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뇌성마비 판결, 의료계 반발‥환연 "가해자·피해자 뒤바뀌어"

의료계 "불가항력 사고 형사처벌은 분만 인프라 붕괴 초래"
환자단체 "형사고소 줄일 환경 조성 못한 정부·국회 책임"
신생아 부모도 동료 의사 형사고소…"피해자 울분, 의사라고 예외 아냐"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9-17 11:20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안상호 대표,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대학병원 분만 의료사고 판결을 두고 의료계가 "과도한 형사처벌과 고액 배상"이라며 연이어 성명을 내고 있다. 이 가운데 환자단체는 오히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해당 신생아의 어머니는 의사였고, 동료 의사들을 상대로 민사소송과 형사고소까지 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우리나라 의료사고 피해자가 겪는 울분에 있어 의사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신생아 부모가 형사 고소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나라 의료사고 피해자의 형사고소를 절대 줄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의료사고 피해자의 현실을 짚었다.

환연에 따르면 의료사고 피해자는 의료적 전문성과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고, 소송 과정에서는 고액의 비용과 긴 시간이 소요된다. 

환연 안기종 대표는 "피해자도 의사가 신이 아니기에 실수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이해한다. 그러므로 충분한 설명과 애도의 표시, 환자안전사고 보고, 신속하고 적정한 배상이 뒤따른다면 피해자는 실수한 의사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환연은 정부가 피해자의 울분과 트라우마 치유에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국내 피해자는 외국과 달리 형사고소를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 같은 문제는 최근 신생아 뇌성마비 의료사고 판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5월 11일 선고한 1심 판결에서 2018년 대학병원 분만 과정에서 산부인과 3년 차 전공의와 교수의 과실로 신생아에게 뇌성마비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피해자의 치료비와 보조기구 구입비, 개호비, 일실수입, 위자료 등을 고려해 부모가 청구한 약 24억 4천만원 중 과실 비율을 30%만 인정, 약 6억 5천만원 배상을 판결했다. 판결문은 "의사의 과실이 현저히 중대한 것은 아니지만,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 의료사고"라며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신생아 부모는 분만 의료사고에 과실이 있다고 보고 민사소송과 함께 형사고소를 제기했다. 경찰은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으나, 검찰은 민사재판에서 과실을 일부 인정한 점을 근거로 전공의와 교수를 불구속 기소해 형사재판에 넘겼다.

사건의 피해자인 신생아의 어머니는 당시 같은 대학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전임의였다.

안 대표는 "신생아 어머니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형사고소와 고액 배상 판결에 반대했을 개연성이 큰 전공의 신분이었으며, 산부인과처럼 사고가 빈번한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이었기에 누구보다 상황을 이해하고 용서할 가능성이 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생아 어머니는 동료 의사를 상대로 민사와 형사 모두 법적 절차를 밟았다.

안 대표는 "해당 대학병원과 의사들이 과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선택할 방법은 형사고소와 민사소송뿐이었다"며 "법원이 기본적인 태아심장박동수 관찰 소홀을 경미한 과실로 판단한 것이 적절한지도 의문이며, 뇌성마비 환자 가족 입장에서는 손해배상금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반면 의료계는 이번 사건을 불가피하거나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라고 규정하며 형사고소와 불구속 기소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대학의학회, 대한의사협회,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성남시의사회, 젊은 산과의사들은 잇달아 성명을 발표하며 "형사처벌은 필수의료 위축과 분만 인프라 붕괴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또 1심에서 의사에게 내려진 약 6억 5천만원의 손해배상액은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를 놓고 환연은 "의료사고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것 같은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환연은 분만 의료사고를 둘러싼 민형사 갈등이 반복되고 있으므로, 제도적 보완 필요성을 언급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의료분쟁조정법 제46조에 따른 무과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올해 7월부터 보상한도가 3천만원에서 최대 3억원으로 상향됐다.

안 대표는 "분만 의료사고는 뇌성마비와 사망 같은 중대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손해배상액도 고액이 많다"며 "저출산 시대 산과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중대한 과실이 아닌 경우 일정 부분은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환연은 분만 의료사고 문제 해결을 위해 의료계, 학회, 의사회, 법조계, 소비자단체, 환자단체, 전문가, 정부가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국회에는 의료사고 설명의무 입법, 유감 표시에 대한 증거능력 배제, 피해자 트라우마센터 설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요구했고, 전문적이고 공정하며 신속한 손해배상을 보장할 수 있도록 의료분쟁 감정제도 개혁도 촉구했다.

안 대표는 "의료사고 피해자가 형사고소에 의존하지 않고도 울분을 풀고 신속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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