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임상적 필수성'과 '경제성'이 충돌할 경우, 후자만을 기준 삼는 현재의 급여심사 구조는 재검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교수는 "환자들이 잘 쓰고 있는 치료제를 반복적으로 깎다가 결국 사라지게 만드는 구조에서, 아무리 재정을 절감해도 손해를 보는 건 환자"라며 "지금은 '약을 얼마에 쓰게 해줄 것인가'가 아니라 '약이 계속 존재할 수 있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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