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해진 기자] 한국의 신약 가치 평가에서 해외 국가 대비 중증도 반영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공정성과 합리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강동원 조선대학교 교수는 24일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25주년 기념 '환자를 위한 정책포럼-신속한 치료 접근을 위한 HTA 및 보건의료 정책 변화'에서 '질병 중증도 기반 신약 가치 평가' 발제를 통해 성균관대학교 연구팀과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강 교수는 "'중증도'는 하나의 개념이 아닌 치료에 대한 필요, 긴급성, 공정성, 생명 구제의 의무, 인간 존엄성 등에 기반한 다차원적 개념"이라고 밝혔다.
발표에 따르면, 중증도를 우선한다는 것은 그 질환에 취약한 집단의 복리에 더 큰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우선순위주의에 기반하기 때문에 비용-효과성 지표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다.
또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건강수준이 낮은 집단의 건강 개선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 선호는 기존의 효용값으로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강 교수는 "중증도를 기반으로 한 신약 가치 평가는 신약의 비용 효과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 질병의 중증도, 중증질환에서의 건강 개선 효과에 더욱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이라며 "치료의 필요도가 높은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의료 자원을 배분함으로써 의료 자원을 더욱더 공정하고 합리적인 형평성 확보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은 이미 '질병의 중증도'를 정량화 한 '절대 건강손실(AS, Absolute Shortfall)' 혹은 '비례 건강손실(PS, Proportional Shortfall)'을 반영해 약제 가치 평가에 가중치를 적용하고 있다.
영국은 AS 및 PS 두 기준을 모두 비교해 더 높은 값을 기준으로 삶의 질 보정 기대 생존연수(QALY) 가중치를 최대 1.7배까지 상향 조정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2018년부터 AS를 통해 질병의 중증도를 정량화 해 의료기술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AS에 따라 ICER(Institute for Clinical and Economic Review, 비용효과성 평가결과) 임계값을 3배까지 상향 조정한다. PS 기준은 절대 건강손실이 작은 경우에도 과대평가 될 수 있어 중증도를 종합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AS 기준 외에도 임상적, 정책적 고려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PS를 공식적으로 채택해 이 기준에 따라 상이한 임계값을 적용한다. 이는 공정한 수명, 질병의 중증도, 구조의 원칙 등 3가지 윤리 원칙에 대한 균형을 달성할 수 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따라 ICER 임계값을 최대 4배까지 상향 조정한다.
사진=조해진 기자
반면, 한국은 중증도를 정량화 해 모든 질환군에 가중치를 일관되게 적용하는 다른 국가와 달리,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 중심으로만 제한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항암제의 경우도 일반 약제 대비 약 1.4배 수준에 그쳐 중증도 반영 수준이 낮은 상황이다.
강 교수는 AS와 PS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AS는 환자군의 연령과 상관없이 얼마나 건강 손실을 잃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직관적이고 단순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질병 중증도의 정량적 지표 산출에 널리 활용되는 질보정 기대 수명(QALE) 손실값이 높은 중증 질환의 심각성을 잘 드러낼 수 있지만, 노년층 질환의 중증도가 과소평가될 수 있다. 분석 기간과 할인율에도 많은 영향을 받아 절대적인 건강 손실이 큰 질병에 의료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
PS는 연령이나 기대수명과 관계없이 질병의 상대적인 영향을 평가해 공정성을 강화할 수 있다. 이에 고령자에서도 질병의 중증도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으나, 질병으로 인한 QALE 손실값을 과소평가 할 수 있다. 연령과 상관없이 일관되고 공정한 자원 배분이 가능하다.
이어 강 교수는 질병 및 경제성평가 모형의 특징에 따라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성해 질병 중증도를 정량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국내 신약 가치 평가에서의 중증도 지표에 대한 활용 가능성 및 한계점을 분석한 '질병 중증도 기반 신약 가치 평가' 연구 내용을 밝혔다.
연구 결과, 환자의 기대 수명 또는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 AS와 PS 모두 유사한 비율로 증가했다.
다만 AS는 PS보다 질병 발생 연령과 할인율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기대 수명이 높은 젊은 연령층에서 발생하는 질병일 수록 AS가 더 크게 증가했고, AS는 일반인구와 환자 간의 절대적인 QALE 손실, PS는 상대적인 QALE 손실 비율로 나타나 할인율이 낮아질수록 AS가 더 급격하게 증가했다.
경제성 평가 모형의 분석 기간이 짧은 경우, 질병의 중증도가 높지 않은 경우에도 AS 및 PS 모두 높게 나타날 수 있으며, 시나리오 조합에 따라 AS 및 PS 변화가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 질병 발생 연령이 낮은 경우, AS 및 PS가 분석 기간 및 할인율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결과를 바탕으로 강동원 교수는 ▲중증 질환 전반에 걸친 사회적 가치 부여 체계 구축 필요 ▲국내 신약 가치 평가 시 AS 또는 PS와 같은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정량적 기준 적용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국내 중증도 기반 신약 가치 평가에는 ▲중증도 지표 자체가 갖는 구조적 한계 ▲중증도 지표를 산출하기 위한 국내 기준 및 가이드라인 부재 ▲중증도 단계 기준 및 중증도 가중치 설정에 대한 근거가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이에 강 교수는 "AS와 PS 중 더 높은 가중치 값을 적용하는 영국과 같이 PS와 AS를 병용해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며, 질병의 중증도 평가에 대한 경제성 평가와의 독립적인 별도 기준과 명확한 가이드라인 수립, 중증도 지표를 일관되게 산출하기 위한 기준 자료원의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해외 중증도 가중치 시스템을 국내 실정에 맞게 조정 및 적용하는 것과 함께 시범사업 등을 통해 유효성과 실현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중등도 단계 기준 설정 및 단계별 가중치 차등 부여는 해당 국가의 사회적 선호도, 재정 영향 등 이해관계자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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