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최희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 이중규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 윤용선 대한의사협회 지불보상제도TF 부위원장, 대한병원협회 서인석 보험이사. 사진=김원정 기자
[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노인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면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출 효율화와 지불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다만, 오랜 기간 정착된 행위별 수가제에 익숙한 의료기관과 국민의 반발을 고려해 현 체제 내에서 실현 가능한 개선책을 우선 모색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6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초고령사회의 건강보험 재정은 지속가능한가?'를 주제로 열린 '건강보험 재정 균형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는 이러한 쟁점을 중심으로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이번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이수진·서영석·김윤 의원, 국민의힘 안상훈 의원,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 진보당 전종덕 의원, 국민중심 의료개혁 연대회의 등이 공동 주최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건강보험보험료율은 이미 소득의 7%를 넘어 법정 상한에 도달했고 지난 10년간 지출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단순히 보험료를 더 걷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조를 고치는 일, 즉 낭비와 비효율이 반복되는 지출구조를 바로 잡는 일"이라고 짚었다.
이어 최근 발표된 OECD 통계를 인용해 김 의원은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가 2.7명으로 OECD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지만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8회로 OECD 평균의 약 2.8배에 달한다. 병상 수 역시 OECD 평균의 세배 수준이다. 의사들은 과로에 시달리고 3분 진료가 만연한 가운데 과잉진료 유인이 상존하고 있다. 이는 곧 국민의 과도한 의료비 지출과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단면"이라고 진단했다.
공동 주최자인 최희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최근 10년간 건강보험 지출은 두 배 넘게 증가했지만 건강보험 보장률은 여전히 60%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며 "이러한 구조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지불제도 개편은 건강보험 개혁의 중심에 놓여야 할 시급한 과제다. 현재의 행위별 수가 중심의 지불방식은 필수의료보다는 수익성 중심의 진료를 유도하고 의료기관 간 과잉경쟁과 건강보험 지출의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토론회 주제 발표를 맡은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는 '현행 건강보험 지불제도에 대한 평가 및 개선방안'을 발제로 "국민의료비 증가 추세와 건강보험 사회안전망 기능, 초고령화에 따른 국민의 보험료 부담 능력, 재정지출 여건 등을 고려할 때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을 담보하려면 현행 지불제도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대안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진료비 지불제도는 ▲행위별 수가제가 93.4%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포괄수가제(2.1%) ▲일당제(4.5%)로 운영되고 있다.
해외의 진료비 지불제도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와 비교해 설명했다. 김 교수는 "OECD 국가 대부분이 총액제 하에서 1차의료기관에 대해 인두제와 행위별수가제를 함께 적용하고 있다. 병원급에는 포괄수가제와 총액제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의료질의 자원배분 효율성 향상을 위해 성과기반 지불제도(P4P), 통합지불제도 등 다양한 제도 논의가 활발하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지불제도는 외래와 입원, 1차의료기관과 병원급 모두 행위별수가제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김 교수는 ▲비급여 관리시스템 확립 ▲총진료비 관리시스템 구축 ▲수가산출모형의 법제화 ▲상대가치점수체계의 재정중립성 유지 ▲특정정책목표와 연계된 수가 정비 ▲수가계약제는 요양급여비용 계약제로 전환 ▲환산지수 고정 ▲ 포괄수가제 및 일당제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건강보험재정의 투명한 관리를 위해 기금방식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기금방식은 건보재정의 균형있게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안정장치로서 기능할 수 있다"며 "기금화를 통해 국회의 감시를 받게 되면 조금 더 체계적인 관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건강보험 재정 균형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패널토론이 진행됐다. 사진=김원정 기자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지불제도 개편의 필요성과 한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최복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상대가치점수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인건비 중심의 개편이 전문과 간 수익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인턴과 전공의 인건비를 진료비가 아닌 수련비용으로 간주해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재는 약품비 절감 장려금, 적정성 평가 지원금, 행위별 수가제 보완지원금(시범사업), 인프라 지원금, 비상진료 지원금 등 별도 지원정책이 존재하나 수가 산출에 명확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재정과 정부 예산으로 의료기관에 지출되는 비용은 수가산출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손석호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팀장은 "지불제도 개편이 어려운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나 재정부담 때문이 아니라 제도적 관성, 이해관계 충돌, 정치적 부담 등 복합적 요인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지불제도를 완전히 개편하는 문제는 의료계의 협조 없이는 현실적으로 실행이 어렵기 때문에 우선은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유지하더라도 진료비 증감 여부를 수가계약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보상 강화를 위해 상대가치점수를 조정하더라도 한쪽을 올리면 다른 쪽을 내리는 재정중립 원칙 준수를 병행해야 한다. 포괄수가제와 일당제 등에 대한 제도적 성과와 한계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며 궁극적으로 총진료비 목표 설정, 비급여 관리, 혼합진료 금지, 요양병원 기능 세분화와 장기입원 억제 등 지출효율화 방안도 실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용선 대한의사협회 지불보상제도TF 부위원장은 "의료비는 지불제도 개편만으로 잡히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의료정책, 의약분업이나 문재인 케어 때 보장성 강화만 시켜놨지 그 안에 의료전달체계는 하나도 손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대형병원 쏠림이 생겼다"며 "지불제도 개편을 하려면 적정수가가 보장돼야 한다. 또 의료수요자의 행위량이 조절되는 지불제도로 개편된다면 의료기관들도 지불제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한병원협회 서인석 보험이사는 행위별수가를 시행한지 10년 이상 돼 의료기관이나 국민도 익숙해진 상황에서 이를 바꾸기 보다는 현재 상황에서 효율화를 꾀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서 이사는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70세, 80세 이상 노인환자들이 아팠을 때 충분하게 회복하고 집에 갈 수 있는 구조, 또 퇴원 후 적절한 의료기관에 연계해주는 구조 등을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소비자들의 의료쇼핑을 방지해 낭비되는 재정이 없도록 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현실적인 효율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처럼 제도 개선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 가운데 정부도 건보재정 위기와 제도 개편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실행에 있어서는 의료계의 저항, 국민 여론 등 복합적인 현실을 고려한 점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전했다.
이중규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이번 토론회에서 김진현 교수가 발표한 전반적인 내용이나 방향성,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며 "지금 건보누적준비금이 30조원 정도다. 이는 석 달 정도 지불할 수 있는 금액으로, 얼마나 유지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내부적으로도 비관적이다. 비관적이라는 것은 실제 진료비 증가율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의식에는 지불제도도 있지만 공급 측면에서 병상을 관리해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병상을 직접적으로 퇴출시키거나 줄이기에는 제도적 한계가 있다. 이에 다양한 형태의 시범사업을 할 때 병상을 관리하는 관점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병상 자체를 줄이는 것이 의료비를 줄이는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지불제도 측면에서는 행위별수가제가 너무 오랫동안 변화의 움직임이 없었다는 비판으로 이해했다"면서 "여러 가지 지불제도를 묶어서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아울러 지불제도를 바꿀 때 공급자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반발도 클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기관 접근성이 자유로운데 이러한 접근성을 제한한다면 많은 비판이 쏟아질 것이다. 즉 국민들의 의료행태를 바꾸는 작업은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발제자가 제안한 건강보험재정의 기금방식 운용은 기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재정운영이 투명해야 된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어떤 형태로 투명화해야 되냐는 측면에서 법제화하는 것도 찬성한다. 그런데 건강보험을 기금화하게 되면 예산처럼 되기 때문에 고가 약이 들어왔으면 이에 대한 예산 편성을 하려면 국회의 승인을 거쳐야 해서 빠르게 재정 집행이 안 될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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