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악순환‥"통합정보체계·권한 강화 시급"

법 개정·지침 배포에도 현장선 여전히 '뺑뺑이' 반복
구급상황관리센터 병원 선정 권한 강화·법적 근거 마련 필요
"병상·인력 부족·과밀화 해소 없인 실효성 확보 어려워"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9-08 11:30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119구급대가 이송한 환자가 응급실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해 다른 병원으로 다시 옮겨야 하는 '응급실 재이송',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멈추지 않고 있다.

2022년 12월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하도록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시행됐지만, 재이송은 줄지 않았다. 지난해 2월 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전공의 사직과 의료진 이탈이 장기화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같은 해 4월 보건복지부가 '응급실 수용곤란 고지 표준지침'을 각 지자체에 배포했으나 현장의 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발표한 '응급실 뺑뺑이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수용곤란 고지 지침의 쟁점과 실효성 확보 방안' 보고서는 2022년 법 개정의 목적이 후속조치 부재로 달성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2023년 1월 응급의료기관의 수용곤란 통보 기준과 절차를 담은 시행규칙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지만 의료계 내부의 이견으로 국무조정실 규제심사 이후 제정이 지연됐고, 실제로는 지침과 가이드라인만 내려보낸 상태다.

지침에 따르면 응급의료기관은 병상 포화, 진단 장비 불가, 모니터링 장비 부족, 중증응급환자 초과 등 수용 능력을 넘어서는 경우에 한해 요청 시점부터 최대 2시간까지 수용곤란 고지를 할 수 있다. 이후에는 자동으로 해제된다. 반면 인력 부족, 외래환자 대기, 긴 체류 시간 등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119구급대의 재이송 이유는 전문의 부재, 병상 부족, 1차 응급처치 완료 등으로 보고돼 지침상 기준과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의료 현장에서는 인력과 병상 부족을 개선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 수용을 강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입법조사처는 우선 입법과제로 119 구급상황관리센터의 병원 선정 권한 강화를 내놓았다. 이를 두고 한진옥 입법조사관은 "응급실 수용곤란 고지 표준지침에 의하면 119구급대가 병원 선정을 요청하면 구급상황관리센터가 시·도 응급의료위원회 기준에 따라 신속히 이송병원을 결정해야 한다"며 "이 지침이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관련 조항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회에는 구급상황센터가 환자 이송병원을 우선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다.

보고서는 또 통합정보체계 마련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현장에서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으려면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는 '응급의료법' 제15조의 응급의료정보통신망과 '119구조·구급법' 제22조에 따라 종합상황판(E-GEN), 구급활동일지, 병원 전 응급환자 분류도구(Pre-KTAS) 등이 쓰이고 있음에도 활용도와 만족도가 낮다.

게다가 소방청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을 이유로 구급상황일지를 공개하지 않아 전체 상황 파악이 어렵다. 이에 따라 구급활동일지, 국가응급진료정보망,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청구데이터를 연결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 수집·연계 근거를 '응급의료법'에 명확히 둘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응급실 과밀화를 줄이고 환자 대기·진료 지연을 해소하며, 응급환자 진료를 위한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제언도 뒤따랐다. 달빛어린이병원과 같이 야간·휴일 이용이 가능한 의료기관을 확충하고, 119구급상황센터의 상담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급차에는 원칙적으로 3인 이상 대원이 탑승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소방 인력 동결과 소방청 인사·예산권 부재가 장애 요소로 꼽힌다.

여기에 병원 간 전원 체계의 미작동, 의료사고 위험 기피, 응급실 전담 의사 부족 문제도 시급히 해결돼야 한다. 단계별 응급의료기관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기능 수행에 합당한 보상을 제공해야 각 기관이 맡은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다.

한 조사관은 "응급실 뺑뺑이는 골든타임 내 치료를 받지 못해 생명이 위협받는 응급의료체계의 위기를 드러낸다"며 "응급환자 이송병원 결정 권한을 법에 명시하고 통합정보체계 구축을 위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응급실 수용능력 확인'은 코로나19 시기 격리병상 여부를 전화로 확인하는 관행으로 변질돼 운영됐고, 2024년 의료대란 속에서 고착됐다"며 "병상·인력 부족 개선 없이는 현장에서 지침이 작동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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