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해진 기자] 고령층의 예방접종 제도 확대가 비용효과성과 건강 형평성 측면 등에서 사회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됨에 따라, 초고령화사회에 대응하는 국가 정책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12일 서울 중구 주한영국대사관에서 주한영국대사관(대사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상공회의소(회장 숀 블레이클리), 한국GSK(대표이사 구나 리디거) 공동 주관으로 개최된 '2025 헬시에이징 코리아(2025 Healthy Ageing Korea) 포럼'에는 의약전문가와 공공단체, 정부 관계자가 한 데 모여 고령층의 예방접종 제도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눴다.
토론에 앞서 이한길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가 '초고령 사회 대응을 위한 성인 예방접종의 가치'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한길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사진=조해진 기자
이한길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의 보건의료 패러다임 전환이 가속화 되고 있다. 예방의료는 초기 비용이 들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의료비 절감과 질병 부담 경감에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들이 있다"고 글로벌 추세를 설명한 뒤 "향후 우리나라 건강보험 재정이 적자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데, 많은 의료비를 사용하는 고령층의 질병을 예방하려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백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인 특히 고령층 대상 예방접종 확대는 건강 수명 연장과의 의료비 절감에 기여하는 비용 효과적인 공공 투자"라며 "우리나라 국가예방접종사업(NIP)은 어린이 중심으로 지원이 이어져 왔으나, 노인 대상으로는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다. 또한 고령층의 정보 접근성·경제적 여력·질병 인식 부족 등 여러 제약으로 인해 자발적인 예방접종 참여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NIP 대상인 인플루엔자 백신 예방접종률은 82.5%이지만, NIP 미대상인 대상포진 백신 예방접종률은 38.2%에 그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교수는 해외 주요 국가에서 성인 예방접종이 NIP에 포함돼 공공재정으로 지원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영국의 경우 고령층을 대상으로 대상포진 무료 접종 시행, 프랑스와 일본, 싱가포르 등은 혼합형 재정 구조인 코페이먼트(Co-payment, 정부 및 보험+개인부담) 형태로 대상포진 백신을 지원하는 등 성인 예방접종이 확대되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나라 성인 예방접종은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자체 예산을 활용한 소규모 예방접종 지원사업을 통해 운영되는 수준이어서 지역간 형평성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백신 종류에서도 편차가 존재하고 있었다. 생백신만 지원하는 지역인 경우에는 면역저하자는 맞을 수 없어 지원이 있어도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 초래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해외 사례들을 살펴보면, 국가가 백신 비용을 다 부담하기도 하고, 코페이먼트 모델을 다각화하기도 하는데 이런 사례들을 바탕으로 우리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대상포진 백신과 RSV 백신 대상으로 국내 성인 예방접종의 비용-편익을 분석한 결과, 대상포진 백신의 경우 50대 이상에서 사회경제적편익(ROI)이 약 1.52로 나타났으며, RSV 백신의 경우는 60세 이상에서 1.65로 나타났다.
사회경제적 편익이 1을 초과하면 투입 비용보다 더 큰 사회적 편익이 발생했다는 뜻으로 간주되는 만큼, 이 교수는 성인 예방접종이 단순한 의료행위가 아니라 장기적인 사회경제적 편익을 가져오는 높은 수익률의 공공투자임을 입증하는 결과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성인 예방접종 확대 정책을 편다면 지자체 단위가 아닌 중앙 정부 주도의 NIP 사업이 필요하다"며 "단계적으로 확대를 해 나간다면 국가가 전체 100%를 부담하지 않는 다양한 옵션들을 활용해 볼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왼쪽부터)송재찬 대한노인회 사무총장, 이형민 질병관리청 예방접종정책과장. 사진=조해진 기자
발제 후에는 '성인 예방접종 제도 확대를 위한 정부의 검토, 준비 현황 및 노인 현장의 기대'를 주제로 패널 토론이 이뤄졌다.
패널로는 발제자로 참석한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 이한길 교수, 송재찬 대한노인회 사무총장, 이형민 질병관리청 예방접종정책과장이 참석했다. 송재찬 사무총장은 "대한노인회는 노인 건강 증진과 삶의 질 향상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질병의 선제적 예방 측면에서 예방접종은 나를 보호하고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며 "그러나 영유아와 달리 고령층 예방접종은 아직도 사각지대에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노인 인구의 경제활동 참여는 불가피해졌다.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적 조치가 필요한데 그 중 하나가 국가의 성인 예방접종 확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 사무총장은 "성인 예방접종은 사회경제적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갖고 온다. 따라서 단순히 비용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비용효과성에 대해 좀 더 연구하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성인 예방접종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성인 예방접종은 건강 형평성 보장에도 매우 기여할 수 있다. 필수 예방접종의 부재는 건강 형평성 저하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세대, 지역, 소득 간 불평등한 예방접종은 건강수명의 차이까지 가져오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저소득층의 백신 접근성은 상당히 떨어져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부터 중점적으로 접근성을 높여가며 성인 예방접종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정부, 학계, 산업계, 노인들이 같이 노력을 하고 앞으로 좀 더 긍정적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형민 예방접종정책과장은 "우리나라 NIP 제도의 근거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아래에 있다. 그래서 감영병 관리 혹은 중재 수단으로서 선정 시에 전염성을 상당히 중요하게 보고 있었다"고 말문을 연 뒤 "그러나 세계의 인구 구조자체가 변화하면서 국제보건기구(WHO) 등에서도 생애주기 예방접종 프로세스 코디네이션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 이에 예방접종은 이제 공중보건학적 발전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건강 수준을 어떻게 증대하고, 삶의 질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에 대해 굉장히 많은 관심들을 갖고 있고, 활발히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고령화사회 내 성인 예방접종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표했다.
다만 "질병관리청 올해 예산이 1조6698억원인데, 성인 예방접종 확대는 기관 전체 예산을 상회하는 비용이 필요한, 큰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라며 비용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음을 밝혔다.
그러면서 "현행 NIP는 정부가 비용을 전부 부담하는 방식이지만, 앞으로는 발제에서 언급된 코페이먼트와 같이 일정 부분을 건강보험 제도에 편입해 개인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찾는 등 비용적인 부분에 대한 여러 고민들을 검토하고 있다"며 "빠르면 올해 연말에는 NIP 도입을 고려한 백신을 선정하는 기준과 산업계에서 어떤 준비를 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담은 매뉴얼을 공개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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