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치료 지연 부르는 허가초과 심사‥'전문가 중심' 전환 요구

사전 승인 지연에 치료 공백…"환자 생명, 전문가 손에 달려"
의료진 "분과위원회 만들어야"…심평원도 "전문가 모임에서 결정 가능"
복지부·식약처 "안전성과 효과성 균형…현장 의견 반영해 개정"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8-30 05:57

심평원 국제심포지엄.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중증질환 환자에게 약제의 '허가범위 초과 사용'은 종종 마지막 치료 기회가 되지만, 국내 제도는 복잡한 승인 절차와 낮은 승인율로 인해 현장의 불만이 높다.

의료진은 "실제 환자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에게 심사를 맡겨야 한다"며 분과위원회 중심의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현행 제도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난제가 많다.

대표적으로 ▲복잡한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신청 절차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2단계 승인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연 ▲환자 보호 및 투명성 부족 ▲제한적 보험 보장 ▲시판 후 안전성 데이터 활용 미흡 등이 거론된다.

일반 약제의 경우 IRB 통과 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접수, 다시 식품의약품안전처 검토까지 거쳐야 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반면 항암제는 심평원에서 직접 검토하지만 여전히 더 신속한 절차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컸다.

2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제심포지엄에서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이재련 교수는 "표준치료가 불가능하거나 불충분한 경우, 특히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기반 맞춤형 치료에서는 허가초과 항암요법이 중요한 선택지"라면서도 "현행 사전승인 제도는 임상적 발전을 반영하지 못해 치료 개시가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4년 신장암 환자에게 '베바시주맙·엘로티닙 병용요법'을 적용해 우수한 반응을 얻었지만, 2017년 NCCN(미국암종합네트워크) 가이드라인 등재 이전이라는 이유로 허가초과 신청이 기각된 사례를 들며 "환자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전문가가 참여하는 간소화 절차와 암종별 분과 심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박경화 교수 역시 제도의 한계를 짚었다. 

그는 "카보플라틴처럼 오래 전에 허가됐지만 특정 암종에는 적응증이 없어 효과적임에도 사용이 막히는 경우가 많다"며 "트라스투주맙 병용요법처럼 글로벌 허가와 다수의 가이드라인에 등재된 치료조차 국내에서는 허가사항에 없어 제도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박 교수는 모든 국제 가이드라인에서 인정하는 요법은 국내에서도 허가 확대나 학회 협의를 통해 승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평원·식약처가 학회와 협업해 전문가가 선별한 환자 데이터는 허가·급여 확대에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제도 운영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개선 필요성에 동의했다.

심평원 강중구 원장은 이번 심포지엄에 대해 '체계를 바꾸자는 의지로 마련한 자리'라며 "항암제 허가초과 심사에 논란이 많지만, 심평원이 100% 다 맡을 수 없고 복지부와 식약처가 함께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강 원장은 이어 "항암제는 억대의 비용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치료효과를 어떻게 판단할지, 알고리즘을 어떻게 바꿀지 고민해야 한다"며 "허가초과와 관련해서는 전문가 모임에서 결정하면 된다. 심평원도 개선 가능한 부분은 적극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김연숙 과장은 약제 평가에 있어 안전한 의약품을 적기에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김 과장은 "안전성과 효과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의료기술 발전과 미충족 수요를 고려해 외국 사례를 참고하고,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제도를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진미령 보건연구관도 이미 2010년에 마련된 허가초과 사용 지침을 언급하며 소아·임부·희귀질환 등은 별도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 보건연구관은 "현장 의견을 반영해 지침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와 운영기관, 정책 당국 모두 허가초과 심사의 개선 필요성을 인정했다. 남은 과제는 구체적 실행이다.

결국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결정은 전문가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의 핵심은 '전문가 중심 심사체계'라는 공감대가 확인됐다. 의료계에서는 심평원 산하 전담 위원회를 설치해 주 1회 온·오프라인 심사를 열어 1주일 내 결과를 통보하거나, 접수 즉시 학회로 보내 학회 평가 후 심평원에 보고하는 방식도 제안했다.
 
이재련 교수는 "작은 것을 위해 많은 것들이 희생되고 있지 않나. 지금의 우리나라 항암제 사전승인제도는 유연한 기준을 갖고 그 질환을 보는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화 교수도 "허가초과 사용 시스템을 심평원이나 식약처가 함께 학회와 협업해서 운영하고, 그 데이터를 모아 허가나 급여에 활용한다면 환자들이 더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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