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저부담·저급여·저수가 구조와 강압적 규제가 의사의 근로조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을 개선하려면 의사노동조합 설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법무법인(유) LKB 김강대 대표변호사는 의료정책연구원 의료정책포럼 기고에서 의사의 근로자성, 국내 의료 현실, 노동조합 설립 필요성을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헌법 제33조 제1항이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노동조합법이 이를 ‘쟁의행위’로 개념화해 정당한 쟁의에는 형사·민사 책임을 면제한다고 설명했다. 노동조합에 의해 주도되지 않은 쟁의행위는 금지되며, 대법원도 "근로자의 쟁의행위가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 주체가 단체교섭이나 단체협약 체결능력이 있는 자, 즉 노동조합이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의사 노동조합 결성의 장점은 무엇보다 개별 의사가 집단의 힘으로 협상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직무 압박과 소진이 개인의 저항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낮은 의료수가 등 제도적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 또한 조직화된 집단만이 거대한 자본이나 대형 병원에 맞서 근로환경 개선과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으며, 개인의 불만 표출은 해고 위험을 동반하지만 집단행동은 의사 신분을 지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의료체계의 첫 번째 문제로 저부담·저급여·저수가 구조를 꼽았다. 그는 1977년 의료보험제도 출범부터 기술료가 반영되지 않은 체계가 이어졌으며, 낮은 보험료 부담이 재정을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부연했다. 이로 인해 급여 진료만으로는 수익이 맞지 않아 병원은 비급여에 의존하게 됐고, 환자는 중증질환 시 고액 비급여를 감당하지 못해 사보험에 가입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진료비 삭감과 경향심사 강화도 문제로 지적했다. 환자의 상태에 따른 의사의 소신 진료에도 불구하고 진료비가 부당하게 삭감되는 사례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경향심사가 맞춤형 소신진료를 부당청구나 과잉진료로 분류할 위험을 경고했다.
수가계약제는 공단이 인상 한도를 정해 유형별로 배분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공급자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평가했다. 또 현지확인조사는 강압적 방문 확인과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무리한 자료 제출을 요구해, 진료를 방해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의 2020년 '전국의사조사(KPS)'에 따르면 국내 의사의 연평균 근무일수가 288.2일, 실 근무시간이 2,256.9시간으로 한국 노동자 평균보다 348시간, OECD 평균보다 569시간 길다었다. 또 응답자의 61.3%가 주 6일, 14.4%가 주 7일 근무했으며, 하루 6시간 미만 수면자는 17.9%에 달했다.
김 변호사를 이를 토대로 장시간 노동이 생산성 저하, 건강 악화, 삶의 질 하락을 초래하고, 일·가정 양립을 어렵게 만들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저해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한의사협회의 법적·제도적 한계도 짚었다. 2006년 대한전공의노동조합, 2017년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의사노동조합, 2018년 아주대 의대 교수노동조합 등은 모두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에서 출발했다.
김 변호사는 "점차 생존경쟁이 심화되고 의료수가 등 건강보험 정책의 압박으로 병원들이 성과 중심 문화를 지향하게 될 경우, 의사들의 전반적인 근로조건이 악화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환자들의 전반적인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개별 의사가 병원과 교섭권을 강화하려면 노동조합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공의와 봉직의는 법적으로 근로자이므로 노동조합을 설립하거나 가입할 수 있고, 쟁의행위는 노동조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김 변호사는 "대한의사협회는 다른 직종의 법정단체에 비해 권한이 매우 좁고 단체 자치가 보장돼 있지도 않다"며, 봉직의와 임상전임교원이 근로조건 향상과 권익 확보를 위해 단체 결성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그는 "영국의사협회나 독일의 마부르그분트를 롤모델로 해 전문직 노조로서 의사의 임금 등 근로조건과 관련해 정부, 국회를 상대로 활발한 로비활동을 전개하는 등 의사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집단 세력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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