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진, 높은 사법리스크‥"필수의료 존중 제도 시급"

연 735명 입건·20명 유죄‥송치 자체가 의료진에 과중한 압박
민사 승소율 절반 넘어, 분쟁만 매년 3000건‥소극·과잉 진료 불가피
일본·미국·뉴질랜드 사례와 대비‥필수의료부터 무과실 보상제 도입 시급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9-08 15:46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서종희 교수.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료행위의 악결과에 대한 과도한 사법적 처벌은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 핵심 진료과목 붕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선의의 진료가 곧바로 형사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이 정상적인 진료를 위축시키고, 고위험 진료과 자체를 기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과도한 사법 리스크를 완화해 의료진이 안심하고 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국민 건강을 지키는 의료시스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실제 유죄 판결은 많지 않다는 이유로 의료계의 문제 제기를 과잉 반응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런 가운데 8일 열린 '의료분쟁 관련 법·제도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공청회'에서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서종희 교수는 '의료사고 민·형사 소송 전반에 대한 비교법적 고찰'을 통해 우리나라 의료진이 해외와 비교해 과도하게 높은 사법 리스크에 노출돼 있음을 다시 확인했다.

형사소송과 관련해 대법원은 인과관계 입증 완화 법리를 도입하지 않고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엄격한 증명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민사 책임은 인정되더라도 형사 책임은 부정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최근 5년간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입건된 의사는 연평균 735명, 기소는 연 40명, 실제 유죄 판결은 20명 수준에 그쳤다.

서 교수는 "입건 수에 비해 재판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매년 수백 명의 의사가 송치 단계부터 형사소송의 부담을 겪고 있다. 이는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한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5년간 형사판결 무죄율이 38%라는 사실은 인과관계 입증을 엄격히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송치와 입건만으로도 의료진이 입는 정신적 피해는 기정사실"이라고 말했다.

민사소송에서는 정반대 경향이 나타났다. 법원이 인과관계 입증을 완화해 환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선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20년 이후 매년 700~900건의 의료과오 민사소송 1심 판결이 선고됐고, 이 가운데 약 50%가 환자의 청구를 인용했다.

서 교수는 "의료진을 상대로 매년 수백 건의 민사소송이 제기되고, 환자의 승소율도 절반을 넘는다. 이는 결국 필수과 기피와 함께 과잉 진료·소극 진료를 초래해 국민 의료서비스 향상에 악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는 매년 2000건 안팎의 조정 신청이 접수된다. 최근 5년간 개시된 7459건 중 4980건(66.7%)이 원만히 해결됐고, 평균 처리 기간은 90일로 소송보다 훨씬 신속했다.

서 교수는 "민사소송 건수와 조정중재원 처리 건수를 합하면 의료진은 매년 3000건 가까운 민사 분쟁에 휘말린다. 이러한 부담은 소극 진료와 필수과 기피를 더욱 심화시킨다"고 말했다.

해외와의 대비는 뚜렷하다. 일본은 1990년대 후반부터 환자 사망 사건을 계기로 경찰과 검찰의 형사 개입이 강화됐고, 2004년 후쿠시마 오오노병원 산모 사망 사건에서는 담당 의사가 수술 1년 뒤 체포돼 한 달 이상 구속되면서 논란이 정점에 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무분별한 형사 개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졌고, 이후 2009년 산과의료보상제도, 2015년 의료사고조사제도가 도입됐다.

그 결과 일본의 의료사고 소송 건수는 2004년 1110건에서 2023년 610건으로 줄었고, 기소율도 같은 기간 52%에서 12%로 하락했다. 판례 경향도 '고도의 개연성'이 아닌 '상당 가능성'만으로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변화했고, 배상액은 위자료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은 소송보다 화해 종결 비율이 높고, ADR 같은 재판 외 분쟁 해결 절차도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미국은 의료과오에 대한 형사책임 추궁이 극히 제한적이다. 단순 과실은 대상이 아니며 '고의에 가까운 중대한 과실'에서만 형사 책임을 묻는다. 의료과오 관련 연방대법원 판례도 없다.

뉴질랜드는 세계 유일의 무과실 손해배상 제도인 ACC를 운영해 환자 피해를 국가가 직접 보상한다. 의사의 과실 유무와 상관없이 공사 기금에서 보상금이 지급돼 환자는 소송 절차 없이 신속하게 구제받는다.

서 교수는 해결책으로 민사 중심의 분쟁 해결과 무과실 보상제 도입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민사 중심의 분쟁 해결 모델을 강화하고, 형사 처벌은 고의나 중대한 과실에 한정해야 한다. 뉴질랜드 ACC 제도와 유사한 무과실 보상체계를 특히 산부인과, 응급의료 등 필수 의료 분야부터 우선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판례가 과실 책임의 체계를 벗어나 의사의 민사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며 "경과실에 대해서는 형사 책임을 면제하고, 민사 보상으로 환자 피해를 신속히 구체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서 교수는 국가와 지자체의 역할을 언급했다.

그는 "국가나 지자체가 특별기금을 조성해 일부 또는 전부를 환자에게 보상해야 한다. 무엇보다 필수의료의 고위험성을 존중하고 이를 법적 판단에도 반영해야 한다. 예외 법리가 반복되면 원칙이 무너지고, 필수의료 붕괴와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보기

사법리스크에 떠나는 젊은 의사들‥'필수의료' 위기 심화

사법리스크에 떠나는 젊은 의사들‥'필수의료' 위기 심화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자칫하면 의사 생명이 끝난다." 필수의료 전공의들이 복귀를 주저하며 가장 먼저 꺼낸 말이다. 응급실, 분만실, 중환자실처럼 고위험 현장에 투입되지만,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홀로 짊어져야 한다는 구조적 불안 때문이다. 열악한 근무 환경보다 더 큰 벽은 '사법리스크'였다.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했던 한 전공의는 "후배들이 소청과 수련을 이어 가지 못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사법 리스크 때문이었다. 소송이 한 번 걸리면 형사처벌은 물론 막대한 비용 부담까지 뒤따른다. 이런 점들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환연 "의협 '사법리스크' 통계, 정부 연구로 실제와 괴리 확인"

환연 "의협 '사법리스크' 통계, 정부 연구로 실제와 괴리 확인"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료계와 환자단체가 다시 충돌하고 있다. 의료계가 고위험 필수의료 기피 원인으로 주장해 온 '과도한 사법 리스크'가 정부 연구 결과와 다르게 드러나면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8일 성명을 내고 "정부와 국회는 형사처벌 특례 논의가 아니라,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의 울분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전공의와 의사가 응급·중증외상·분만·중증소아 진료를 꺼리는 주된 이유로 검찰의 높은 기소율과 법원의 중형 선고를 들어왔다. 이에

필수의료 활성화 위해선…사법리스크 완화 VS 의료계 특혜

필수의료 활성화 위해선…사법리스크 완화 VS 의료계 특혜

[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사법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는 법적인 예외사항을 마련하고 보상강화, 국가책임보험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반면, 필수과 기피현상이 과도한 형사처벌로 인한 것인지 정확한 통계 없이는 동의할 수 없으며 의사에 대해서만 형사책임에 예외를 두는 것은 특혜라는 시각도 나온다. '의료분쟁조정'을 주제로 19일 서울대의대 양윤선홀에서 진행한 '의료개혁, 현장이 말하다' 연속토론회에서 이같은 의견이 도출됐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허대석 명예교수(서울의대)는 "필수의료 영역일수록 의

이런 기사
어때요?

실시간
빠른뉴스

당신이
읽은분야
주요기사

독자의견

작성자 비밀번호

0/200

메디파나 클릭 기사

독자들이 남긴 뉴스 댓글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