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산업 산책 <1> - 효자산업과 제약산업
대한약학회의 칼럼 권유에 덜컥 승낙했는데 도대체 뭘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필자는 산업계에 몸담고 있어, 우리나라를 단시간 내에 경제강국으로 이끈 여러 다른 산업부분과 제약산업이 거기서 배워야 할 점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써 볼까 한다.
아다시피 우리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1964년 무연탄, 오징어, 가발을 수출해서 우연히 1억 달러를 돌파한 것을 기념해 '무역의 날'을 제정했다.
이후 초스피드로 5000%이상 규모가 성장, 지금은 세계 9위의 경제강국이 됐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은 국민을 먹여 살리는 효자산업이다. 최근에는 초음속전투기 같이 전세계 통틀어 열손가락 안의 나라만 낄 수 있다는 첨단무기 수출도 한몫을 거들고 있다.
1973년 일본 미쯔비시엔진에 이탈리아 디자인의 포니로 시작한 자동차산업은 초창기 '일회용 싸구려 차'라는 혹평을 받았지만, 이젠 자체 개발한 세타엔진을 스승 격인 미쯔비시에 역수출할 정도로 불과 52년만에 자동차 강국으로 자리잡았다.
미래 자동차의 핵심기술이라는 배터리도 삼성 SDI와 LG화학등 한국이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1983년 설립된 삼성전자도 설계기술은 미국 Micro Technology사, 공정기술은 일본의 Sharp사를 모방해서 시작했다.
4년 후 선친이 돌아가시고 이건희 회장이 회사를 물려받은 후, 유럽에서 삼성제품이 진열대에서 밀려나 창고에 박혀 먼지가 쌓여 반품되는 걸보고 '삼성전자는 암에 걸렸다. 어떻게 하면 체면 안 구기고 회사 문을 닫을지 고민 중이다'라고 한지 42년만에 글로벌 빅3 기업으로 올라섰다. 지금은 Sony, Panasonic, National 등 일본가전 10개사의 이익보다 삼성의 이익이 커서 공정기술을 알려준 Sharp는 국적(國賊)기업으로 찍히고 결국은 대만에 팔려 나갔다.
1971년 자본도, 기술도, 심지어 도크도 없이 덜컥 배 2척 을 수주해 시작된 조선산업도 해양플랜트, 드릴쉽, 크루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까지 불과 54년만에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어 트럼프 2기 장관도 방한해 협력을 요청하는 판이다.
'너절한' 소총 탄 수출로 시작한 방위산업도 잠수함에서 소나타1000대의 수출효과에 맞먹는다는 TA-50훈련기에서 더 나가 미래형 전투기라는 KF-21개발에 이르기 까지 불과 50년만에 이뤄낸 쾌거다.
그러나 한국에서 반도체, 자동차 보다 훨씬 더 역사가 깊은 것이 제약산업이다. 최초의 근대의약품인 '활명수'가 발매된 때가 1897년이다.

영국처럼 키나 나무 같은 천연자원을 가져올 식민지가 없었던 독일이 필사적으로 자국 내에서 합성한 진통제가 아스피린이라는데, 탄생연도가 같다. 무려 128년의 역사로 '활명수, 장수의 비결'이라는 딘행본도 나와 흥미롭게 읽었다.
일제가 고등교육 기관을 만들면서 의학교 보다 약학교를 먼저 만들었다는데, 약이 얼마나 우리 삶에 밀접한지, 공공재로서의 얼마나 중요한지 방증이기도 하다.
이처럼 구한말부터의 오랜 역사를 가진 제약이 아직 국민을 먹여 살리는 효자산업에는 이르지 못하고 국민을 지키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필리핀 같이 제약 주권을 다국적 기업에게 빼앗긴 나라도 많지만, 우리 제약은 그나마 국민 건강보험이란 틀 안에서 선방하는 편이다.
물질특허도입, 한미 FTA 등 파도를 헤치고, 단일의약품으로 매출 1위였던 박카스가 2000년 의약분업이 되면서 노바스크(암로디핀베실산염)에게 1위를 빼앗기고, 노바스크는 다시 한미의 염변경 개량신약에게 역전 당하는 등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제약의 발전은 도전과 극복의 연속이였다.
우리보다 내수시장이 작은 스위스나 이스라엘이 Roche, Novartis나 Teva 같이 걸출한 기업이 나타나 해외에서 벌어온 돈으로 효자산업이 된 사례는 참고할만 하다.
코로나시대를 거치며 바이오시밀러로 제약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지만, 더 나아가 물질의 최초 개발국이 되고, 내수·수출 비중이 90대10에서 10대90으로 역전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글로벌화를 실천하고, 시장경쟁도 합리화 해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은 산업이기도 하다.
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이런 날이 빨리 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에 걸맞는 정책이 뒷받침되도록 열심히 제언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칼럼을 마친다.
|기고| 정원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부사장(약학박사)
-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학/석/박사
- 전) 일본 국립공중위생원(NIPH) 연구원
- 전) 일본 시즈오카대학 강사
- 전) 한미약품 개발 상무
- 현) 유나이티드제약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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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는 메디파나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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