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왼쪽부터) 대한입원의학회 경태영 회장, 사직전공의 박다희 씨, 사직전공의 홍성민 씨,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고범석 부회장, 용인세브란스병원 이은혜 교수, 대한내과학회 김대중 수련이사.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이 정부와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되면서, 근무시간 단축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는 단순히 근무조건 개선이 아니라 병원 진료 구조 자체의 변화를 불러올 문제다. 국내 대형병원은 진료의 40% 안팎을 전공의에게 의존하고 있어, 근무시간이 줄어들면 환자 진료 공백과 교육의 질 저하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의료현장은 기존 체제와는 다른 '뉴노멀 수련병원' 모델을 준비해야 한다. 근무시간 단축의 파급을 흡수하면서도 환자 안전과 전공의 교육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2016년 도입된 입원전담전문의 제도가 대안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도 현장에서는 역할과 정체성을 둘러싼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20일 열린 '뉴노멀 수련병원의 로드맵을 위한 제안 -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입원의학의 역할' 공동 세미나에서도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전공의가 겪은 수련 공백과 혼란
입원전담전문의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체성이 명확해야 한다. 하지만 의료진조차 개념을 충분히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입원의학회 경태영 회장은 "입원전담전문의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조차 혼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고 말했다.
의료계가 입원전담전문의 제도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공의 교육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근무시간 단축으로 임상 경험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교육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현장의 경험은 달랐다.
사직전공의(소아청소년과 전공) 박다희 씨는 "소청과 전공의 수가 줄면서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인력이 필요했다"며 입원전담전문의 병동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도입 초기에는 전문의와 함께 진료하며 이론과 실무를 균형 있게 배우는 이상적인 환경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 효과는 줄어들었다. 박 씨는 "전공의와 전문의의 역할이 혼재되면서 업무 부담이 많은 환자가 전공의에게 맡겨지고, 전문의 공백 시에는 전공의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며 "행정업무와 술기 부담까지 과도하게 전가돼 비교육적 업무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이는 제도가 도입 초반에는 이상적 환경을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 효과가 급격히 약화됐음을 보여준다. 이에 박 씨는 입원전담전문의 제도에 대해 단순 대체 인력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구조화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직전공의(외과 전공) 홍성민 씨도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짚었다. 그는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는 전공의에게 개원가에서 보기 힘든 복합 환자를 접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현실의 문제도 분명했다. 그는 "입원전담전문의가 병동을 전담하지만 인력이 부족하면 다른 병동까지 맡는 등 본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 요구됐고, 전문의임에도 진료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입원전담전문의가 환자를 맡으면서 전공의는 외과 수련에서 필수적인 수술 후 환자 관리 기회를 놓치고, 간단한 수술 환자만 맡는 악순환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홍 씨는 입원전담전문의와 전공의 간의 관계도 문제로 꼽았다. 그는 "존중해주는 전문의도 있었지만 감정적 언사나 잡무 전가, 환자 인계 과정에서의 모욕까지 경험했다"며 "몸은 힘들어도 차라리 혼자 일하는 게 낫겠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그는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는 필요하지만, 전공의의 교육권과 인권이 동시에 보장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육·재정 뒷받침 없는 확산은 불가능"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를 안정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인력 확보와 운영을 뒷받침할 재정적 기반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현재처럼 병원 자체 재원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확충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고범석 부회장은 "입원전담전문의가 더 확보되고, 야간 당직을 전담할 수 있는 전문의가 충원돼야 환자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가 제공된다"며 "그러려면 병원 자체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국가 차원의 재정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무시간 단축과 수련기간 단축이라는 환경 속에서 단순히 많은 환자를 경험하는 방식으로는 전공의가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었다. 교육 목표를 역량 중심으로 바꾸고 체계적인 평가와 피드백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입원전담전문의인 용인세브란스병원 이은혜 교수는 "과거에는 블루북(Blue Book)에 명시된 100회, 200회 같은 케이스 숫자를 채우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제는 근무시간이 80시간으로 줄고 외과 수련도 4년에서 3년으로 단축되면서 단순히 숫자를 채우는 방식은 한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적은 케이스라도 체계적으로 배우고 각 학회가 정한 역량에 도달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입원전담전문의가 단순 대체가 아니라, 전공의 교육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미나에서는 입원전담전문의 없이는 전공의 수련 내실화를 담보할 수 없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의료계는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를 활성화하려면 단순 도입을 넘어 병원·정부 차원의 구조적 재편을 요구했다.
대한내과학회 김대중 수련이사는 "지난 4~5년간 제도를 도입하고 활성화하려 애써왔지만, 병원 경영진은 여전히 부정적이고 상급종합병원 평가에서도 제도를 배제시키는 등 제약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입원전담전문의가 보람 있고 전망 있는 직업으로 자리 잡아야 활성화될 수 있다. 현재 300명 수준인 인원이 수천 명으로 늘어나려면 직역 자체가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특히 전공의 교육과 연결된 대안을 제시했다. 분과 중심의 수련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므로 그는 "급성기 내과나 종합내과처럼 전공의가 꼭 경험해야 하는 질환 중심 교육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흐름이다. 문제는 누가 교육과 진료의 연속성을 책임질 것인가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고 교수진은 외래·수술에 매여 있는 현실에서, 입원전담전문의를 제대로 설계하고 활용하는 것만이 답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김대중 이사는 "교수가 전공의와 함께하는 시간이 하루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게 과거의 방식이었다. 앞으로는 30~40시간 이상 교육과 평가, 피드백에 투자해야 하는데 전공의 수련을 내실화하려면 입원전담전문의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바라봤다.
독자의견
작성자 비밀번호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