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형사처벌, 필수의료 붕괴 부추겨"‥의협, 개선 시동

의료배상공제조합, 의료사고 관련 민·형사 제도 분석 중간보고회 개최
"선진국선 형사처벌 극히 드물어‥결과 나쁘다고 유죄, 야만적 구조"
7월 최종 보고 후 발표회·공청회 예정…의료인 보호 위한 제도화 추진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5-26 05:56

의료사법제도개선위원회 서신초 위원장, 의료배상공제조합 양동호 의장.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이 필수의료 붕괴를 부추기고 있다는 의료계의 문제제기가 제도 개선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은 25일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의료사고 관련 민·형사 소송 구조를 집중 분석한 연구의 중간보고회를 열고, 현행 사법체계가 의료현장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해 발표했다.

공제조합은 이날 발표를 통해 과도한 형사책임이 필수의료 기반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분명히 했다.

이번 연구는 공제조합 산하 '의료사법제도개선위원회'가 주도하고 있으며,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서종희 교수가 책임을 맡았다. 한국과 일본, 독일, 스위스, 미국, 뉴질랜드 등 주요 국가의 의료사고 관련 법령과 판례를 비교·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위원회는 특히 우리나라 사법부가 의료인의 재량권을 협소하게 해석하고, 결과 중심의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환자 보호를 앞세운 판결이 오히려 필수의료 기피와 의료 현장의 위축을 초래하고 있다는 우려다.

서신초 위원장은 "우리나라 사법부는 의료인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환자를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판단이 이뤄졌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법령상 의료과오에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독일에서도 의료인을 형사처벌하거나 배상 책임을 지우는 판결은 극히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스위스 역시 의료행위에 대한 재량권을 넓게 인정하고 있으며, 일본 사례 또한 의료진 책임만을 강조하는 접근이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공제조합은 이 같은 국제 비교를 통해 의료 분쟁의 사법적 해결에서 중요한 것은 법령 자체보다 사법부의 해석과 적용 방식에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신중하고 합리적인 판결은 의료인과 환자 간 신뢰 회복의 기반이자, 현장 안정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서 위원장은 "우리나라에는 그동안 의료 관련 형사·민사 소송에 대한 통계가 없었다. 이번 연구는 그런 데이터를 처음으로 확보해 분석했다는 점에서 위원들 사이에서도 의미 있는 중간결과라는 평가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그동안 의료계가 과도한 형사처벌 문제를 수차례 지적해왔지만 객관적 자료 부족으로 시민사회나 정부로부터 충분한 공감을 얻지 못했다"며 "이번에는 각국의 데이터를 명확히 수집한 만큼, 국민·국회·사법부를 설득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단순한 문제 제기를 넘어 장기적인 제도 개선의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서 위원장은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해야 대화가 가능하다. 사법부가 의료의 특수성을 반영한 판단을 내리는 데 이 연구가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의료배상공제조합 양동호 의장도 현행 사법체계를 필수의료 붕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 의료는 너무 힘든 상황"이라며 "그동안 저수가 속에서 의사들의 희생으로 버텨왔지만, 정상화까지는 앞으로도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 의장은 정부가 의료사고 특화 사법체계 구축을 위해 움직이고 있으나, 정작 여기에 의협이 논의 대상에 빠져있는 등 공급자인 의사를 무시한 정책들의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는 현 상태의 사법체계라면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들은 이제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 의장은 "우리나라 의료사법체계는 결과만 나쁘면 민사는 물론 형사까지 가는 야만적 구조"라며 "선진국에서는 형사 고발이 있어도 대부분 기소되지 않지만, 한국은 집행유예만으로도 면허정지로 이어진다. 이것이 진료 회피의 핵심 원인"이라고 말했다.

공제조합은 7월 최종보고서를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발표회와 공청회 등을 열어 사법부와 후속 논의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추가 연구와 정책 제안도 병행할 방침이다.

양 의장은 "이 연구가 단초가 돼 앞으로 의사들이 마음 놓고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려고 한다. 향후 저희 조합의 몸집이 커질 때를 대비해 기틀을 만들어놓으려고 한다. 조합이 이대로 망하느냐, 한단계 도약하느냐의 격변의 시기에 놓여 있는 지금 의사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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