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마지막날이자 개천절인 3일 아침 업계에 비보가 날아왔다. 동아쏘시오그룹 강신호 명예회장의 타계를 알린 것이다.
제약업계는 최근 잇따라 제약기업 창업주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질 때 마다 최연장자인 故 강신호 명예회장의 안부가 회자될 만큼 고인의 건강은 큰 관심사였다. 그는 1927년생 올해 96세. 그동안 숙환으로 서울대병원에 장기간 입원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故 강신호 명예회장은 선친인 창업주 故 강중희 회장에 이은 2세 경영인이지만, 사실상 창업 세대라 할 수 있다.
동아제약그룹은 1932년 12월 1일 선대회장에 의해 창업한 이후 서울의대 출신(52년 졸업)인 강 명예회장이 독일 프라이브루크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59년 동아제약에 입사했다. 그후 75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 2017년초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까지 그룹을 57년간 이끌어 왔다하겠다.
고인은 '생명보다 더 큰 가치는 없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의약품 선진화를 통해 국민 건강을 향상하는데 전력했다. 1980년 경기도 안양에 우수의약품 제조관리기준(KGMP)에 맞는 현대식 공장을 준공했고, 1985년에는 제약업계 최초로 GMP 시설을 지정 받았다.
1977년에는 업계 최초로 기업부설 연구소를 설립했고, 1988년 경기도 용인에 신약의 안전성을 실험할 수 있는 우수 연구소 관리기준(KGLP) 시설을 마련하기도 했다. 기업부설 연구소는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로, 강 명예회장의 신념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꼽힌다.
이 같은 노력은 동아쏘시오그룹이 신약개발 선도 기업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됐다.
강 명예회장이 1961년 개발한 박카스는 대한민국 대표 피로회복제로 자리매김하면서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해 큰 성공을 거뒀다. 박카스는 동아제약이 2013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 전까지 무려 47년간 국내 제약업계 1위를 지킬 수 있는 대들보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초부터 본격화한 신약개발 열기는 1991년 최초로 합성한 아드리아마이신 유도체 항암제 'DA-125'를 탄생시켰다. DA-125는 1994년 보건복지부로부터 국내 최초로 임상시험용 의약품으로 승인 받으면서 국내 신약개발을 앞당기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또한 국내 최초 세계 4번째 발기부전치료제 '자이데나'를 포함해 슈퍼 항생제 '시벡스트로', 당뇨병 치료제 '슈가논' 등 국산 신약 탄생을 이끌었다.
강신호 명예회장이 회사를 경영하는데 있어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제품 개발과 우수 인재 확보였다. 전문지식과 소양만 있다면 교육을 통해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로 키울 수 있다고 믿었다. 1995년 처음으로 1기 공개채용을 시작했고, 1980년에는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경기도 용인시에 인재개발원을 건립, 사원교육을 제도화했다.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R&D 분야를 선도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업적을 남긴 강신호 명예회장은 한국제약산업의 산증인이자, 역사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제약협회장(87년), 29~30대 전국경제인연합회장(2004년~2007년)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강 명예회장은 이같은 산업적 측면의 공적 외에도 그에게는 남다른 애정을 쏟은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동아제약그룹이 생산하는 의약품의 이름을 대부분 본인이 직접 지었다는 것이다.
'
동아쏘시오' 등 그룹명과 동아제약그룹 제품 이름 대부분 고인이 지어
한국제약산업의 신화가 된 `박카스`가 그의 작품이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바커스(Bacchus)`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이다. 강 명예회장은 간장을 보호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이름을 생각하던 중 독일 유학 시절에 본 함부르크 시청의 지하 홀 입구에 서있던 술과 추수의 신상 `바커스`를 떠올리게 됐다.
주당들을 지켜주고 풍년이 들도록 도와주는 바커스 신. 당시 회사명이나 성분명을 이용해 제품명을 정하는 것이 고작이던 시대에 의약품의 이름에 신화 속 신의 이름을 붙이는 파격적인 상품명으로 1961년 9월 `박카스`는 탄생했다.
이렇게 탄생된 `박카스`는 1967년부터 2013년까지 47년간 동아제약을 국내 제약업계 1위 기업으로 성장시킨 제품이 된 것이다.
동아제약그룹의 공식명칭은 '동아쏘시오그룹'이다. 지주사는 '동아쏘시오홀딩스'.
이 '쏘시오(SOCIO)'라는 이름은 강 명예회장이 1994년 동아제약을 비롯한 전 계열사를 하나의 그룹으로 통칭하고자 그 명칭을 고민하던 중 'SOCIO'를 떠올렸다. 'SOCIO'는 '사회'를 뜻하는 라틴어로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사명의식을 담고 있다.
강 명예회장의 작품은 이 뿐만이 아니다. '스티렌', '자이데나', '모티리톤', '슈가논', '비사진', '베나치오', '노스카나', '스카풀라', '써큐란', '암시롱' 등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래서 그를 제약업계 '최고의 작명가'라는 별칭이 따라 다녔다.
또한 현대자동차의 대표 차종 중 하나인 '아반테'도 그의 작품이라는 것. 스페인어로 '전진'이라는 뜻으로, 강 명예회장이 당시 정몽구 명예회장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티렌= 동아에스티가 자체개발한 천연물의약품 위염치료제. '스티렌'(stillen)은 독일어로 '고요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어 복용 후 편안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자이데나= 국내 최초 개발된 발기부전 치료제. '연인의', '결혼의'라는 뜻의 라틴어 'Zygius'와 '해결사'라는 뜻의 'Denodo'가 합쳐진 조어다. 중년·갱년기 부부의 성생활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자이데나'의 성분명인 유데나필의 '데나'에 잘된다는 의미인 '잘'이라는 글자를 합쳐 '자~알 되나, 자 이제 되나'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모티리톤= 천연물의약품 기능성소화불량치료제. 약제가 가진 특장점은 물론, 다양한 자료를 관심 있게 살펴본 후 지어졌다는 것. 모티리톤은 'Motility'과 'Tone'이 합쳐진 단어다. 이는 위의 운동성(motility)을 위해 위 근육 수축(tone)이 필요하다는 뜻을 효율적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슈가논= 제2형 당뇨병 치료제 신약. '당'이라는 의미의 'Sugar'와 '없다'라는 의미의 'None'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조어다. 당이 없다라는 것으로 강력한 혈당 강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사진= 비강 보습제 비사진(鼻沙陳)의 제품명은 '코에 모래를 막는다'라는 한자풀이 그대로 황사나 미세먼지 등에 의해 나타나는 코 관련 질환을 해결하겠다는 의미로 지어졌다.
◇베나치오= 위운동소화제. '아픈 배가 낫지요'라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소화불량 때문에 겪는 불편함을 빠르게 해소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노스카나= 흉터치료제. '없음'을 뜻하는 'No'와 흉터라는 의미를 지닌 'Scar'의 합성어로 노스카나를 사용하면 흉터가 없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스카풀라= 어깨결림치료제. 스카풀라(라틴어: scapulare, 영어: scapular)의 뜻은 라틴어로는 '어깨', 로마 가톨릭에서 쓰는 어깨에서 발까지 앞뒤로 늘어지는 성의(聖衣)를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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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순환을 의미하는 '써큐'에서 따 온 혈액순환개선제 '써큐란', '잘 알면서'의 경상도 사투리 '암씨롱', 건강하게 오래 살자는 뜻으로 지어진 '한오백', 오렌지와 비타민C를 합쳐 만든 '오란씨', '나랑 둘이서 마신다'는 뜻의 사이다 '나랑드' 등 의약품 외에도 동아오츠카 등 계열사에 만든 음료들도 그의 '작명노트'에서 꺼내온 작품들이다.
이처럼 강 명예회장이 직접 작명한 의약품들은 쉽게 기억돼 의사와 약사, 소비자 모두에게 인지도를 넓힐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아제약그룹 관계자는 "강신호 명예회장께서 작명에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선친인 故 강중희 회장의 영향이 컸다"고 귀띔했다. 그는 "강 명예회장이 '사업하는 사람은 늘 상표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선친께서 강조하신 덕에 예전부터 제품 작명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전했다.
강 명예회장은 이제 고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의 `작명노트` 속에 숨겨두었을 것 같은 무수한 주옥들이 네이밍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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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는 2017년 1월 6일 아침 메디파나뉴스가 "
'박카스 신화' 강신호 명예회장, 그의 네이밍 스토리" 라는 제하로 내보낸 기사를 강신호 명예회장의 부고에 맞춰 재구성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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