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성분명 처방', 왜 의료계는 반대하나‥"이익보다 '문제' 많다"

의도와 다른 약제가 환자에게 투여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약화사고가 발생할 시, 법적 책임 문제 첨예한 갈등 예상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2-11-02 11:34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올해 개최된 국정감사 중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성분명 처방 정책'을 동의한다"고 발언해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발언에 의료계는 즉각적으로 반발하며, 식약처장에 사과를 요구했다.

반대로 약사회나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은 국민 선택권이나 건보재정 절감 등의 이유로 성분명 처방 제도의 도입을 적극 찬성하고 있다.

성분명 처방은 오래도록 추진돼 왔으나, 결국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사항이다.

특히 의료계의 입장은 강경하다. 성분명 처방 제도는 여러 가지 법적, 의학적, 경제적, 정치적 문제점 등에 의해 추진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 '성분명 처방'의 필요성

대한병원의사협의회에 따르면, 현대의학에서 사용되는 모든 약들은 고유한 명칭이 있다. 그 명칭에는 학술적으로 그 약을 알 수 있도록 명명한 '성분명'이 있고, 제약사가 약물의 판촉을 위해 자체적으로 만들어 낸 '상품명'이 있다.

그리고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및 독점권이 풀리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제약사들이 제네릭(Generic) 약제를 출시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환자가 의사 진료 후 처방전을 갖고 약국으로 가게 되면, 약사로부터 적절한 복약지도를 받은 후 처방전에 명시된 상품명 그대로의 약제를 조제 받는다. 

그런데 약국에서 의사가 처방한 상품명의 약제를 재고 관리 또는 제약 유통 과정 등 문제로 제대로 구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환자가 약을 문제없이 처방받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대체조제 제도'이다.

대체조제 제도 하에서는 사전에 의사가 승인한 동일 성분의 약품 목록이 있다면, 약사가 선택해 대체조제를 한 후에 이 사실을 환자에게 알려야 한다.

만약 사전 승인 약제가 없다면 생물학적동등성(생동성) 시험을 통과해 오리지널 약제와 거의 동등한 효과를 보인다고 검증된 약제들 중 한 가지로 대체조제 할 수 있다. 이 역시 대체조제 사실을 환자에게 알려야 하고, 의사에게도 사후 통보해야 한다.

이러한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해당 약사는 처벌받게 된다. 의사의 사전 동의 없이 대체조제한 약품으로 약화사고가 발생하면 약사가 책임진다.

병의협 관계자는 "대체조제 과정에서 지켜야 할 절차나 조치가 너무 복잡하고, 자칫 약화사고의 법적 책임까지 있으니 약사들은 대체조제에 소극적인 편이었다. 또한 동일 성분명의 약제라고 하더라도 모든 제네릭 약제가 생동성 시험을 통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약제 선택에 있어서도 제약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에 약사회에서는 복잡한 대체조제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성분명 처방 제도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성분명 처방 제도가 시행되면 의사들은 환자 처방전에 제품명을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성분명을 쓰기만 하면 된다. 약사들은 처방전에 적힌 성분명 약 중 약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약제 중에 한 가지를 고르거나 또는 환자가 고르도록 안내하게 된다.

◆ 성분명 처방 시 의학적인 효과 예상 어려워

하지만 의료계는 임의조제와 무분별한 대체조제를 근절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 가지 성분명을 가지는 약제는 성분에 따라 오리지널과 제네릭 약제를 다 포함해 적게는 수 가지에서 많게는 수십 가지 이상이 된다.

똑같은 질병이라고 해도 환자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질병에 같은 약을 처방해도 반응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의사들은 이러한 환자별 특성을 고려해 교과서적인 지식과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약제를 조절하게 된다.

병의협은 "의사의 처방은 수련기간 동안의 학습, 실제 환자에게 처방 했을 때 알 수 있었던 개인의 경험, 다양한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환자들만의 특성 등을 고려한다. 환자에 따라서는 오리지널 약제보다 제네릭 약제에 더 좋은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의협은 "만약 한 가지 성분명당 약이 한 가지 밖에 없거나, 한 성분명에 해당하는 모든 약제들의 제조과정과 효과가 과학적으로 동일하다면 의사들이 성분명 처방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의료계는 대체조제 가능 약제의 기준으로 삼은 생동성 시험만 하더라도, 시험에 통과한 약제로 오리지널 약과 비교해 제네릭 약이 100% 같다고 말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생동성 시험은 19~50세의 성인에게 오리지널약과 제네릭약을 일정 간격으로 번갈아 투여한 후 혈액 검사를 한다. 약의 혈중농도가 최고일 때의 값(Cmax)과 총 혈중 약물농도, 즉 AUC(area under the concentration-time curve)를 비교해, 제네릭 약물의 Cmax 와 AUC가 오리지널 약물의 80~125% 범위에 들면 시험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이때 제네릭 약물농도의 범위는 오리지널 약물과 100% 같은 것이 아닌 80~125%의 허용 범위를 둔다. 이 범위가 90%의 신뢰구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생동성 시험을 통과한 제네릭 약물은 약물간에 최대 45% 정도의 약물 농도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병의협은 국내에 시판되는 동일 성분명의 제네릭 약제 중 생동성 시험처럼 임상시험이 아닌, 실험적으로 농도를 측정하는 비교용출 실험만으로 의약품 동등성을 획득한 경우가 많다고 우려했다. 그리고 비교용출 실험만 통과한 약제들은 오리지널 약과 비교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의견이다.

병의협은 "의사들은 환자의 치료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자신이 행한 의료 행위가 외부 요인에 의해서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극도로 경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성분명 처방으로 약화사고 발생, 책임은 누가?

의사는 치료 과정에서 명백한 과실이 있었거나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벌인 경우 처벌을 받게 된다.

대표적으로 약물 투여에 의해 환자에게 위해가 가해지는 약화사고가 있다.

지금까지 약화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의사의 처방전과 성분이 완전히 다른 약을 조제했거나 의사의 사전 승인 없이 대체조제를 한 때에만 약사가 법적 책임을 지게 돼 있다. 이외의 경우는 대부분 의사가 법적 책임을 지고 있다.

단, 약화사고의 경우 교과서적으로 올바르게 약을 처방하고, 약의 부작용과 주의사항을 제대로 설명했다면 약을 먹고 이상이 생겨도 의사가 책임지지 않는다.

하지만 의료 소송에서는 이러한 판단이 모호해지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의사가 처방한 약이 정확한 종류, 정확한 용량, 정확한 용법대로 환자에게 투여됐는지 여부도 법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성분명 처방 제도가 시행되면 약화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에 대한 문제로 첨예한 갈등이 생길 수 있다.

◆ 경제적, 정치적 효과의 관점

일각에서는 성분명 처방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이 절감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정부는 비교적 가격이 비싼 오리지널 약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제네릭 약의 처방 비중을 늘려 약제비 지출을 줄이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도 제네릭 약품 처방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나 평가 제도가 도입돼 있다.

문제는 성분명 처방 제도를 시행하게 되면 의사들의 처방 패턴이 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 의사들은 자신이 처방한 약이 정확하게 환자에게 투여되기를 원한다. 성분명 처방을 하게 되면 오리지널과 제네릭을 포함해 어떤 약이 환자에게 투여될지 모른다. 이는 결국 한 성분명당 하나의 약밖에 없는 특허 및 독점권이 풀리지 않은 오리지널 약 처방 선호 현상으로 나타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무리도 있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약정 합의안에는 무분별한 대체조제 근절, 임의조제 근절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성분명 처방 제도가 시행되면 두 가지 조제 행태가 부활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의견이다.

병의협은 "의약정 합의가 파기된다면 의료계는 더 이상 현재의 의약분업 제도를 따를 이유가 없어진다. 성분명 처방 저지 투쟁과는 별도로 의료기관별로 원내조제를 하면서 국민들이 조제 기관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선택분업을 추진하는 투쟁도 같이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병의협은 "국민이 약을 어디서 조제 받을지를 선택하는 조제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건보재정 절감을 위해서는 제네릭 약의 품질 표준화 및 제약회사별 경쟁을 통한 제네릭 약가 인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더욱 나은 방안이 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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