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불안이 만든 진료 트렌드‥개원가 '성장클리닉' 확산

'성장' 키워드 전면 내세워 간판·진료과목도 변화‥비급여 확대
성장호르몬 처방 증가…보호자 불안 자극한 상업화 우려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7-02 11:56

개원가를 중심으로 성장클리닉이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성장클리닉에 대한 문의가 이어졌다.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서울 학원가나 신도시 상가를 중심으로 '성장'을 내세운 의원 간판이 부쩍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일반 소아청소년과 의원이지만 간판이나 홈페이지에는 '성장평가', '소아비만', '성조숙증', '키가 작은 아이' 등 '성장'을 전면에 내세운 키워드가 큼직하게 적혀 있다. 일부 의원은 아예 '성장'이라는 단어를 병원 이름에 넣어 개원하기도 한다.

학부모들의 조기개입 선호, 경쟁적인 교육환경, 키에 대한 사회적 가치(heightism) 등이 맞물리며 '성장'은 더이상 단순한 건강 문제가 아닌 관심과 불안의 상징이 됐다.

치열해진 개원가에서는 성장에 대한 불안 심리를 타깃으로 차별화된 진료영역을 내세우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비급여 중심의 수익구조, 장기 진료 유도가 가능한 영역으로 인식되며 '성장'은 새로운 개원 트렌드로 부상했다.

실제로 성장호르몬 주사제의 공급량과 청구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성장호르몬 주사제 실태파악 및 현황 연구'에 따르면, 성장호르몬 주사제의 공급금액은 최근 5년간 2.5배 증가해 2023년 약 4800억원에 달했다. 의원급 비율도 상승세를 보이며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중심으로 처방이 집중되는 경향을 나타냈다.

2023년 성장호르몬을 청구한 환자 수는 약 3만 7000여 명, 청구금액은 약 1400억원으로 최근 10년간 7~8배 이상 증가했다.

다만 성장 결핍이 없는 '정상아동'에게도 성장호르몬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를 낳는다. 해당 보고서의 설문조사 결과, 성장호르몬 주사제를 사용한 보호자의 절반 이상이 '단순 키 성장'을 목적으로 사용했다고 응답했다.

성장호르몬 주사제는 주로 비급여로 사용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실제 국내에서 사용되는 전체 규모는 건강보험 청구자료만으로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이에 성장호르몬제의 사용은 보고된 것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정상 신장 아동에 대해 성장호르몬의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한 비교 임상이나 장기 관찰 연구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성장호르몬은 저신장 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일반적 치료법이지만, 질환이 없는 아동에게 단순한 키 성장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2014년 1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10년간 보고된 성장호르몬 부작용 건수는 총 6309건에 달했다. 이 중 주사부위 통증이 가장 많았으며, 중대한 이상사례도 317건 보고됐다. 사망 2건과 암종 4건은 '가능성 낮음' 또는 '평가 불가'로 분류됐다.

이 같은 흐름은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제22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에서 성장호르몬 오남용에 따른 실태 조사와 대책 마련 필요성을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의원은 "성장호르몬 주사제가 학부모 사이에서 키 크는 주사로 인기를 끌며, 성장 결핍이 없는 아동에게도 처방돼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같은 당 김남희 의원도 "성장호르몬 오남용 실태조사와 허위·과대 광고 점검이 시급하다"며 이를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등과의 협력을 촉구했다.

이러한 트렌드에는 의료진의 자정 작용도 요구된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적절한 진단과 의학적 판단 아래 이뤄질 경우, 키 성장과 자존감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정상 소아를 대상으로 한 치료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은 상업화로 기울 수 있는 의료행위에 대한 사회적 경계가 필요한 지점이다.

따라서 성장호르몬 주사제를 미용 목적이 아닌 질병 치료로 사용하는 사회적 인식 정립과, 정상 아동에 대한 장기적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와 정보 제공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의료기관의 양심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인식 변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부모 대상 온라인 카페 게시판에는 "아기 키가 너무 작아요", "성장클리닉 어디가 잘해요?"와 같은 고민 글이 빈번하게 올라오고 있다. 특정 병원을 추천해달라는 요청과 후기, 상담 경험 공유가 이어지며 키에 대한 불안이 사회적 현상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기관을 제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성장호르몬제가 단순히 키를 키우는 약이 아니라는 점을 보호자들이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며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관련기사보기

백신·비만·수액…개원가, 성인 수요 공략 '3종 세트'

백신·비만·수액…개원가, 성인 수요 공략 '3종 세트'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료현장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특히 개원가는 필수의료 외면, 고정 환자 감소, 수가 현실화 지연 등 복합적인 어려움 속에서 생존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국면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료 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비급여 항목, 그중에서도 '성인 예방접종', '비만 치료', '영양 수액'은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 백신은 계절성 수요에 따라 일정한 수익을 보장하고, GLP-1 유사체 기반의 비만 치료는 신규 환자 유입의 창구가 된다. 영양 수액은 단시간 내 고회전 수익을 올

치료제 발전이 이끈 변화‥개원가, '조기 개입' 최전선으로

치료제 발전이 이끈 변화‥개원가, '조기 개입' 최전선으로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치료제의 눈부신 발전이 개원가의 위상을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개발된 혁신 치료제들은 질병 경과를 획기적으로 바꾸며, 개원가가 본연의 역할인 '일차의료' 영역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환자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효과적인 치료제를 투여함으로써 중증으로의 진행을 막고, 사회 전체 의료비 부담까지 줄일 수 있다는 점은 개원가의 중요성을 다시 조명하게 한다. 여기에 정부가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환자 진료에 집중하고 만성질환 관리는 일차의료 중심으로 이뤄지

"현실 모른 채 검사 제한"‥개원가, 선별집중심사 정조준

"현실 모른 채 검사 제한"‥개원가, 선별집중심사 정조준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선별집중심사 항목에 '검사 다종(15종 이상)'을 포함시키면서 개원가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는 사전 협의 없이 기습적으로 발표된 기준이라는 점과 함께, 진료의 자율성과 국민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조치라고 비판하고 있다. 대원개원의협의회는 23일 제35차 춘계연수교육 학술세미나 기자간담회에서 '단순히 검사 항목 수를 기준으로 진료를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진료권 침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대개협 강창원 보험이사는 "의사는 환자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 의학적 판단과 지식에

개원가, 비만 치료 홍보 경쟁 과열‥진료과 불문하고 환자 유치

개원가, 비만 치료 홍보 경쟁 과열‥진료과 불문하고 환자 유치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최근 개원가에서 비만 치료를 내세운 홍보가 급증하고 있다. 과거에는 내과나 가정의학과 등 일부 진료과에서 비만 치료를 집중적으로 다뤘지만, 최근에는 피부과, 성형외과뿐만 아니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등에서도 적극적으로 비만 치료를 홍보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비급여 시장 확대가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개원가 관계자는 "비만 치료 관련 주사제나 시술이 환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으면서, 기존에는 다루지 않던 진료과에서도 관련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특히 GL

[국감] 성장호르몬 부작용 심각…홍보·실태조사 필요

[국감] 성장호르몬 부작용 심각…홍보·실태조사 필요

[메디파나뉴스 = 문근영 기자] 제22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성장호르몬' 오남용에 따른 부작용 홍보, 오남용 실태 조사 및 대책이 필요하다고 10일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에서 강조했다.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성장호르몬 부작용이 늘고 있다며, 식약처가 의약품 안전 사용법 홍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감장에서 전 의원은 "성장호르몬 주사제가 요즘 학부모 사이에서 키가 크는 주사로 굉장히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 "커뮤니티 카페를 보면, 소위 성장기 아동 3대 비급여 중 하나로 성장호르몬 주사가 꼽힌다"

이런 기사
어때요?

실시간
빠른뉴스

당신이
읽은분야
주요기사

독자의견

작성자 비밀번호

0/200

메디파나 클릭 기사

독자들이 남긴 뉴스 댓글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