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분석에서 시작"‥안덕선 원장이 짚은 의정연의 역할

"정원 확대만으론 해결 안 돼"…의사 수급 추계로 정책 방향 반박
필수의료 회복 위해 형사처벌 완화·수가 체계 개선 병행 강조
의정연, 현장 기반 정책 설계와 국제 학술지 게재로 위상 재정립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7-07 05:57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안덕선 원장.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정책 싱크탱크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단기 현안부터 제도 개혁까지 축적된 연구 성과는 정책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고, 학술적 성과 역시 세계적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과 만난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의료정책연구원은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축적된 분석을 통해 방향을 설계하는 조직"이라며, 의정연과 정책 현장의 연결 구조를 소개했다.

◆ 의정연의 성과, 데이터와 근거로 승부

의정연은 그간 다양한 연구 성과를 통해 정책 결정 과정에 실질적 영향을 미쳐왔다.

대표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대한 현실적 의료인력 수급 추계 연구가 있다. 해당 연구는 국제학술지에 게재됐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청문회에서도 직접 인용되며 주목을 받았다.

의정연은 정부의 단순 정원 확대 기조에 대응해 근무일수와 국내외 수급자료, 의료 이용률 변화 등을 반영한 분석을 실시했다.

의정연은 정부가 제시한 2000명 증원안이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10년 내 과잉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추계 결과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교육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부실 교육, 실습 기회 축소 등의 교육의 질 저하 문제도 동반될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지적했다.

안 원장은 "실제 현장에선 교수 확보가 어렵고 환자 참여형 임상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교육 기준 미달 시 강력한 제재 ▲정부 차원의 실질적 투자 ▲의대 평가·인증제 강화 등을 제안했다.

의학교육 전문가로서 안 원장은 의사 양성 과정을 입학부터 은퇴까지 하나의 파이프라인으로 보고, 각 단계별 질적 보장이 핵심이라고 조언했다. 기본의학교육(BME) 단계에선 교수 확보와 환자 기반 교육 보상책 마련이, 전공의 수련(GME)에선 병원 간 교육 격차 해소가, 평생교육(CPD) 단계에선 임상성과와 연계된 교육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와 더불어 의정연은 '면허관리원' 설립 필요성을 수년 전부터 제기해 왔다.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의사면허관리 체계의 도입이 자율규제와 전문직업성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의료계 내부 공감대도 일정 부분 형성된 상태다. 하지만 법 개정과 관련 단체 간 협조를 포함한 다수 과제를 해결하려면 상당한 준비와 시간이 요구된다. 연구원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고려해 단계적 추진 방안을 마련 중이다.

안 원장은 "면허관리원 설립은 단일한 과제가 아니다. 법령 개정, 윤리위원회 체계 정비, 시도의사회 협조 등 현실적 과제들과 맞물려 있다"며 "이번 집행부에서는 제도 완성보다는 역할과 구조를 현실적으로 정립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건강보험·비급여·수가 구조까지…현안 산적

향후 의정연의 핵심 연구 과제로는 '건강보험제도 개편'이 있다. 내년에는 전문가들과 협업해 의료 전달체계, 지불제도, 보장성 확대 등과 연계된 건강보험 구조 재설계를 심도있게 다뤄볼 예정이다.

또한 의사노조 제도화, 단체행동에 대한 국제비교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이는 의료계 내부 자율성과 사회적 책임의 균형을 찾기 위한 기반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밖에도 최근 정부가 비급여 진료 항목에 대해 보고 의무를 강화하고, 일부 항목에 가격 통제를 시도하는 등 전방위적 개입을 강화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비판적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를 의무화하고,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보고 및 확인제도'를 본격 시행 중이다. 이는 사실상 병원 자율에 맡겨져 있던 비급여 진료를 국가가 일정 수준으로 관리·감독하겠다는 의미로, 의료계에서는 '과도한 통제'라는 반발이 컸다.

안 원장은 "비급여는 본질적으로 정부의 통제 영역이 아닌데 이를 관리하려다 보니 부작용이 생긴다"고 말했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이러한 문제를 다룬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왔고, 공론화 포럼을 하반기 중 추진할 방침이다. 비급여의 정의와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환자 보호와 자율성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 등 정책 논의의 기준점을 제시하겠다는 구상이다.

의료 현장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필수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상대가치제도 자체가 우리나라와 적합한지 고민해 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현행 수가 체계 내에서 상대가치점수의 불균형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 원장은 "응급, 소아, 중환자, 산모 등 필수의료 영역에서의 업무량과 가산점 배분이 비현실적으로 설정돼 있어 실제 의료 제공의 구조와 괴리가 크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의 유독 심한 의료사고 형벌과 경향도 문제로 지적됐다.

안 원장은 "의료진들로 하여금 방어진료를 하고, 필수의료 분야에 젊은 의사들이 진입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어 의료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의료사고를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의료의 질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과도한 형사화는 의료진이 자기보호에만 집중하게 만들고 결국 환자의 이득이 차선으로 밀리게 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실행력을 갖춘 정책 '싱크탱크'로

의정연은 정책 제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내부 체계 정비도 추진 중이다. 대한의사협회 IRB를 통한 연구윤리 심사, 자체 통계 도구와 설문 시스템 도입, 정책자료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등이 주요 성과다.

젊은 연구자 양성을 위해 객원연구원 제도를 활성화하고, 의료정책 아카데미를 통해 교육·멘토링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정책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에 다수 게재되고 있으며, 카드뉴스·영상 콘텐츠 등을 활용한 대국민 소통도 강화 중이다.

아울러 의료정책포럼을 정례화해 의료계와 정부, 국회 간 논의를 촉진하고 있다. 향후에는 정부와 국회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로 확대해 공론장 역할을 강화할 계획이다.

안 원장은 "연구원 홈페이지에 마련된 '회원참여' 창구를 통해 누구나 주제를 제안하고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며 "의료현장에 필요한 연구들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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