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연구, '한국형 촉진 모델'로 전환…의학회, 구조 개편 착수

"임상 실패율 높은 구조"‥대한의학회, 중개연구 전환 시도
질환계 워킹그룹 중심 자문 체계…기술 편향·이해상충 차단
사용 목적 명확화, 협업 유도 구조로 PDCA 체계 설계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7-21 11:59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기초연구의 성과가 환자 치료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상은 한국 의료 연구 생태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왔다.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지만 임상에 적용되지 못한 채 논문이나 개발 단계에서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환자의 상태나 진료 환경 등 '현장의 맥락'은 연구 설계에서 배제되기 쉽고, 기술 중심의 접근이 반복되면서 의료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사용 가능한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다. 기초연구 성과를 임상으로 연결하기 위한 구조적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중개연구 전담 기구와 플랫폼이 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2000년대 초 질병 중심의 중개연구 및 기술 개발 사업을 통해 관련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실제 임상에 안착한 사례는 드물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에 대한의학회는 보건산업진흥원과 협력해 '임상현장 수요연계형 중개연구 사업'(2024~2028)을 추진하며, 중개연구의 구조 자체를 새롭게 설계했다. '한국형 중개연구 촉진 모델'을 제안하고, 이를 전담할 '중개연구센터'를 지난 7월 3일 공식 개소했다. 현재는 6개 질환계 워킹그룹, 30개 연구팀이 해당 모델을 기반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대한의학회 이유경 정책이사는 대한의학회 E-NEWSLETTER 기고를 통해 미국의 엄청난 자금력과 인력을 투입하는 NCATS 시스템을 검토한 후, '한국형' 모델의 필요성을 인식했다고 밝혔다.

그는 "엄청난 규모의 예산과 의사 인력을 확보하면서, 연구관리와 직접 참여 기능을 갖는 NCATS와 비교 가능한 기관이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연구관리 기관으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연구관리에 역사와 경험을 축적했으나 의학 연구의 전문성이 부족하다. 반면 대한의학회는 의학과 연구 측면에서 유능하지만, 연구관리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정책이사는 모든 시도가 중개연구팀의 성공을 위한 촉진자(facilitator) 혹은 촉매자(catalyst) 역할을 강하게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한국형 중개연구 촉진 모델'을 강조했다.

모델의 핵심은 '질환계 워킹그룹'이다. 내과, 외과, 진단 등 다양한 임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각 과제에 공식 추천돼 참여하며, 연구책임자 및 연구원으로는 동시에 활동할 수 없다. 이는 이해상충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구조다.

이 정책이사는 "질환계 워킹그룹과 연구팀은 연간 2회 이상의 이러한 토론 기회를 3년간 반복하며, 연구의 마일스톤이 진행됨에 따라 논의의 내용도 점차 현장 적용, 즉 개념검증에서 출발해 시작품/시제품, 비임상 및 임상시험 등 과제의 마일스톤 진행에 따라 성숙해 갈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자문회의의 형태를 띤 워킹그룹에 의한 주기적이고 반복적 개입은 연구의 진행이 연구팀의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과 경험적 판단(heuristics)으로 인한 편향을 견제하고, 임상 맥락을 무시한 기술 중심의 연구개발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아주 중요한 장치"라고 덧붙였다.

의학회는 연구 주제를 설정하는 방식 자체를 바꿨다. 기존 수요조사 결과들이 특정 기술 보유자의 '연구 수요'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었다면, 이번 모델은 환자 상태와 임상 현장에서의 필요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 정책이사는 "수요 조사를 모두 모은 후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연구 수요'의 의도를 강하게 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며 "의료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A 특성을 갖는 환자를 빨리 진단해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 모델에서는 수요 표현을 특정 기술이 아닌 대상군(P), 개입방법(I), 기대결과(O)에 따라 기술하도록 했다. 중개연구 공모에도 '대상군과 필요한 모달리티만을 포함'하며, 선정 논의에는 반드시 질환계 워킹그룹이 참여한다.

중개연구의 또 다른 핵심은 기술의 사용 맥락, 즉 'intended use'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 정책이사는 "중개연구는 미충족 수요를 의료 현장의 적용모델인 '사용 목적'으로 번역 또는 전환(translation)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용 목적'은 특정 기술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왜, 어떻게 사용될지를 명확히 기술하는 문서다.

이 정책이사는 "설정된 사용 목적은 연구 종료 시까지 반복되는 PDCA(Plan–Do–Check–Act) 사이클 속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업데이트·관리돼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의학회는 '사용 목적' 설계 양식을 공식학술지(JKMS)를 통해 공개했으며, 연구팀과 질환계 워킹그룹은 이를 기반으로 연구의 적용 모델을 반복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회의나 자문은 모두 이 사용 목적을 중심으로, 다학제 전문가들과 함께 수행하는 사고실험 형식으로 진행된다.

아울러 중개연구팀은 임상 전문가팀과 제품화팀 등 최소 2개 이상의 공동연구팀으로 구성되며, 팀 간 협업 수준을 정기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체계도 갖췄다.

이를 위해 의학회는 질환계 협의체 컨퍼런스와 개별 기술자문회의라는 두 가지 형태의 자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질환계 협의체 컨퍼런스는 동일 질환계의 5개 과제팀과 워킹그룹이 함께 모여 진행하는 연구발표와 자문의 자리이며, 기술자문회의는 개별 연구팀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발표 및 자문 프로그램이다.

나아가 이 정책이사는 이 프로그램의 본질이 단순한 감독이 아니라, 연구 성과를 현실로 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개입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정책이사는 "이 모델이 추구하는 것은 연구팀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외부에서 방향을 조율해주는 '촉진자' 또는 '촉매자'로서의 참여적 관리 시스템의 구현이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한국형 중개연구 촉진 모델'은 국내 중개연구의 성공률을 높이고자 하는 대한의학회의 의지를 담고 있다. 향후에도 연구팀과의 상호작용, 만족도 평가 등을 바탕으로 모델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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