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대생 전원 복귀가 공식화되면서 의료계의 시선은 '그다음'을 향하고 있다. 특히 정원 확대 이후 뚜렷해진 의학교육과 전공의 수련환경의 구조적 한계는 단순 복귀만으로 의료 정상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키우고 있다.
13일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열린 '제1회 전국의사 의료정책 심포지엄'에서는 의학교육과 수련제도의 근본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교육과 수련, 목적도 체계도 다른데 같이 무너져
미래의료포럼 조병욱 정책위원장은 의대 정원 확대가 수면 아래 있던 교육 문제까지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의학교육과 전공의 수련은 모두 '의사를 양성하는 과정'으로 묶이지만, 실상은 성격도 목적도 전혀 다르다는 지적이다.
조 위원장은 "의학교육은 의사 인력을 양적으로 양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전공의 수련은 각 분야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질적 강화 과정"이라며 "같은 교육으로 보이지만 지향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소규모 의대 신설 당시에도 교육 인프라 부족 문제가 제기됐지만, 이후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전공의 수련 문제 역시 수십 년 동안 개선되지 않은 채 대한전공의협의회 중심으로 반복 제기돼왔다는 설명이다.
현재 교육 과정은 여전히 암기식 이론 위주이며 임상 실습은 관찰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환자 권리 의식이 높아지며 진료 참여 기회는 더욱 줄었고, 비판적 사고나 윤리 교육은 체계적으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교육 인프라 불균형도 심각한 문제다. 기초의학교수 수급은 수십 년째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실험실습 장비, 해부 실습 여건, 임상 실습 병원 등의 질 차이도 여전히 크다. 서울과 지방 간 격차는 정원 확대 이후 더욱 뚜렷해졌다.
조 위원장은 "강의와 실습을 담당할 인력, 임상 병상, 교수 수 모두 부족하다. 지방 의대는 기초 수업 자체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전공의 수련은 이보다 더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지도전문의 제도는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교수들은 진료 중심 일정으로 교육에 충분한 시간을 배정하기 어렵다. 그 결과, 수술 기회는 PA에게 돌아가고 전공의는 충분한 임상 경험 없이 수련을 마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조 위원장은 "2020년 기준 전공의 평균 월급은 398만원으로, 주당 77시간 기준 시급은 1만1400원 수준이다. 현재 최저임금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도제식 교육 방식의 한계, 과중한 업무, 직장 내 괴롭힘, 매뉴얼 부재, 불합리한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짚으며 제도 전반의 전면 개편 없이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조 위원장은 "의학교육은 하드웨어, 전공의 수련은 소프트웨어"라며 "교육은 공간과 인력 확충이, 수련은 근무 구조와 제도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육과 수련을 각각 담당하는 교육부와 복지부의 분절된 관리체계를 꼽으며 "각 부처와 기관이 엇박자를 내는 사이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체계적인 관리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조 위원장은 "복지부 장관이나 대전협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도 흐지부지됐다. 이제는 독립적이고 통합된 관리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귀보다 먼저, 교육 수용력을 확보해야 도제식 수련은 한계…모듈 기반으로 바꿔야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정재현 부회장은 복귀 논의보다 앞서, 수용 가능한 교육 인프라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올해 의대 신입생은 4567명으로 2023년 대비 1.5배가량 늘었지만, 이를 감당할 교수 인력은 거의 늘지 않았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기초교원은 평균 0.61명 수준에 불과하고, 일부 대학은 0.25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국 40개 의대의 기초의학교실 교수 1638명 중 의사 출신은 880명, 기초전공자는 758명에 불과하며, 이 중 15%는 향후 5년 내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지방 의대는 기초교원 확보조차 어렵다"며 "이대로라면 양질의 의사 양성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경고했다.
그는 기초의학 교수 확충을 위해 인건비 보전, 연구비 지원, 병역특례 및 해외연수 확대 등 실질적 유인책을 제시했다. 동시에 임상의가 기초의학 교수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제도적 경로 마련을 언급했다.
의대생 복귀 과정에서 발생할 트리플링·더블링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도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단기적으로는 국가고시 응시 기회를 재부여하고, 보충 수업과 집중 임상실습을 통해 복학 전공의의 교육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제언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임상실습 시수 조정과 야간·방학 시간대 수업 운영, 전국 공통 술기 교육과정 도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 부회장은 "지금 당장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지만, 수용력 확보 없이 복귀부터 추진하면 더 큰 붕괴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수련 중단 장기화로 인해 발생한 전공의 공백에 대해 맞춤형 복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군 복무 여부, 연차별 수련 이수 정도, 중단 시점에 따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복귀 정책은 현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부회장은 "군 복무 여부, 연차별 이수 정도, 수련 중 임상 지속 여부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 복무자는 전역 후 즉시 수련을 재개할 수 있도록 제도 연계가 필요하고, 인턴 1년차는 별도 TO를 배정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한 중도 수련자는 기존 경력을 인정해 잔여 과정만 이수하게 하고, 수련 직전 중단자는 단기 집중 코스를 통해 전문의 시험 응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 부회장은 전공의들이 공정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상황에 맞는 지원을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모듈형 수련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수련을 연속된 연차 기준이 아닌, 특정 역량 단위의 모듈로 구성해 전공의가 유연하게 이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네덜란드와 독일 등 유럽 국가는 이미 전공의 모듈 시스템을 시행하고 있고 캐나다와 미국도 도입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정 부회장은 "내과 전공의의 경우 중환자실 3개월, 심장 로테이션 6개월, 외래 진료 3개월, 야간당직 50회 등 세분화된 모듈을 기준으로 수련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수련 속도와 방식은 전공의의 선택과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련을 시간 중심이 아니라 능력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며 "전문의 자격은 연차가 아니라 실제로 확보한 역량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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