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전공의, 자격엔 책임도 있다

이정수 기자 (leejs@medipana.com)2024-05-13 05:52

[메디파나뉴스 = 이정수 기자] 전공의가 진료현장을 떠난 지 만 3개월을 앞두고 있다.

전공의 이탈은 당장 하루만 벌어지더라도 국내 의료체계가 휘청거릴 만큼 큰 문제로 여겨졌지만, 국내 의료체계는 전공의가 떠난 지난 3개월 동안 누군가의 희생과 또 누군가의 고통 속에 간신히 버텨나가고 있다.

지난 2월 전공의들을 이토록 매몰차게 의료현장에서 등 돌리게 만들었던 의대정원 증원 문제는 끝끝내 돌고 돌아 이제 사법부 손에 쥐어진 상태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주 중으로 서울고등법원이 의대정원 증원 집행정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가 지난 10일 서울고법에 47건 자료와 2건 별도참고자료를 제출했고, 법원이 이달 중순까지는 결론을 내겠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인용·기각 여부를 미리 점치긴 어려운 상황이기에, 경우의 수 따지기가 한창이다.

기각되면 의대정원 증원 계획은 본래대로 추진된다. 반대로 인용되면 행정적으로 2025학년도 의대정원 증원은 막힌다. 대법원에서 다시 법정다툼을 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내년도 입시 일정을 늦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의료계 일각에서 주장해왔던 '원점 재논의'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올해는 의대정원 증원을 미루고, 충분한 시간 속에서 의사인력 확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 2026학년도 의대정원부터 의정 합의로 증원을 적용하자는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

다만 그렇게 의대정원 증원 문제에서 한숨 돌리게 되더라도, 3개월 가까이 의료현장을 떠나있는 전공의 복귀가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위태로운 상태에서 이어지고 있는 현 비상진료체계를 해소하기 위해선 전공의 복귀가 필요하다.

전공의 복귀 가능성은 의료계 일각에서조차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현 정부로 인해 국내에서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가치가 크게 훼손된 상황에서, 굳이 돌아와 일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이번 항소심 원고에는 전공의·의대생도 포함돼있다. 이 사안에서 제3자 격이라 할 수 있는 서울고법은 '전공의·의대생도 의대정원 증원 정책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당사자'임을 인정했다. 이는 곧 사회로부터 인정받은 셈이 된다. 의료파국 위기에 못 이겨 손을 내민 정부와 의료계 기득권층이 아닌, 진정한 사회가 말이다.

개개인으로서는 외면하고, 피하면 그만이다. 다만 이제 전공의가 국내 의료를 지탱하는 의료계 '일원'으로 공연(公然)히 인정받은 만큼,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선 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준비가 필요하다.

만일 서울고법에 의해 의대정원 증원이 한 차례 연기된다면, 그에 맞춰 대승적 차원에서라도 우선 의료현장에 돌아온 후에 목소리를 계속 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적어도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다'는 진리 아니던가. 결국 자리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법이다.

하나 더 기대되는 것이 있다. 정부는 전공의 이탈 기간이 3개월을 넘어서면 내년에 전문의 시험을 보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공의들이 본격적으로 진료현장을 이탈한 것은 2월 19일 전후다. 법원이 이번 주 중에 판결을 내리게 되면, 전공의들은 만 3개월이 도래하기 전에 내년도 의대정원 증원 여부를 알 수 있게 된다. 아직, 기회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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