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강보험, 가장 필요한 곳을 위해 가장 기본으로 돌아갈 때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보건의료정책 서재현 본부장

최성훈 기자 (csh@medipana.com)2022-11-24 19:30

'보전할 보(保)'와 '험할 험(險)'이 합쳐진 보험은 험난한 것에서 보호해준다는 뜻이 되며, 영어로는 insurance로 특정한 조건이나 상황 안에서(in) 근심이나 걱정이 없다(sure)가 그 어원으로 확인된다. 

결국 건강과 관련된 근심이나 걱정을 없애주고, 험난한 상황에서 보호해주는 것이 건강보험 본연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너무 뻔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나라의 중증∙희귀질환 치료환경을 살펴보면 이와 같은 뻔한 이야기를 꺼내야만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암, 희귀질환 등 환자 또는 환자가족 250명을 대상으로 2022년 5월 실시한 조사에서, 비싼 치료비로 인해 최선의 치료를 시도하지 못했거나 치료중단을 경험한 환자는 응답대상 가운데 44%였다.
 
또한 이들은 경제적 요인(62.8%)을 육체적 요인(21.6%)이나 정서적 요인(10.8%)보다 가장 힘든 요인으로 꼽았다.

이로 인해 국내 희귀∙중증난치질환 약품비 지출도 총진료비 대비 2.8% 수준에 그치고 있다. 

희귀의약품 지출은 총진료비 대비 0.5%에 불과해 미국 9.7%, 유럽 5% 등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아 국내 희귀질환 환자의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이나 보장성이 상대적으로 여전히 미흡함을 확인할 수 있다.

'약자복지'를 새정부의 국정방향 가운데 중요한 키워드 하나로 꼽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간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정부부처에서 이야기한 약자복지의 의미를 종합해보면, 약자복지는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를 사각지대 없이 찾아내어 더욱 두텁게 지원하는 복지라 이야기할 수 있다. 

중증∙희귀질환의 경우 생명을 위협하거나 삶의 질을 현저히 저해하면서도 적절한 치료제가 없거나 치료제가 있더라도 고가의 신약들이 대부분이라 환자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보건의료 관점에서의 약자복지 대상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건강보험의 재원은 국민 모두의 참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건강보험 지출 우선순위에 대해 국민의 동의를 반영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건강보험 재정이 한정된 자원인 만큼 사회적 요구도를 고려하여 필요한 영역에 보다 효율적이고 면밀하게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2022년 실시한 국민건강보험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증 암이나 희귀난치질환을 치료하는 혁신 신약에 대한 보장성 확대에 국가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89.5%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대한민국 국민들은 중증∙희귀질환 환자와 그 가족이 처한 치료적∙경제적 어려움을 건강보험을 통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중증∙희귀질환 치료를 위해 건강보험 재정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인 '중증∙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도입'의 배경이며, 지난 8월 보건복지부의 새 정부 업무계획 보고에서 핵심 추진과제 가운데 하나로 필수의료와 고가약제 등에 대한 투자 확대가 포함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추진되고 있는 의약품 정책 세부 방안을 들여다보면 국민의 요구와 대통령 공약에 과연 부합하는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례로 최근 심평원에서는 참조국가로 기존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스위스 등 A7국가에 캐나다, 호주를 추가한 외국약가 참조기준 관련 규정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참조기준의 투명성∙명확성을 제고하고 타당성을 보완하겠다는 개정취지와 달리 기존 A7국가 대비 신약 도입률은 현저히 낮다. 

또 우리나라와 비교해서도 제약산업 규모 및 구조가 낙후된 것으로 평가받는 호주를 참조국가로 추가한 것은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실질적인 환자 접근성 향상보다는 보험 약가의 관리 강화에만 초점이 맞춰진 방안이라 여겨질 수밖에 없다.

산업계를 비롯,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명확한 근거 없는 호주 참조국가 추가는 불합리한 규제혁신을 통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을 적극 지원해나갈 것이라는 새정부의 공약과 국정방향에도 역행하는 조치라 할 것이다.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환자 접근성과 국내 제약산업 육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는 의약품 가격 통제 정책은 중증∙희귀질환자의 치료기회를 제한한다. 

또 제약산업의 혁신 역량과 투자의욕 마저 저해하며, 미래 성장동력으로 부상한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을 침체기로 내몰고 중장기적인 재정 확보의 위험요소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간 의약품 건강보험 정책이 새롭게 개발되는 신약의 등재로 인한 재정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지출과 신약 도입을 통한 사회경제적 이득을 함께 고려해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 출시된 신약 관련 연구에 따르면, 신약을 통한 질병의 조기 치료 및 환자와 보호자의 조속한 일상 복귀 등을 통해 신약에 대한 재정지출 대비 약 10.5배의 건강보험 재정 절감효과가 있으며, 궁극적으로 신약을 통해 사망률이 1% 감소할 때마다 약 126조원의 사회경제적 이득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차원에서도 급여 등재 후 모니터링과 재평가 시 약가 사후관리만이 아닌 위와 같은 효과를 확인해 봄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효과적인 지출이 무엇인지를 검증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인구 고령화 등에 따른 사회구조변화 및 이에 따른 노인성∙만성질환 관련 의료비 지출 증가 등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요소들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단편적인 약가 규제 일변도의 정책은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의 건강보험 의약품 정책 토대 위에서 중증∙희귀질환 환자들이 각 질환의 치료에 알맞은 신약을 제 때 사용하지 못해 치료의 적기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험난한 상황에서 국민을 보호해주는 건강보험 본연의 기능이 구현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환자가 선택할 수 없는 질환의 종류에 따라 치료기회의 선택마저 경제적 이유로 제한되는 일이 없도록, 건강상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함으로써 개개인의 위험부담을 줄이는 건강보험 원리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길 기대한다.

|기고|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보건의료정책 서재현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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