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이화여자대학교 간호대학 배성희 교수, 대한간호협회 신경림 회장,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중소병원 김진경 수간호사. 사진=김원정 기자
[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간호법 시행령'과 '간호법 시행규칙'이 21일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간호사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지만 간호사 1인당 환자수에 대한 명확한 기준조차 없어 간호현장은 과도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와 환자 안전 위협으로 직결되는 만큼 시행을 앞둔 간호법의 핵심 과제로 '간호 인력 배치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19일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 주최로 국회의원회관 제11간담회의실에서 '간호사 대 환자수법제화 필요성과 과제'를 주제로 열린 '환자 안전과 간호사 보호를 위한 간호법 개정 토론회' 참석자들은 이 같은 의견에 한목소리를 냈다.
이수진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국민의 건강권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돌봄 중심의 의료체계 실현을 위한 간호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간호법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현재 간호사 1인당 환자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의료 현장의 간호사들은 적정 환자수에 대한 기준이 없어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고 이것은 결국 높은 이직률, 퇴사율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간호사의 업무 과중은 환자안전 문제와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조속히 간호사 산정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 간호사 당 적정 환자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지난해에도 계속 얘기를 했었지만 정부는 실질적인 개선 계획을 내놓지 못했다. 때문에 시행을 앞둔 간호법 안에 이 내용이 추가로 개정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대한간호협회 신경림 회장도 인사말에서 간호법이 단지 선언적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간호사의 전문성을 보장하고 환자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반드시 보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간호사 대 환자수' 문제는 간호환경 개선을 위한 기초적이고 시급한 과제라는 시각을 전했다.
신경림 회장은 "간호법 제정의 목적은 첫째, 국민 건강의 증진과 환자 안전 도모다. 둘째, 간호사의 전문성 강화다. 이 두 가지 핵심 가치는 법이 더 촘촘하고 실질적일수록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래야 환자는 더욱 안전해지고 간호사는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간호법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방향이다. 그러나 현재의 간호법과 시행규칙은 이러한 입법 취지를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환자 안전보다는 이익 집단과 타 직역과의 갈등을 우려한 결과 간호법은 선언적 가치만을 담았을 뿐이다. 하지만 간호인의 발걸음은 멈출 수 없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뚜벅뚜벅 걸어 나갈 것이다. 그 첫 번째 발걸음은 바로 간호 인력 배치기준"이라는 데 방점을 뒀다.
신 회장은 "간호환경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인 간호사 대 환자수 문제는 우리가 선진 간호 환경으로 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현재 간호법은 이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그에 따른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단 한 줄의 선언적 내용에 불과하다. 선언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며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이제라도 간호법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피력했다.
간호법, 간호사-환자 비율 기준과 보상 구체성 결여돼
병상 수 조정과 간호사 업무환경 개선 병행 필요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연자로 참석한 이화여자대학교 간호대학 배성희 교수는 '간호사 대 환자수 법제화 필요성 및 향후 계획'을 발제로 환자 안전과 간호사 보호를 실현하기 위해 '간호사 대 환자수' 법제화가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배성희 교수는 "현재 간호법 제29조는 간호사 배치에 관한 실질적인 기준 없이 정책 수립 가능성만 언급하고 있다. 이는 환자와 간호사 모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성이 결여된 선언적 문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배 교수는 국내외 연구를 인용하며 간호사 부족이 환자의 사망률 증가, 입원 기간 연장, 환자 만족도 저하 등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간호사 측면에서도 간호사 배치 수준(간호사 대 환자수)이 낮을 경우 피로, 정서적 고갈, 직무 불만족, 이직률 상승 등의 부정적 영향이 명확하게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법제화 추진 시 한국의 의료체계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배 교수는 "한국은 인구 1000명당 병상 수가 OECD 평균보다 약 3배 많은 12.7병상(2022년 기준)으로 병원 중심, 입원 중심의 구조가 강하다"며 이에 대한 검토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보건의료 인력 배치에 있어 단순 투입(input)뿐만 아니라 서비스 결과(output)에 대한 보상체계를 마련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배 교수는 미국의 가치 기반 지불제도(Value-Based Programs)를 예로 들며 "의료 서비스의 질 향상과 간호사 배치 수준 제고를 위해 인력 투입에 따른 직접적인 인건비 지원뿐 아니라 성과에 따른 보상 구조가 병행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대한간호협회의 향후 대응 방안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배 교수는 "간호법 제29조 개정을 위한 구체적 기준 마련을 위해 간협에서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연내 개정안 도출을 목표로 공론화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TF는 김진현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교수를 위원장으로 배 교수를 포함한 학계 5명의 위원과 현장 간호사 2인의 위원 등 총 8인으로 구성했으며 간호사 배치수준 상향과 정보 공개 의무화를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어진 토론에서 중소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밝힌 김진영 수간호사는 현행 간호사 배치기준의 한계와 중소병원 및 지방병원 간호사들이 처한 열악한 근무 여건을 토로했다.
김 수간호사는 "300병상 미만의 중소병원에서 근무 중이며 해당 병원은 건강보험의 간호등급 차등제에 따라 전담 간호사 1명 당 환자 2~2.2명 수준을 유지해 A등급에 해당하는 간호등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외래환자 12명을 입원환자 1명으로 환산하는 규정에 따라 실제 간호사가 맡는 환자수는 최소 12명에서 최대 19명 수준"이라고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기준상 수치일 뿐 현실은 다르다고 언급했다. 김 수간호사는 "실제로는 간호사 1명이 20명에서 25명 이상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야간에는 의료인력은 줄어들지만 환자수는 그대로 이기 때문에 담당해야 할 환자는 늘어나는 셈이다. 더욱이 야간 응급상황이나 중증환자 발생할 경우 업무부담이 훨씬 커진다"고 했다.
간호등급 차등제에 따른 배치기준이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며 환자 중증도나 시간대별 업무량 차이 등 현실적인 간호업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수간호사는 "처벌 규정이 없다 보니 중소병원, 특히 지방 병원은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간호사 채용 자체가 어려운 현실에서 기존 등급 유지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다. 또 오전에는 수술과 퇴원이 많아 업무량이 많고 오후에는 수술 후 회복 환자들의 입원으로 업무가 집중된다. 같은 입원 환자라도 경증환자와 중증환자의 간호업무량은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의료기관 종별, 환자특성 및 중증도, 간호사의 근무형태를 반영한 실질적이고 유연한 간호사 배치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환자단체에서는 간호 인력 확충이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간호사 1인 당 환자수 기준의 법제화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병상 중심의 한국 의료체계 특성과 인력 구조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환자 입장에서는 최신 의료 기술과 신약 개발도 중요하지만 결국 병상에서 환자를 직접 돌보는 것은 간호사다. 양질의 간호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선 충분한 간호 인력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간호사 대 환자수 기준 마련 시 현재 국내 병상수 과잉 문제를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우리나라는 병상수가 지나치게 많은 편이며 현재 기준으로 간호 인력 배치를 일률적으로 늘리게 되면 막대한 재정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며 "병상 수를 점진적으로 줄이는 정책방향과 연계해 간호사 배치기준도 함께 조정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현장 간호사들의 업무실태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안 대표는 "실제 병원에서는 PA(진료지원) 간호사들이 의사, 약사, 의료기사의 업무까지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며 "간호사가 본연의 간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 간호 인력 배치기준도 제대로 설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매년 3만명 가량의 간호사가 배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간호사 부족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간호 인력의 이탈과 근속 환경 개선에 대해서 고려해 배치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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