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1974년에 약대에 입학하여 의약품에 대해 공부하고 가르치며 살아온 지 어느덧 50년이 흘렀다. 평생 약을 좇아 살아오는 동안 강산이 여러 번 바뀌었고, 디지털 헬스케어 치료법이 등장하였으며, 세포치료와 재조합유전자 기술을 이용한 생물학적제제, 면역관문 억제기전을 활용한 암 치료제 등 새로운 약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러한 끊임없는 약의 변화는 건강수명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약 개발 역사를 보면, 1953년 6·25 전쟁의 휴전협정이 체결된 그해 11월에 약사법이 공포되어 약사제도와 의약품 제조공정의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 시기 도입된 미국의 원조자금 2~3억달러가 제약산업에도 영향을 주었다.
필자는 유년기를 농촌에서 보냈는데, 땡볕 아래서 일하시던 할아버지께서 소주를 드신 후 밤에 중조(NaHCO₃)를 복용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필자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40대까지는 체력이 약하고 환절기마다 감기에 잘 걸렸다. 당시에는 의약분업 이전이었기 때문에 약국에서 처방과 조제를 함께하던 시절이었다.
약사는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피하라고 권했고, 콧물감기에는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면 알레르기 증상이 완화되어 무난히 회복할 수 있었다. 미국 유학 시절에도 감기 바이러스에 자주 감염되었지만, 아내가 정성껏 끓여준 고깃국과 식사량을 늘리면 면역력이 향상되어 감기에서 빠르게 회복되었던 기억이 있다.
2019년에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온 국민이 백신을 접종받았고, 필자도 최근 대상포진과 독감백신을 접종받아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이제 일흔이 되었지만 특별한 질병이 없어 "어떻게 이렇게 건강한가?"하고 묻는 이들도 있다.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따르면,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옛말에 사십이면 불혹(不惑), 일흔이면 고희(古稀)라는 말이 있는데 의미가 있는 말이다. 요즘 일흔살의 인지 능력은 25년 전의 53세와 같다고 하니,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선진국의 근로 연령인구 비율은 현재 63%에서 2075년에는 57%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근로 수명이 5년 늘어나면 이에 따른 노동력 부족도 상쇄될 수 있다. 경제활동 기간 또한 34년에서 38년으로 늘어났다고 하니 이로 인해 60대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현역으로 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고 본다.
어쩌다 이렇게 건강해질 수 있었을까? 약 덕분이지 않을까? 제약산업은 1970년대에 30% 이상의 비약적인 성장률을 보이며 '한강의 기적'에 한 몫을 담당했다. 진단기기 등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질병의 예방과 치료 능력도 크게 향상되었다. 컴퓨터, 모바일폰을 활용하고 디지털시대를 맞이해서 일반적인 대중매체를 통해 건강 정보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밀레니얼(M) 세대는 이전의 386세대나 X세대보다 수평적 소통시대를 맞이해 자기주장이 더 강하며, 디지털 네이티브(Z) 세대는 유년기부터 고속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디지털헬스 정보가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20년 전만 해도 일흔이 되면 질병으로 고생할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쩌다 건강하게 됐을까?
앞으로 AI(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디지털 헬스케어 활용도를 높이고, 맞춤형 복약지도 서비스가 가능하며, 전문약사 제도의 시행을 원활하게 할 것이다. 제조공정은 밸리데이션이 포함된 cGMP, 품질고도화(Quality by design), 난치성 및 희귀질환에 대한 맞춤형 약 개발 등으로 더욱 정교해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건강수명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건강의 달인(達人, 마스터)이 되는 시대가 오면 아마 서로 기절초풍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Who knows?
|기고| 손의동 한국의약평론가회 부회장
- 현) 중앙대학교 대학원동문회장
- 현) 대한약학회 자문단장
- 전) 대한약학회장
- 전) 대한약리학회장
- 전)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학장
- 전)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ROTC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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