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체 위수탁 손보는 정부‥정작 연구는 '상호정산·자율계약' 제안

"불공정 거래 개선" 명분 내세웠지만 연구는 '시장 자율' 해법 제시
상호정산·공정거래 가이드·질 관리 선행 등 정반대 방향 제시
의료계 "협의 약속 무시…필수의료 기반 무너진다" 강력 반발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10-13 11:58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보건복지부가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의 불공정 거래 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손질에 나섰다. 그러나 정작 정부가 직접 의뢰한 연구용역에서는 '상호정산'과 '자율계약' 등 전혀 다른 방향을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 결과와 정부 정책의 온도차가 크다는 지적이다.

복지부는 의원 등 요양기관이 환자에게서 채취한 혈액·소변 등의 검체를 다른 기관에 의뢰할 경우, '검사료(100%)'와 '위탁검사관리료(10%)'를 각각 수탁·위탁기관에 지급하도록 제도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개인정보 보호 규정 때문에 수탁기관이 직접 급여를 청구할 수 없어, 위탁기관이 보험급여를 110% 청구한 뒤 수탁기관에 검사료를 전달하는 방식이 굳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위탁기관이 검사료의 일정 비율을 공제하는 '할인 거래'가 발생했고, 수탁기관의 실제 수입은 규정된 금액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복지부는 이런 구조가 "검체검사의 질을 떨어뜨리고 시장 질서를 왜곡시킨다"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에 따라 위탁관리료 폐지, 위·수탁 분리청구 등 다양한 개편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반면 복지부가 2023년 고려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수행한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선방안 마련 연구' 최종보고서는 정부의 구상과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보고서 제2절 '검체검사 비용 청구·지급 방안'에는 검체검사를 ▲진단검사(별표 제외)와 ▲전문의 직접 판독이 필요한 고난이도 검사(병리·특수검사 등)로 구분하고, 각 성격에 맞는 지급 전략을 따로 제시했다.

연구진은 별표 제외 진단검사에 대해 검체검사에 할당된 건강보험료 총액 내에서 상호정산을 허용하고, 현행 시장질서에 따라 자율계약으로 배분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정부가 일률적인 비율을 정하기보다, 위·수탁기관 간 자율 합의를 통한 정산 체계가 현실적이라는 판단이었다.

4:7 등 배분 비율을 고정하자는 일부 제안에 대해서도 연구진은 "모든 검사 항목에 일률적 비율을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병리검사처럼 슬라이드 제작과 판독이 필요한 검사와 자동화 설비로 처리되는 일반혈액검사는 비용 구조가 크게 다르며, 검체 채취료 유무 등 진료과별 차이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획일적 비율을 강제할 경우, 오히려 또 다른 형태의 할인·불공정 거래를 낳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보고서는 상호정산이 제도화될 경우 공정거래 가이드라인과 최소한의 정산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위탁기관과 수탁기관 간 합의에 따라 상호정산이 이뤄지는 만큼, 공정거래 위반 시 형평의 원칙을 고려해 제재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불공정 거래가 발생하면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거래행위 심사지침'이나 의료법 제23조의5 등 법적 근거로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어느 한 기관이 운영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불균형한 정산이 이뤄지지 않도록 고지해야 한다는 구체적 지침도 포함됐다.

아울러 연구진은 상호정산 제도화를 단순한 거래 구조 개편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대안적 지불제도 도입의 단초로 평가했다. 검체검사 예산 총액을 설정하는 '소프트 캡(soft cap)' 방식을 검토해 재정 건전성을 높이고, 상대가치점수 체계 역시 1~3년 주기로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무엇보다 연구진은 "상호정산을 제도화할 경우, 질 관리 강화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학회가 주도하는 수탁기관 인증제도를 정부가 참여하는 공적 체계로 전환하고, 정도관리 기준을 공개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검체검사 제도의 본질적 목적이 '불공정 해소'가 아니라 '검사 질 관리'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결국 복지부가 추진하는 '위탁관리료 폐지'와 '검체검사료 공동 분배' 방안은 연구진이 제시한 방향과 엇갈린다. 정책 일관성 측면에서, 정부가 연구 결과를 어떻게 반영할지가 향후 핵심 관전 포인트다.

의료계는 이번 제도 손질을 "현장과의 협의 없이 추진되는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복지부가 2022년 고시 제정 당시 의료계와 협의체를 구성해 충분한 절차를 거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은 그 약속을 스스로 무시했다고 저격했다.

의협은 검체검사가 본질적으로 진료의 일부라는 점을 강조하며 "수탁기관의 문제를 위탁기관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왜곡이다. 협의 없는 제도 변경은 일차의료와 필수의료의 기반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우려를 내놨다.

복지부가 문제로 언급한 과당경쟁·재위탁·끼워팔기 문제에 대해서도 의료계는 입장을 달리했다. 이는 "수탁기관 내부의 거래 구조에서 비롯된 사안"이라며 "선의로 진료에 임하는 의료인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폭력적 왜곡"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또 정부가 수십 년 동안 검체 채취료조차 지급하지 않은 채 상호정산 구조를 방치해온 점을 짚었다. 이제 와서 책임을 의료계에 전가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의협은 "국민 건강과 의료 정의를 지키기 위해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일방통행을 계속한다면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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