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불가항력 의료사고’를 두고 의료계, 환자단체, 법조계가 서로 다른 인식차를 보이고 있다. 환자단체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의료계가 요구하는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리스크 완화 요구가 맞지 않다고 지적한 반면, 의료계는 법적 책임뿐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받는 심리적 부담과 두려움 등이 필수의료 기피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봤다.
17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위원-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연),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간담회'에서 환연 안기종 대표가 모두 발언을 통해 "전공의들의 요구사항 중 하나인 '불가항력의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는 환자단체뿐만 아니라 법률전문가조차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불가항력 의료사고 발생시 의사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손해배상도 하지 않는데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법적 부담 완화를 정부와 국회에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환연과 유사한 시각을 나타냈다.
박호균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대표변호사는 이날 메디파나뉴스와의 통화에서 "의료계와 환자단체, 법조계가 ‘불가항력 사건’에 대한 입장차가 현저히 다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해 책임을 묻는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없다. 잘못이 있었을 때 책임을 묻는 것"이라며 "의료계에서는 최선의 진료를 했는데 책임을 지게 하면 필수진료과 의사들이 다 떠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는 최선의 진료를 못한 사례들도 최선의 진료를 다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왜 책임을 묻느냐는 이런 말이 생략된 것 같다"고 언급했다.
박 변호사는 의료계가 법원에서 책임이 인정된 사례들도 법원이 잘못했다고 주장을 하는 것을 문제로 봤다. 그러면서 "법원에서 책임이 인정된 것은 사법체계의 문제다. 그리고 사법부에서 형사든 민사든 인정이 됐으면 그것은 판결을 승복하느냐의 문제다"라고 짚었다.
아울러 "지난 정부에서 형사정책연구원에서 용역을 맡겨 진행한 ‘의료사고 사법리스크 현황 분석 및 함의’라는 연구에 참여해 판결문을 보면서 전수 조사를 했다. 이미 결과는 나왔지만 외부에 공개는 안 된 상태"라며 "이 연구는 형사사건 전체에 대한 최근 5년분에 대한 조사를 담고 있았고 성형외과, 정형외과가 형사처벌사례 1, 2위로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료계에서 말하고 있는 필수의료인 소아과, 산부인과는 형사처벌 사례가 거의 없었다. 다만 민사사건의 경우에는 책임이 인정된 사례들이 있었다"고 했다.
의료계는 이 같은 환자단체와 법조계 일각의 목소리와는 다른 시각을 나타냈다. 형사 및 민사 판정 결과도 영향을 미치지만 이에 더해 조사·고소 과정에서 느끼는 심리적 압박이 전공의들의 근무 의욕과 전문의 수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견이다.
오주환 '더 나은 의료시스템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의료소비자-공급자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 전략기획위원장은 "의료사고 발생시 의사는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에 소환되는 시점부터 심리적인 압박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어 "왜냐하면 사람을 살리려고 했는데 의료사고가 발생됐고 이로 인해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경찰에 불려가서 파렴치범이나 살인범, 강도범과 동일한 방식의 수사에 임하게 되는 것"이라며 "여기서 오는 심리적인 박탈감은 견디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예를 들면,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중 절반이 수련 중 고소를 당한다. 이런 와중에 수련을 할 수 있을까. 이들은 형사 및 민사 결과도 그렇지만 조사와 재판이라는 과정 자체의 스트레스와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계의 다른 관계자도 환자단체와 ‘불가항력 의료사고’를 보는 시각차에 대해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불가항력 사고임에도 배상한 사례는 정말 많다. 그런데 안기종 대표가 불가항력 의료사고는 형사처벌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의료진이 말하는 불가항력 의료사고와 환자단체 및 법률가가 말하는 불가항력 의료사고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의료인이 말하는 불가항력적 사고는 ‘적절한 치료과정을 겪었음에도 발생한 사고’를 말한다. 이는 과정 중심이고 환자단체와 법률가가 말하는 불가항력적 사고는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시 후향적으로 의료진의 잘못을 지적할 만한 게 있었는가’에 전부 ‘NO’가 나와야 불가항력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인 것"으로 진단했다.
아울러 "환자단체가 말하는 불가항력의 허들은 상당히 높다. 악화돼서 사망하면 ‘악화가능성을 말했어야 한다고 하고, 퇴원했다가 사망하면 ’퇴원시키지 말았어야 한다‘고 한다. 환자가 자의로 퇴원하면 ’충분히 설득했어야 한다‘ 등 처치의 불가항력이 아니라, 의료진의 재량권까지 다 포함하는 범위로 불가항력이어야만 인정해주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러한 시각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대화테이블에서 앉아 소통과 이해의 폭을 넓혀 가는 공론화가 필요할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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