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 김재혁 정책이사, 김찬규 대변인, 이강의 대외이사.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중증 응급환자 대응이 한계에 다다른 가운데, 응급의료 체계 전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이상적인 응급의료 체계가 100점이라면, 현 한국은 40~50점에 불과하다." 29일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내 응급의료의 현실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의사회는 응급의학과가 소멸 위기에 놓였으며, 정부가 진정한 개혁을 원한다면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형민 회장은 "의정 갈등 이전엔 60~70점 정도였지만 지금은 응급의료체계가 전반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정부가 해결의지를 갖고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회복에는 10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의사회는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율 하락과 전문의 이탈로 인해 상급종합병원의 중증응급환자 대응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지역의사·공공의사를 통해 응급의료를 유지하려 하지만, 이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형민 회장은 "응급의료정책은 현장 의사들의 자부심과 사명감을 되살리는 방향이어야 한다. 젊은 의사들이 지원하고 싶은 과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의사회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드시 경청하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재혁 정책이사는 "지금처럼 정책 설계에 현장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구조에선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비합리적 조치보다 우선돼야 할 건 실질적 논의체 구성"이라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응급의료의 위기는 훨씬 심각했다. 중증도에 따라 전원이 이뤄지고 적절한 치료가 제공돼야 하는데, 현재 상급종합병원의 환자 수용력이 전공의 이탈로 현저히 떨어져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남아 있는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지속되는 과로와 심리적 소진에 직면해 있다는 평가다.
2차 병원에서 근무 중인 김찬규 대변인은 "의정 갈등 이후 의료 악화와 질 저하를 직접 체감하고 있다"며 "통계로 드러나지 않지만 현장에선 의사와 환자에게 모두 고통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강의 대외이사는 "작년 의료 사태 당시 정부가 언론을 통해 응급실 이용 자제를 권고하면서 환자 수는 줄었지만, 지금은 다시 증가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의료인력은 당시와 동일해 피로도가 점점 누적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재혁 정책이사도 "작년 의료사태 기간 병원 밖을 나간 것이 열 번도 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의 태도는 달라진 게 없다"고 덧붙였다.
의사회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현장을 떠나지 않게 하려면 가장 시급한 과제가 '사법 리스크 완화'라고 밝혔다.
김재혁 정책이사는 "응급의들은 긴 근무시간, 체력적 부담뿐 아니라 언제든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압박 속에서 일하고 있다. 최선을 다한 처치에 대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면서도 "국가가 이를 책임지고 보호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고 회의적으로 말했다.
이형민 회장은 "최선의 치료를 했음에도 분쟁에 휘말리면 전공의나 전문의로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법적 분쟁 부담 완화는 단순한 의사 직역의 이기심이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말했다.
따라서 의사회는 미국의 EMTALA법(Emergency Medical Treatment and Active Labor Act)이 한국에서도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EMTALA법은 병원이 응급환자 치료를 거부할 수 없도록 명시한 법이다. 의료진이 충분한 조치를 취한 경우, 이를 법적 면책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찬규 대변인은 "응급의들은 언제든 불가항력적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속에 일하고 있다"며 "결과가 아닌 과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엠탈라법처럼 의료진이 충분히 노력한 근거가 있다면 면책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선을 다해 처치했다는 진료기록과 의학적 자료를 성실히 제공했다면 사법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는 의료진 보호뿐 아니라 응급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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