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들의 현실은 소진과 좌절…"의료붕괴, 누가 책임지나"

교수들 병원 떠나고, 남은 이들은 무기력한 일상 버텨
지방은 암 치료 인력조차 부족…전국적 중증진료 공백
장기기증·교육·수련 붕괴…"희망 말할 리더조차 없다"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8-06 11:59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후배와 제자를 양성하는 교수로서의 가장 큰 기쁨조차 포기하게 됐다. 남은 교수들은 어느새부터인지 의료 문제에 대해서는 무기력한 자세로  하루하루 본인이 해야 하는 일상을 버티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다."

고려대학교의료원 의대교수 박평재 비상대책위원장(고려대구로병원 이식혈관외과)은 최근 의료정책연구원 '의료정책포럼' 기고를 통해, 의대 교수들이 처한 현실과 현장 붕괴의 실상을 고발했다.

그는 "정치인에 대해서도, 의료계 리더에 대해서도 어떠한 희망도 없이 절망감에 그냥 각자도생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고려대구로병원 이식혈관외과 박평재 교수. 사진= 병원 홈피
박 교수에 따르면 지난 3월 부산대 40대 안과 교수, 4월 분당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8월 분당서울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가 작고했고,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유인술 교수는 진료 중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치료를 받은 사례도 있었다. 박 교수는 많은 현직 교수들이 건강상의 문제를 호소하거나 조용히 병원을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5월, 간이식 학회 참석 중 안동에서 발생한 뇌사자 간을 적출하고 본원으로 돌아가 직접 이식 수술까지 집도한 경험도 털어놨다. 간이식이 가능한 의료진들이 국제학회 참석 등으로 부재한 상황이었고, 고려대구로병원 외에는 적출과 이식이 가능한 병원이 사실상 없었다.

박 교수는 "간 적출 중 원래 수혜자로 지정된 환자는 급작스러운 상태 악화로 이식이 어려워졌고, 급히 다른 병원에 수혜자를 수소문했지만 의료진이 부족해 결국 본원 환자가 이식을 받게 됐다"며 "그때 나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면 이식은 무산됐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뇌사 장기기증 감소도 의료 공백의 한 단면이다. 지난해 뇌사 장기기증자는 397명으로 전년 대비 18% 감소했으며, 올해 6월 30일 기준으로는 168명에 그쳐 올해도 기증자 수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는 "기증을 고민하는 동안 환자 상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하는데, 의료 공백 상황에서는 그 유지조차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지방 대학병원은 전공의 부족 속에 진료공백이 일상화되고 있다. 당직 교수도 부족해,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특정 교수가 외래·수술·응급실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박 교수는 "같은 과일지라도 전공이 다르면 업무를 대신할 수 없다"며 "산부인과에서 산과 일을 부인과가, 이비인후과에서 두경부외과 일을 비과 교수가 맡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외과 전공의는 전국적으로 편중돼 있다. 올해 6월 1일 기준, 서울·수도권에는 51명, 부울경에는 5명이 있지만 전라도·강원도·충청도에는 단 한 명도 없다. 지방 병원들은 PA(임상지원간호사)로 일부 업무를 보조받고 있지만, 근본적 해법은 되지 못하고 있다.

박 교수는 "교수들로 이뤄진 당직 체계는 업무량의 과도한 부담을 야기하고, 급기야 당직을 설 수 없는 날도 당연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의 종양내과 인력난도 심각하다. 부산대병원의 경우 위암, 대장암, 간담췌암의 항암 치료를 전공하는 의료진이 아예 부재하며, 전남대·조선대·경북대·계명대·영남대병원 모두 2~3명 수준의 종양내과 교수만 남아 있다.

박 교수는 "고형암의 종류가 나눠져 있어 서로의 업무를 도와서 하기 어렵고, 당직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며 "결국 지방에서 항암 치료 일정을 정상적으로 소화하기 어 려운 상황들이 발생하고, 이는 다시 서울로 환자가 몰리며 지역 의료는 점점 황폐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교수들의 의욕이 떨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정규직과 계약직 간의 처우 격차다. 국립대병원 10곳의 최근 5년간 자료에 의하면 계약직 의사는 44.9% 급증했지만, 정규직은 3.7% 증가에 그쳤고, 계약직 교수의 평균 연봉은 정규직의 2배에 가깝다.

박 교수는 "당직, 외래, 입원 환자, 응급실 진료에 학회 활동까지 떠안고 있는 정규직 교수들의 처우가 계약직 교수보다 오히려 나빠 정규직 교수들의 의욕은 바닥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무너지는 의료현장을 마주한 교수들의 무력감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박 교수는 "지금의 의료 붕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누가 이 상황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의대 교수들과 전공의, 학생들에게 다시 희망을 줄 수 있겠는가. 어느 누구도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 자체가 가장 큰 좌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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